나는 책 벌레가 아니다. 책벌레는 내 현실태라기보다 이상향이다.

 

졸려 죽겠는 내 눈에도 확 뜨이는 문장이 보인다.

"절판됐다고 한 책을 굳이 검색해본다. 9천원에 팔렸던 책이 헌책방에는 4만5천원에 올라와있었다. 몹쓸병이 다시 도진다. 갖고 싶어 안달한다.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도 책 사는 일에는 한없이 관대해진다. 집이고 사무실이고 '첩첩책중'에 갇혀 지내는 형편을 상기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저자의 말마따나 책에 관한 책은 조바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의 인식을 바꾸거나 삶에 개입했거나 놀라움을 선사한 그 책들을 나도 얼른 읽고 싶다는 마음과 이렇게 훌륭한 책도 모르고 이제까지 잘도 살았구나 하는 허탈이 혼재된' 조바심이다. 저자는 오랜 시간 편집자로, 또 그보다 더 오래 독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책과 삶이 얽혀 빚어낸 이야기에 자꾸만 밑둘을 긋게 된다.

 

 

그러니 오늘도. 내 책상에는 업무용 서류보다 더 많은 책이 쌓여있고, 그 수많은 책들을 어쩌지 못하면서 또 신간을 둘러보며 장바구니를 채워가고 있다. 책을 자꾸 사재기하니 적립금이 쌓이는데, 그게 또 요며칠사이에 사라질 예정이라고 하니 그걸 쓰기 위해 장바구니를 비운다는 좋은 핑계로다가.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작가는 '가족이라는 이름 자체가 꼭 소설의 다른 말인 것 같다'고 말한다. 소설의 마지막, 작가의 말처럼 가족과 함께라는 것은 '기쁨은 더 기뻐지고 슬픔은 더 슬퍼지는 것'이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슬픔에 빠져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포스가 함께 하길. 지금 내가 할 수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다.

 

틈만 나면 살고 싶다. "인간시장의 비루한 노동자들을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세우다"

"난 인생이 쓸모없어지는것보단 창피한 게 낫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는 슈트액터(탈인형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의 깨달음 같은 부분. '틈만 나면 살고 싶다'는 윤성택 시인의 시 '홀씨의 나날'에서 가져왔다.

 

 

 

 

 

 

 

 

숲 속의 평등, 은 인류를 포함한 유인원들의 사회, 문화적 진화사를 들여다보며 평등주의가 실현되었던 특정한 시기에 대해 언급한다. 부족사회와 추장제가 들어서기 전인 1만2천년 전까지의 수렵채집 시대에 인류 사회는 평등주의를 지켰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 평등주의는 약자가 힘을 합해 적극적으로 강자를 지배하는 별난 유형의 정치적 위계이다. 자신이 지배자가 될 수 있는 낮은 확률의 가능성 대신 높은 확률의 지배받지 않을 기회를 택하게 되는 사회였기에 가능한 형태다. 이러한 인류의 평등주의적 수렵채집 사회는 유인원들의 군집보다도 더 반권위적이었고, 당시로선 적응과 자연 선택에 유리한 하나의 생존전략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러한 평등주의 사회는 이후 문명사회가 생겨나면서 지속된 1만2언년의 세월보다 몇 배 더 오래 존속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 "지성은 결국 존재 가치를 잃어버렸다"

반지성주의 개념을 지성사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인물이 리처드 호프스태터다. 그가 1963년에 집필한 이 책은 출간된지 54년만에 국내에서 번역됐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과 통찰력은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여전히 통용된다. '기존 미디어와 지식인을 믿을 수 없다'라는 반지성주의는 이미 일정한 '지지층'이 되어 여전히 한국사회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도쿠가와 가문은 칼이 아니라 원예로 한 시대를 지배했다.

 

에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세운 곳으로 무장과 무사들의 도시다. 이 무장과 무사들은 식물애호가들이었다. 우리 선비들이 매란국죽 4군자를 편애할 때 이들은 다양한 식물을 두루즐겼다. 특히 무장과 무사들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순간에 지는 벚꽃의 무상함에서 무사의 미학을 찾았다. 전용 약초원을 둘 정도로 식물에 조예가 깊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척박한 땅 에도를 식물학의 보고로 바꾸었다. 에도는 원래 드넓은 습지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만으로 향하던 도네 강의 흐름을 태평양 쪽으로 바꿔 동쪽 습지대를 농경지로 탈바꿈시켰다. 소나무, 대나무, 고사리, 토란 등을 군사적 목적으로 기르고 이를 전쟁장비와 전투식량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내가 죽으면 와 줄 거냐고 심미자 할머니가 물은 적이 있다.

 

궁금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 충격을 받아 취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심경을 밝혔던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가 어떻게 30년이 넘도록 남한과 북한, 필리핀, 중국 등을 다니며 끊임없이 기록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는지. 이 책에 실린 담담하지만 울림이 큰 사진과 생생한 증언은 이 궁금증에 힌트를 주고 있다. 바로 '증거'다. 과거와 마주치지 않으려는 일본에게 자국인 저널리스트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했다. 다시금 전쟁의 길로 가려는 일본에게 역사를 직시하게 하고, 자신이 만났던 피해자들의 증언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번 책에는 저자가 그동안 만난 피해자들 가운데, 세상을 떠난 남한 여성 9명, 북한 여성 11명의 증언과 사진 르포르타주를 담았다.

 

재난을 묻다. 반복된 참사 꺼내온 기억 대한민국 재난연대기.

세월호 참사 3주기에 맞춰 발간된 책이지만, 책은 세월호 이전 벌어진 7건의 재난 참사를 차례로 소환해 왜 이 땅에서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지 묻는다. 1979년 남영호 침몰 참사부터 1999년 씨랜드 화재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2011년 춘천 봉사활동 산사태 참사, 2013년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폭발 참사와 같은 해 벌어진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2014년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 참사까지 꼬박 2년 6개월이 걸린 작업기간 동안 피해자를 수소문하고, 유가족을 만나 증언을 듣고, 관련 장소를 찾고 자료를 살폈다.

각자 다른 시공간과 이유에서, 그러나 동시에 지독한 생명 경시라는 일관된 원인에서 반복됐던 재난 참사들을 소환하며 하나의 진실이 명료해진다. '기억이 기록되지 않는 이상 진실에 닿을 수 없다. 기억과 기록이 가능할 때만, 그래서 진실이 드러날 때만 합당한 치유와 보상, 유사 사건 재발 방지, 용서와 화해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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