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김사부, 라는 드라마에서 한때 최고의 명성을 날렸던 김사부에게 신출내기 의사 강동주가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은 좋은 의사입니까, 최고의 의사입니까"

그들의 대화였지만 나도 모르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이미 병세를 돌이킬 수 없었으니 우리에게는 좋은 의사가 필요했다. 그렇게 버르장머리없이 기고만장해서 아무말이나 내뱉는 의사가 아니라.

그리고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입원하시고 수차례의 수술을 받으셨을 때 성격좋았던 담당의사는 인상과는 달리 형편없는 실력으로 어머니를 더 오랫동안 입원하게 했고 더 많은 수술을 받게 했고 염증이 생긴것도 원인을 모른다고만 해서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나았다. 그러니, 좋은 의사와 최고의 의사... 어떻게 택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사부가 대답을 하고 있었다.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가 되라고.

 

 

마음을 울렸던 그 말을 잠시 잊고 있다가 오늘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의사...와 같지는 않지만 하느님의 인호를 받은 사제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자신의 또 다른 길을 선택하기로 결정한 신부님 때문이었을까.

당신은 혹시 좋은 사제, 최고의 사제, 성인 사제가 될 수 있는 줄 알았지만 그러지 못한 현실의 삶 속에서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인가? 정말 행복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 도대체, 왜?

내가 묻고 싶은 말은 계속 안에서 맴돌고 있지만, 사실 타인의 고민의 심연을 그리 쉽게 판단하고 내뱉으면 안되는 것이기에 차마 묻지 못하고 묻어버렸다. 나의 차선은 그저 다른 시선과 다른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안되겠냐고 말리는 것 뿐.

아니, 나는 그에게 강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필요한 사제가 되어야하지 않겠냐'고.

 

 

 

 

 

"타인의 순수함과 절박함이 나보다 덜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절대악과 절대선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정하며 어느 한 편에만 서면 명쾌해질 것이라 착각하지 말되,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저는 와 저 자식 아직도 쓰고 있네? 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버티고 버티며 징그럽게 계속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버티는 삶에 관하여, 허지웅)

 

 

 

 

 

 

어쩌면... 나 자신의 고민은 아니었기에 좀 더 쉽게 내뱉고 좀 더 쉽게 방향을 바꾸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었을 때, '지금 상투적이 생각이 아닌 오로지 나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이미 상투적이 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지금의 나를 버텨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버티는 삶을 지속하게 해 주는 원천이 무엇일지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뭔가 더 명확해지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혹시 '견디어 내는 것'을 '버티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 모호한 경계를 생각하다가 얼마전에 읽었던 별아이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써니,는 집에서 살지 않는, 아니,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아이들이 살고 있는 시설 별아이의 마당에 버려져 있는 움직이지 못하는 자동차의 이름이다. 그리고 마츠모토 타이요의 써니는 그 별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담겨있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가난이 되물림 되는 아이들, 알콜 중독인 아버지와 부양의 책임이 무거워 도망쳐버린 어머니로 인해 어린 나이에 세상은 혼자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도 함께 살지 못하거나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부모님을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어 차마 다른 곳으로 입양 갈 수 없는 아이들..... 어느 한명의 특별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의 별아이와 같은 시설에서 또 다른 써니와 같은 공간을 놀이터 삼아 살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라고 했었다.

그 아이들의 삶은 어느쪽에 더 가까웠을까?

 

.......

그런데.

또 어쩌면 다른 시선과 다른 관점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삶의 모습을 바라봐야하는 것은 내가 아닐까, 라는 자기 성찰을 해보게 된다.

견뎌내는 것이든, 버티어내는 것이든 혹은 더이상 버티어내지 못하고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든 그건 어쩌면 또 다른 나의 편견이 담긴 시선은 아닐까.

 

˝다른 사람의 기분은 그렇게 간단히 알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달까...입장이 바뀐면 나 또한 마찬가지구나 싶더라. 그래서 더 이상은 일어나버린 일에 대해 비뚤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남빛 - 바닷마을 다이어리 5. 90)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좋은 의사, 최고의 의사, 좋은 사제, 훌륭한 사제, 좋은 사람.... 이 모든 것 역시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정점에 서야하는 것이 사명과 책임인 양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잠시 멈춤 상태에 있게 된다.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어낸다는 것은 그 삶의 자리를 지켜낸다는 의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이 멈춤의 의미일까?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려 하는 그 사제는 누군가의 말처럼 시간이 흐른 뒤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수는 없는것이겠지. 어쩌면 후회하게 된다하더라도 미래의 그 날, 그 자신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 그 자체로서 말이다.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시간과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다가 막히면 돌아간다. 이거야말로 길을 잃었을 때의 비법!"

"앞으로도 길을 헤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 가는 길은 두번 다시 헤매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지도에 없는 곳. 거기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었어."

"근데 길 끝에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 설레지 않니?" (바닷마을 다이어리 7)

 

 

시간이 흐르고 먼 훗날 언젠가 내 삶의 자리에서 나는 '버티는 삶'에 대해 또 어떤 상념을 가지게 될까...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때의 그 상념 역시 나 자신을 다독거리며 힘과 용기를 주고 있는 것이라면, 나 역시 나의 삶을 후회하게 된다 하더라도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게 된다면 그것 자체로 나는 잘 버티어낸 것이 되지 않을까.

 

"내는 '시간'이 참 잘 만들어진 기라고 생각한데이. 멈추는 일이 없으니께 말이다.

아무리 즐거운 때라도, 아무리 슬픈 때라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 순 없데이. 지금 이대로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는기다. 난 그기 위안이라고 생각한데이."(써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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