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절판


"책을 읽는다는 건 고독한 행위고, 또 시간도 걸리잖습니까. 그런데 일본사회는 바빠요.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정상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느긋하게 책을 읽을 시간 따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책 따위는 읽히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91-92쪽

예를 들어 제가 상사에게 회식에 못가겠다고 한다고 해요. '오늘은 얼른 집에 가서 저번에 줄 서서 산 비디오 게임을 하고 싶거든요'라고 거절합니다. 상사는 쓴웃음을 짓기는 하겠지만 '못 말리는 녀석이군. 저녀석 오타쿠라니까' 하고 말죠. 하지만 '오늘은 얼른 집에 가서 책을 읽고 싶거든요'라고 거절하면 어떨까요? 상사는 틀림없이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 거고, 저에 대해 반감을 가질 겁니다. 비디오 게임은 획일적이고 본인의 사고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안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남들과 다른 일을 생각하는 사람, 혼자서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간주됩니다. 상사의 처지에서 보면 '저 녀석, 내가 모르는 데서 나 몰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같은 식이죠. -91-92쪽

요즘 '가치관의 다양화'니 뭐니 하지만, 저는 완전히 양극화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런 다양함이 존재하는 세계와 대다수의 보수적인 세계. 그 대다수의 보수적인 세계, 제가 지금 있는 환경도 그렇지만요, 그 세계는 지금 롤러로 밀듯이 무조건 한 가지 색깔로 칠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보수파에 속하는 평균적인 일본인은 다양한 쪽 세계의 사람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지만, 자기하고 같은 보수파에 속하는 사람이 책을 읽는 것은 미워합니다. 혼자서 다른 걸 하지마., 혼자서 다른 걸 생각하지 마, 하고 말이죠. 일본 사람은 인간관계를 귀찮아하면서도 또 고독에는 굉장히 약하지 않습니까. 그걸 해결하는 방법이 다 함께 똑같은 일을 하는 데 있는 셈이에요. 저 사람도 나하고 같은 일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난 고독하지 않아, 그런거죠. 그래서 자기만 다르다든지,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다른 일을 한다든지 하는 일에 많이 민감한 걸 겁니다"
-91-92쪽

"흐음, 그럴지도 모르겠네"



"무서운 이야기예요. 이 정도까지 모든 게 다 시각화된다는 건 획일화를 조장하는 일입니다. 원본을 접할 기회도, 접할 필요도 없어요. 얼마든지 복사할 수 있으니까요. 난해한 철학책이나 두꺼운 세계문학전집도 해설서나 축약판이 나돌아다니죠. 책 따위는 읽을 필요없어, 자, 여기 이렇게 간단한 게 있잖아, 같은 식이거든요. 읽지마, 봐, 라고 말이에요. 다 함께 똑같은 걸 보자, 그런 거예요"

-91-92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zuaki 2006-08-11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구절에 밑줄긋기 하러 들어왔다가 추천만 하고 갑니다. 저 구절의 "일본"을 "한국"으로 바꾸어도 별 무리가 없지요? 슬프지만 나이 들면서 남한테 책 읽는다는 이야기는 안 하게 되더라고요. TV얘기 하면 화기애애해지지만 책 얘기하면 혼자 튀면서 분위기 썰렁해진달까;;;; 어쨌든 같은 부분을 좋아하는 분이 계셔서 좋으네요. 서재에도 한 번 놀러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