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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평점 :
많은 부분에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데올로기 비판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부분이 특히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반출생주의'에 대한 비판은 너무 억지스러웠다. "나는 새로운 생명을 낳지 않으려는 충동이 머지않아 지금 존재하는 생명들을 파괴하려는 충동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418쪽)"라니, 논리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요.;;;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일은 인간을 크게 바꿔 놓는데, 커다란 책임과 고통을 통해 인간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제대로된 판단력을 잃어버린 우스운 모습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는 것 같다. 어쨌든, 피터슨 덕분에 '반출생주의'에 흥미가 생겼으므로, 다음에는 데이비드 베너타의 책을 읽어야겠다!
주변에서 우리가 통제하려는 것들이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을 자주 보는 것처럼, 우리의 이해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한 발은 지러 안에 놓고 다른 발로는 그 바깥쪽을 디뎌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 - P19
위계 구조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은 유용하다. 감사와 겸손의 싹을 틔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왜 ‘감사’인가? 전문 지식이 당신보다 탁월한 사람들이 있다. 당신이 현명하다면 그 사실에 기뻐해야 한다. 세상에는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채워야 하는 자리가 무수히 많다. 믿을 만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 감사해야 할 일이다. ‘겸손’은 또 무슨 말인가? 충분히 안다 생각하고 꽉 막힌 사람이 되기보다는 모른다 생각하고 가르침을 청하는 편이 낫다. 내가 아는 것들과 친해지기보다는 모르는 것들과 친해지는 게 백배 낫다. 아는 것은 유한하지만 모르는 것은 끝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 P43
권력에 굶주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이 따로 있다. 전제적이고 잔인하며 심지어 병적이기까지 한 그들은 쾌락적이고 이기적인 변덕을 즉시 채우기 위해, 질투의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 분노를 마음껏 폭발하기 위해 권력을 탐한다. 반면에 선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집중력 있는 사람이 야심적인 이유는 실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 야심은 모든 면에서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 - P52
무정부주의자나 허무주의자들이 완전한 자유를 외치며 그럴듯하게 주장할 때, 그 밑에 잠재한 욕망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낭만주의 화가들의 그림에서 묘사되듯 숭고해 보이길 원하지만 사실은 모든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 할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타도하라’는 매력적인 구호가 될 수 없는 반면에, 그에 상응하는 ‘모든 규칙을 타도하라’는 영웅의 시체처럼 그럴싸하게 단장할 수 있다. - P61
스니치가 무엇을 상징하든 그것을 추적하고 포획하는 일이 다른 목표보다 더 중요하다. (중략) 이 문제에는 두 가지 방식으로 답할 수 있으며, 둘은 서로 중요하게 관련되어 있다. (중략) 추격꾼은 퀴디치 게임의 세부 상황을 무시하고 황금빛 공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디로 현실의 게임 참가자는 경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상관없이, 게임의 특수성과 별개로 도덕적 경기에 유념해야 한다. (중략) 스니치는 혼돈의 구처럼 근본적 중요성(의미)을 담은 ‘용기’라고 볼 수 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고 포획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 P86
어떤 것에 순간적으로 행복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본인에게 가장 유익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만 되면 인생은 정말 간단하겠지만, 지금의 당신이 있는 것처럼 내일의 당신이 있고 다음 주의 당신, 내년의 당신, 5년 뒤의 당신, 10년 뒤의 당신이 있으니, 가혹할지언정 당신은 모든 ‘당신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저주는 인간이 미래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일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과 관련이 있다. 일을 한다는 건 앞에 놓인 것의 잠재적 향상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한다는 뜻이다. - P155
우리는 무겁고 깊고 심오하고 어려운 어떤 것에 긍정적으로 빠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한밤중에 깨어나 의문에 휩싸일 때 다음과 같이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나는 결점투성이지만, 적어도 이 일은 하고 있어. 적어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 적어도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 적어도 내가 지기로 한 짐을 지고, 비틀거리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해 니아가고 있어.’ 진정한 자존감은 그렇게 형성된다. 자존감은 단지 순간순간에 당신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관련된 피상적인 심리 개념이 아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심리적일 뿐 아니라 실질적이다. - P165
부모들은 아이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기 위해 평생 노력한다. 교육 기관, 견습생 제도, 자원봉사 단체, 친목 모임 등에서도 같은 일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책임감을 주입하는 것이 사회화의 근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실수를 저질러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난 50년간 권리에 관해서는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으면서 젊은이들에게 요구해야 할 것을 말하는 데는 주저했다. (아래에 계속) - P192
(위에서 계속) 몇십 년 동안 젊은이들은 사회로부터 돌려받을 게 있으면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라는 말만 들었다. 우리는 그런 요구를 통해 젊은이들의 삶에 의미가 생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은 그와 정반대로 말해야 한다. 비극과 실망으로 가득한 인생에서 우리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의미는 고결한 짐을 짊어지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우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잘못된 장소에 눈길을 주며 성장해왔다. 그로 인해 젊은이들은 취약해질대로 취약해져서, 쉬운 길에 잘 넘어가고 걸핏하면 분노의 독에 감염된다. - P192
어떤 집단도 죄가 있다고 미리 가정해서는 안 되고, 그 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건 고소인이 악한 의도를 지녔다는 징표이며 사회적 재앙의 전조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실질적인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서 스스로를 억압자의 네메시스(복수의 여신)이자 피억압자의 수호자로 임명한다. - P207
현실은 대규모의 정교한 과정들과 체계들로 구성되어 있는 탓에 포괄적이고 단일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20세기에 유행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은 순진하고 자기도취적이며, 그것이 조장하는 운동들은 분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거짓된 성취감을 준다.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이 신봉하는 공리들은 개종을 주도하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신과 다를 바가 없다.(아리에 계속) - P209
(위에서 계속) 하지만 신은 죽고, 이데올로기도 죽었다. 20세기의 피비린내 나는 과잉에 스스로 질식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보내고, 더 작고 정확하게 정의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해야 한다. 문제를 정의할 때는 남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크기로 개념화하고, 문제를 개인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그 결과를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겸손하라. 방을 청소하라. 가족을 보살피라. 양심을 따르라. 바르게 살라.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일에 전념하라. 이것들을 잘 해냈을 때 더 큰 문제를 찾아 도전하라. 여기에서도 성공한다면 더 야심찬 계획으로 이동하라. 이 모든 과정에 꼭 필요한 출발점으로서,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 P209
진정한 예술품은 초월자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우리는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 무지에 매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창이 필요하다. 초월자와 연결되지 못하면 위협적인 도전 과제들을 이겨낼 수가 없다. 바다에 빠진 사람에게 구명구가 필요하듯이 우리는 자신 너머에 있는 어떤 것과 연결고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 연결고리란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예술의 역할을 이해하고, 예술을 더 이상 선택이나 사치, 가식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예술은 문화의 토대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심리적 통일성을 이루고,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 P237
창조적인 사람이 도시에서 하는 역할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그들은 약간 궁핍하다. 예술가로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인데, 사실 그런 가난은 예술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궁핍의 유용성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들은 도시를 탐험하고, 한때는 좋았으나 지금은 쥐가 돌아다니고 범죄가 만연할 법한 지역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곳저곳 찾아다니고 살펴보고 뒤적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조금만 손을 보면 멋진 곳이 될 수 잇겠는걸’, 예술가는 그 동네로 이사해서 중고 자재로 화랑을 만들고 작품을 전시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건 아니지만, 덕분에 동네가 약간 세련되어진다. 아주 위험했던 곳이 점차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변모한다.(아래에 계속) - P250
(위에서 계속) 그러자 커피숍 하나가 생기고, 색다른 옷 가게도 문을 연다. 그런 뒤 젠트리파이어gentrifier, 즉 빈민가를 고급화하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들도 창의적인 부류지만, 예술가보다는 보수적이다. (덜 절박하고 위험을 기피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변경에 가장 먼저 오지는 않는다.) 이어 개발업자가 나타난다. 잠시 후 체인점이 생겨나고, 중산층이나 상류층이 자리잡는다. 이제 예술가들은 떠나야 한다. 임대료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래에 계속) - P250
(위에서 계속) 이런 현상은 전위예술에 손해지만 나쁘지 않다. 가혹한 면이 있긴 해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그곳에 예술가가 머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다른 곳에 활기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다른 풍경을 정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예술가들의 자연환경이다. 예술가들이 혼돈을 질서로 변화시키는 그런 변경은 거칠고 위험한 곳이다. 그곳에 사는 동안 예술가는 혼돈에 빠져버릴 위험에 수시로 직면한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항상 인간이 이해하는 영역의 가장자리에서 살아왔다. - P250
반출생주의는 단지 출산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새로운 생명을 낳지 않으려는 충동이 머지않아 지금 존재하는 생명들을 파괴하려는 충동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큰 동정심에 휩싸여 어떤 삶들은 너무나 끔찍하니 그 고통을 끝내주는 것이 자비로운 일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나치즘 초기에 그런 철학이 출현했다. 인생에 의하 참을 수 없이 망가진 듯 보이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자비로운’ 목적을 위해 안락사시킨 것이다. - P418
당신이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은 바보같이 순진해서가 아니다. 삶이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언 더더욱 아니다. 자기 자신과 세계에 가장 좋은 것을 주고 당신이 현재 무엇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획득할 수 잇는지를 잊지 않기로 용감하게 결심했기에 감사할 수 있다. 모든 존재와 가능성에 대한 감사는 세상의 변덕스러움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태도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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