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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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쉽고 요점이 분명하다.

이 병은 1494년부터 그 이듬해에 걸쳐 프랑스 샤를8세가 나폴리를 포위했을 당시 유행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남아 있다. (중략) 프랑ㅅ군 진영에 있떤 용병들은 프랑스와 영국, 독일, 스위스, 폴란드, 헝가리 등 각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들은 이 무시무시한 병을 유럽 전역에 골고루 퍼뜨렸다. 매독은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병‘, 폴란드에서는 ‘독일 병‘,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병‘, 영국과 이탈리에서는 ‘프랑스 병‘으로 불렸다. 정체불명의 꺼림찍한 질병을 남의 나라 탓으로 돌리고 싶어 했떤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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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
강양구 외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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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아직 흡연의 해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내가 갓 서른을 넘겼을 무렵, 도서관에 있는 진중권의 책을 하나씩 하나씩 전부 빌려 읽었던 적이 있다. 경쾌하게 움직이는 두뇌와 폭넓은 독서 경험에, 자유에 대한 열망과 어리석고 거짓된 것들에 대한 증오가 더해진 그의 글은, 읽는 것만으로 해방감이 느껴졌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책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고, 이제는 10년도 더 전이 된 그 때의 일이 기억났다. 다른 네 명의 저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진중권이라면 믿고 읽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다 읽고 난 감상은, 다섯 명의 공동저자 중에 진중권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의 진중권의 역할은 요즘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공동저자들의 말을 분위기를 맞춰가며 잘 들어주는 것이다. 머리가 좋고 아는 것이 많은 아재라 찰떡같이 알아듣고 필요할 때 정리도 잘 해 주고 궁금한 대목에서 질문도 잘 해 주고 보충 설명도 적절하게 잘 해 주어서 아주 도움이 된다. (서민 역시 비슷하게 청중 역할을 하고 있다. 이쪽은 진중권보다 더 아는 것이 없는 만큼 아는 것 없는 독자와의 거리가 더 가까운데, 그래도 서울의대를 나온 머리는 어디 가는 게 아니어서 같이 얘기하고 있으면 든든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새로운 정보는 주로 김경율 회계사, 권경애 변호사로부터 들은 것들이었다. 조국 사건에 대한 뉴스 보도가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음에도 내가 이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 자체를 그들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모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히 충격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거 알았느냐고 물어보며 그들도 대부분 나와 같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 방송과 인터넷을 통한 대중 조작이 이 정도까지 왔다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지 않으면, 자기가 속는 줄도 모르고 속아 넘어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답답한 세상에, 그래도 이렇게 친절하게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똑똑한 선배님들이 열을 올려 하는 이야기 자리에 끼어 앉아, 말은 못 해도 가슴을 두근거리며 행여나 놓칠 세라 한 대목 한 대목을 열심히 듣고 있는 어리버리한 후배가 된 것 같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결국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니까, 지금은 이런 정보를 얻어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진중권) 뉴스의 비판적 수용자는 사라졌고 오늘날 대중은 자신을 콘텐츠 소비자로 이해합니다. 진위보다는 핵잼, 노잼으로 평가의 기준이 바뀌죠. 이제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는 기사를 원하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말, 재미있는 말을 해주는 기사를 요구해요. 굉장히 감성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죠. 설사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 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아요. 왜냐면 그것은 문화 콘텐츠잖아요. 예컨대 사극을 보면서 "기거 다 거짓말이야"라고 비판하지 않잖아요. 극의 내용이 역사책과 다르다면서 화내지 않습니다. 이런 것처럼 거짓말해도 용서가 되는 거죠. (중략) 이른바 포스트 트루스, 탈진실 현상들이죠. 요즘 대중은 ‘독자’로서 신문기사에 진실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소비자’로서 자기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기를 원합니다. 거짓말이라도 듣기 좋으면 되는 거죠. 이른바 ‘소비자 민주주의’ 현상인데, 이는 사실 민주주의라고 하기 힘든 거죠.
- P26

(강양구)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판단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지 않습니까. 비판하고 따질 준비를 해야 하고, 과정 과정마다 토론이 필요하니까요. 게다가 ‘옳다 그르다’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맥락에 따라 옳은 것이 그를 수도 있고, 그른 것이 옳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섬세한 독해가 요구됩니다. 그런데 ‘옳다 그러다’를 ‘좋다 싫다’로 바꿔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게 편하고 선명해집니다.
- P28

(진중권) 옹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는 책에서 구술문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상태를 조사한 것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구술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어조는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고 호전적이고 격정적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개인주의’도 실은 문자문화의 산물입니다. 구술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독립적인 개인이라기보다는 촌락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깁니다. 마셜 매클루언이 ‘지구촌’이라고 했지요. 이 촌락문화가 전자매체의 영향으로 지구적 차원으로 확산됐다고 할까?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친구가 뚝뚝 떨어져나가면 굉장한 상실감을 느끼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고, 마치 공동체로부터 처벌을 받은 느낌 혹은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한 느낌을 받게 되죠.
- P47

(진중권) "언어가 말을 한다" 하이데거의 말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프레임을 받아들이면 계속 그 프레임이 허용하는 말만 하게 된다는 거죠.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라, 뇌에 입력된 프레임이 그의 입을 움직이는 거죠. 또 하이데거는 "민중은 항상 창작을 한다"는 말도 했어요. 민중은 늘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과학의 시대에도 민중은 모든 것을 스토리텔링으로 번안해, 그것을 현실로 여기고 싶어 합니다. 과학적 설명은 너무 복잡하고 짜증나잖아요. 게다가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거든요.
- P83

(강양구) 사실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민주화 운동가 출신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여권의 정치 원로의 고백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람이 없어." 그가 이렇게 말한 맥락이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만 해도 앞에서 여러분이 언급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내가 건의했다", "나랑 토론했다" 이런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렸거든요.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에는 독대해서, 토론하고, 건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 했다는 거예요.
- P259

(강양구) 어딘가 하소연하고 싶을 때, 딱 자기 마음을 알고 대신 말해주는 정당. 그런 정당이 있으면 거기가 내 편이 되는 거잖습니까?
(진중권) 그런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진보주의자들은 항상 너희들은 무식해서 그러는 거야. 뭘 몰라서 그러는 거야. 비꼬고, 비웃고, 조롱하고 이런 코드였잖아요.
(강양구) 그런 말을 진중권 선생님이 하는 것은 좀 거시기하네요. 그랬던 당사자 아닙니까.
(진중권) 그러다가 이 꼴이 됐잖아. 내가 산 증인이에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데 난 이 버릇 못 고칠 것 같으니까 여러분이라도 그러지 마세요.
- P279

(진중권) 정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고,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에요. 저들은 권력을 잡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잖아요. 자신이 가진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사실은 권력을 잡지 못한다 해도 다른 수단으로, 즉 정치를 견인하는 것으로도 사회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유권자들은 저 작은 의석수를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지지해 봐야 사표 되는 거 아닌지 걱정합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 해요. 우리가 국회 10석 가지고 이런 일들을 했는데, 20석이면 오죽하겠냐고 설득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배패감에서 벗어나야 해요. 패배의 기억은 저번처럼 자연스레 민주당과의 연대에 골몰하게 만듭니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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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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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출발점을 잘 보여주는, 짤막하지만 의미심장한 소설. 유머러스한 점이 특히 좋다. 자기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저질러 온 어리석은 짓에 대한 40대 작가의 이불킥이 들어있는 듯해서 호감이 간다.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가 누구든 간에 절대 이성과 이익의 명령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길 좋아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할 수 있고 이따금씩은 꼭 그래야만 한다.
- P43

나는 녹초가 될 정도로 흥분에 시달렸다. 내 손으로 구두도 한 번 더 닦았다. 아폴론은 세상에 어떤 일이 있어도 구두를 하루에 두 번씩 닦지는 않을 위인, 그런 건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할 위인이었다. 해서, 내가 직접 구두를 닦은 것이었는데, 어쩌다 저놈한테 들켜서 나중에 멸시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구두솔은 현관에서 몰래 가져왔다.
- P109

"안 돼!" 나는 다시 썰매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이렇게 예정된 일이다, 이건 숙명이다! 달려, 더 빨리 달려라, 거기로!" 이렇게 조바심을 내며 나는 주먹으로 마부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아니, 나리, 왜 사람을 치고 그러쇼?" 이렇게 소리를 치면서도 무지렁이 마부는 여윈 말을 채찍질했고, 때문에 말은 뒷발을 힘껏 구르기 시작했다.
- P134

가령 이놈의 월급만 하더라도 이삼 일도 미룰 수 없었다. 그랬다간 엄청난 소동을 일으켰을 것이고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으려고 절절 맸을 것이다. (중략) 그러니까 이놈은 일단 굉장히 엄한 눈초리를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몇 분 동안 계속 나한테서 눈을 떼지 않는데, 나를 맞이하거나 외출하는 나를 배웅할 때는 특히 더 그랬다. 내가 가령 이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는 척하며 견뎌 내면 이놈은 예전처럼 말없이 다음 단계의 고문에 착수했다. 즉, 내가 방을 거닐거나 책을 읽고 있을 때 갑자기 밑도 끝도 엇ㅂ이 어슬렁거리며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와 문 옆에 멈춰 서선 한쪽 손은 등 뒤로 돌리고 한쪽 발은 뒤로 뺀 채 이미 엄격하다기보다는 완전히 경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래에 계속)- P175

(위에서 계속)
내가 갑자기 이놈한테 무슨 용건이냐고 물으면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몇 초간 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 다음에, 왠지 유별나게 입술을 앙다물고 사뭇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자리에서 느릿느릿 몸을 돌려 또 그렇게 느릿느릿 자기 방으로 물러난다. 그러다 두 시간쯤 지나면 갑자기 또 자기 방을 나와 또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중략) 이러고도 내가 정신을 못 차려 계속 반항하면 이놈은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이런 한숨만으로 나의 정신적 타락의 심연을 몽땅 재려는 듯 길고 깊은 한숨이었다. 물론 결국에는 이놈의 완전한 승리로 끝났다. 나는 미친 듯 날뛰며 고함을 질러 대지만 어쨌든 문제가 됐던 그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됐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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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 개정판
데이비드 콰먼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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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실들에 대한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 몸을 아끼지 않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체험한 모험들의 생생한 기록 , 여러 인물들에 대한 매력적인 묘사, 세련되고 지적인 유머가 있는 책이다. 

양도 아주 넉넉해서 오랫동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포식자란 외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큰 맹수들이다. 반면 병원체(바이러스 등 질병을 일으키는 매개체)는 내부로부터 먹잇감을 찾아 잡아먹는 비교적 작은 맹수들이다.
- P26

실험실에서 일하는 바이러스학자들은 왁자지껄 떠들고 다니는 타입이 아니다. 술집에서 과장된 손짓을 해가며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지 자랑삼아 떠벌이는 바이러스학자는 없다. 이들은 대개 핵엔지니어처럼 집중력이 뛰어나고 말쑥하며 조용하다. 하지만 야생에서 바이러스가 어디 사는지 찾아내는 일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그리즐리 곰을 잡아 서식지를 옮겨놓는 일처럼 위험수준을 통제하기 어려운 현장업무다. 물론 야생에서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사람들 또한 실험실의 전문가들처럼 소란스럽고 부주의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럴 여유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일은 훨씬 시끄럽고 어수선하며 예측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 P33

내게 수학이란 직접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번역된 문학작품을 통해 존경심을 갖고 있는 언어와 비슷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러시아 문학이나 카프카, 무질, 토마스 만 등의 독일 문학과 같달까. 학창시절에는 라틴어만큼이나 대수학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타고난 재주가 신통치 않았던지 아이네이스의 비밀스런 음율만큼이나 미분방정식의 오묘한 음악도 도통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20세기 초에 말라리아와 다른 감염병의 유행을 둘러싼 연구에서 비롯된 다른 두 가지 수학적 질병이론이 중요할 뿐 아니라 흥미롭다고 말한다면 독자들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조차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면 틀림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P178

"현장에서 일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분자생물학자입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에게 주택 페인트 작업도 하느냐고 질문한 격이었을지 모르지만 레오 푼Leo Poon은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칭찬할 사람을 칭찬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제 동료 중에 고양이과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구안 이Guan Yi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학자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데다 황동으로 만든 마카크원숭이만큼이나 배짱이 좋지요. 이 친구가 중국에 가서 지방 관리들을 구워삶았답니다. 선전에서 살아 있는 동물을 취급하는 시장 중에 제일 큰 곳을 찾아가 동물들의 인후와 항문, 그리고 배설강에서 면봉으로 검체들을 채취해왔다지 뭡니까.
- P230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또 한 가지 요인은 SARS-CoV가 인체를 침범하는 방식 자체일 것이다. 우선 증상이 감염력이 매우 높아지기 전에 나타난다. 두통, 발열, 오한, 아마 기침까지도 본격적으로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전에 시작된다. (중략) 독감을 비롯한 많은 질병에서는 이 순서가 반대다. 증상이 나타나기 며칠 전부터 이미 감염을 퍼뜨리고 다닌다. 위험이 닥친 후에야 경고가 따라오는 셈이다. 사스라는 질병이 이랬다먼 2003년 유행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고 훨씬 암울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 P258

11월의 코네티컷 숲 속에 사는 흰꼬리사슴은 금요일 밤 맨해튼 남부의 독신자 전용 술집만큼이나 짝을 찾는 음란한 동물들로 바글거린다. 불쌍하게도 암사슴 한 마리의 몸 위에 검은다리진드기 성체가 1천 마리 정도 붙어 있을 수도 있다. 사슴의 피부를 기어다니던 진드기 수컷이 이미 자리를 잡고 사슴의 피를 빠느라 꼼짝할 수 없는 암컷과 마주치는 순간 짝짓기가 이루어지는데 이때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절지동물의 섹스에 로맨스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배를 채운 암컷과 욕정을 채운 수컷은 사슴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파트너를 찾는다.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므로 4주에 걸친 진드기 생식 기간 동안 한 마리의 흰꼬리사슴이 200만 개의 진드기 수정란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혈액을 공급한다. 반만 부화해도 사슴 한 마리당 백만 마리의 유충이 기생하게 된다.
- P314

오스트펠트Richard Ostfeld는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생태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지 않다. 그건 모호하고 뻔한 소리일 뿐이다. 과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동물종이 다른 동물종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떻게 변화나 교란이 일어나고, 그 결과는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일이다.
- P324

광견병의 숙주는 대개 개나 여우, 스컹크, 또는 날카로운 이빨로 다른 동물을 무는 육식동물이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이들의 뇌로 들어가 공격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숙주는 미쳐 날뛰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그 사이에 바이러스는 뇌뿐만 아니라 침샘으로도 이동한다. 침을 통해 새로운 희생자의 몸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결국 숙주가 광견병으로 죽거나, 애티커스 핀치Atticus Finch의 총에 맞아 죽더라도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를 전염시키는 데 성공한다.
- P372

마지막 박쥐를 놓아주기 전에 앱스타인Jon Epstein은 아리프의 통역으로 주민들에게 짧게 연설을 했다. 우선 과일나무와 다른 식물들에게 도움이 되는 멋진 박쥐들이 그토록 많다는 데 대해 마을 사람들의 큰 행운을 축하하며, 자신과 팀원들은 박쥐의 건강을 연구하면서 동물들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주지시켰다. (중략) 나중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 여섯 마리 중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니파 바이러스에:인용자)감염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게 어려운 점이에요. 완벽하게 건강해 보이죠? 겉으로는 구별해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조심을 하는 거지요."
- P427

사람들은 걱정한다. 심각하다는 정도는 어렴풋이 안다. 하지만 과학적인 사실들을 자세히 알아볼 시간이 없고, 관심도 없다. 경험상 그런 주제, 즉 무시무시한 신종 질병이나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 세계적인 유행병에 관해 책을 슨다고 하면 자세한 내용을 궁금해하기보다 결론만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질문한다. "우린 다 죽는 건가요?" 언제부턴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죽는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두 세금을 내야 하고,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대부분 오리나 침팬지나 박쥐로부터 인간에게 전파된 신종 바이러스보다는 훨씬 평범한 원인들로 죽을 것이다.
- P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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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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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번역자 김명남은 199@년 KAIST 학부 입학시험의 여학생 수석 합격자였다. 내가 이 사실을 아는 이유는 그 해 봄에 김명남이 대학 입학을 위해 2년 만에 ‘수료’ 하고 떠난 과학고등학교에 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학교에는 ‘김명남 전설’이라고 부를 만한 일화들이 여럿 돌아다니고 있었다. 입학 두 달 후, 스승의 날을 맞아 모교를 찾아온 ‘1기 선배님들’ 중에서, 친구들 틈에 작은 몸을 숨기듯이 하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커트 머리 여자애를 ‘저 사람이 김명남이구나.’하고 눈여겨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4년 후,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린 “시크릿 하우스”라는 책을 통해 그 대단했던 선배가 과학자가 아닌 번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놀라움과 반가움에 이어 ‘역시나’ 하는 납득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김명남 전설’을 말씀하시던 여러 선생님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찬미자는 영어를 가르치신 김정희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우리 꼬마 명남이”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던 김정희 선생님의 구호는 “grammar보다 usage!!"였다.. 선생님은 주교재였던 성문종합영어 외에도 영어의 usage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교재들을 어리버리한 고1 아이들 위에 폭격처럼 쏟아부으셨다. 여러 가지 주제의 잡지 기사들, 휘트먼과 프로스트의 시들, 영한대역의 ”이솝 이야기“, ”아이아코카 자서전“, ”역사란 무엇인가“ 등에 나는 일찌감치 두 손 들고 항복해 버렸고, 수업 시간마다 나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단어들에 대한 쪽지시험을 거의 백지로 내면서, 열등생의 암울함을 곱씹어야 했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글 중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진 글이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 Authority and American Usage"이었던 덕분에, 좀 이상했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옛 선생님에 대한 그리운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선생님의 애제자였던 김명남은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에 대한 열렬한 애호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 책의 표제작인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만큼 짜릿한 글을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다.”라는 그의 말은 책날개와 광고 문구에도 인용되었다. “번역가 김명남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글이라니 어디 한번 읽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든 독자는 아마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많은 독자들이 “역시나 좋은 글이군.”이라는 감상을 가지고 책을 덮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글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 외에 마음속에 남는 것은 이번에도 납득이다. “이러니까 김명남이 좋아하겠구나.”라는 납득. 그 납득의 이유는 저자와 번역자가 공유하고 있는 재능과 성실함이다. 첫 번째 글을 읽을 때부터, 월리스라는 사람은 표지 그림의 머릿수건과 장발과 수염이 만들어내는 인상과 달리 ‘자유로운 영혼’은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에세이를 가장한 광고에 분노하고, 학생들이 써낸 작문의 틀린 영어 어법에 좌절하고, 9.11 테러 이후의 애국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패닉에 빠지는, WASP 남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고 미국에 대한 애증에 시달리다 결국 자신이 자신이라는 것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는 이 남자는, 사실은 무섭게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글들이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었다.

 

  타고난 기질, 부모의 가치관, 그리고 정성스러운 교육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확실하게 몸에 붙은 그런 성실성이 비범한 재능과 만나서 만들어내는 결과들은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한다. 김명남의 번역이 그렇고, 월리스의 에세이가 그렇고, 그 둘이 만나서 이루어낸 이 보물 같은 작은 책이 그렇다. 

미국인들이 꿈꾸는 궁극의 휴가가 죽음과 부패의 거대한 원시 엔진 속에 들어앉는 일이라는 사실은 언뜻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7NC 호화 크루즈에서, 우리는 죽음과 부패를 넘어서는 승리의 환상을 다양하고 교묘하게 구축할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엄격한 자기 개선을 통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각성제를 맞은 듯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선원들의 선박 유지 보수 활동은 다이어트, 운동, 비타민 보조제, 성형수술, 프랭클린 다이어리 시간 관리 세미나 등등 개인적인 자기 관리에 대한 노골적인 비유나 마찬가지다. 죽음을 외면하는 방법은 또 있다. 관리가 아니라 자극이다. 열심히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는 것이다. 7NC의 쉼 없는 활동, 파티, 축제, 명랑함과 노래는 아드레날린, 흥분, 자극이다. 그것은 당신에게 활기와 생기를 안긴다. 당신의 존재를 불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 P31

호화 크루즈 여행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절망은, 내가 무슨 수를 써도 나의 본질적이고 새삼 불쾌한 미국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일부 비롯한다. 그리고 이 절망은 항구에서 절정에 달한다. 난간에 서서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속하는 사람들 무리를 내려다볼 때, 이 위에 있든 저 밑에 있든 나는 미국인 관광객이고, 따라서 그 정체성상 크고, 살찌고, 벌허고, 시끄럽고, 거칠고, 오만하고, 자기 생각뿐이고, 응석꾸러기이고, 외모에 신경 쓰고, 창피해하고, 절망하고, 탐욕스럽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솟과 육식동물이다.
- P106

가족 내 오래된 농담에 따르면 SNOOT가 "언어 감각은 지속적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 Sprachgefuhl Necessitates Our Ongoing Tendance"의 약자인지 "우리 시대의 문법 바보 Syntax Nudniks Of Our Time"의 약자인지는 당신이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 P189

나는 대학에서 강사로 영어를 가르친다. 주로 작문이 아니라 문학이다. 하지만 나는 어법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나머지, 매 학기 똑같은 일을 벌인다. 학생들이 제출한 첫 페이퍼를 읽으면, 정규 강의 계획서를 당장 내버리고 3주에 걸친 ‘응급 어법 및 문법 교정 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내 태도는 정맥주사를 쓰는 약물 사용자들에게 HIV 예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의 태도와 같다. (중략) 나는 화가 나고, 그런 내가 옳다고 확신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각자 고향의 고등학교 위원회를 고소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 말은 진심이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다. 나한테, 그리고 나를 위해서.
- P190

솔직히 민주적 정신의 조건인 엄정함, 겸손함,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은 어떤 문제들에 관해서는 유지하기가 워낙 어려워서, 우리는 그냥 기성의 여러 교조적 진영들 중 하나를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에 저항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그냥 그 문제에 관해서 그 진영의 노선을 추종하고, 그 진영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힘으로써 유연성을 잃고 다른 진영들은 모두 사악하거나 정신이 나갔거나 둘 중 하나라고 믿고, 나아가 그 다른 진영들에게 소리치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내가 볼 때, 복잡한 동시에 감정까지 격한 문제에서는 민주적 정신보다 교조적 정신을 품는 편이 단연코 더 쉽다. 그리고 현대 미국 영어 어법에서 ‘정확성’을 둘러싼 문제는 바로 그 복잡한 동시에 감정까지 격한 문제에 해당한다.
- P193

기술주의는 미국 영어 교육을 아주 신속하고 철저하게 장악했기 때문에 1970년경 이후 중학교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쓰기를 기술주의적 방식으로 배웠다. ‘자유롭게 쓰기’, ‘브레인스토밍 하기’, ‘일기 쓰듯 쓰기’ 등의 기법을 통해서. 이것은 글쓰기를 소통 수단이라기보다는 자기탐구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고, 체계적 문법, 어법, 의미론, 수사법, 어원은 내다버리는 시각이다.
- P208

모든 사전 편찬자에게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사전 제작이 이데올로기를 회피하거나 초월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생각이다.
- P216

아이들은 학교에서 집단-포함과 집단-배제를 배운다. 전자에는 보상이 주어지고 후자에는 벌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배우고, 친밀함과 포함의 신호로서 방언이나 구문이나 속어를 사용하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은 곧 담론 공동체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나 사회 수업에서 배우는 것이다. 놀이터, 버스, 점심시간에 배운다. 또래들이 스누틀릿을 배척하거나, 그에게 끔찍한 사중 웨지를 가하거나(wedgie는 남의 팬티를 바지 엉덩이 위로 끌어당겨 드러내는 장난이다 - 옮긴이), 그를 붙들고 돌아가며 침을 뱉을 때, 그 현장에서는 진지한 배움이 이뤄지고 있다. 스누틀릿을 제외한 모두가 배운다. 사실 스누틀릿이 배우지 못한다는 점이야말로 그가 애초에 핍박받는 이유다.
- P243

스누틀릿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또래 집단은 가족을 제치고 제일 중요한 집단으로 올라선다. 이 집단은 정의상 전통적 권위를 거부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이들이 인식하는 주류 성인 사회의 방언이 표준 문어체 영어이기 때문에, 표준 문어체 영어만큼 전통적 권위를 잘 상징하는 것은 또 없다. 사춘기가 속어와 암호와 하위 방언의 하위 방언이 사방에서 폭발하는 시기인 것, 부모들이 갑자기 자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는 시기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 P245

유행어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모든 문장은 최소한 두 가지 소통 기능을 수행하고 -하나는 명식적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 다른 하나는 화자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 두 기능 사이에 균형을 잡기 마련인데, 유행어는 그 균형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유행어가 "별 목적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가너의 말은 틀렸다. 유행어는 오히려 화자를 특정 모습으로 내세우려는 목적을 너무 많이 수행한다. (설령 그 목적이 유행을 잘 아는 사람인 척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일종의 헛소리 감지 안테나가 있어서, 그 불균형을 무의식적으로 포착해낸다. 스누트가 아닌 사람들조차 유행어를 짜증스럽고 진저리나게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 P259

어쩌면 내가 직업상 이런 글을 너무 많이 읽는다는 점과 내 타고난 스누트성이 결합된 탓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학술 영어가 그저 하나의 방언이 아니라 표준 문어체 영어가 그로테스크하게 타락한 형태가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다. 나는 이 언어를 과장되고 부조리한 대통령 영어나 우스꽝스러운 경건함을 띤 비즈니스 언어보다 더 혐오한다. 그리고 내 철저한 경멸과 불관용을 지지해줄 사람으로 권위자 중의 권위자를 댈 수 있으니, 그는 바로 조지 오웰이다. 오웰은 이미 50년 전에 학술 영어를 "모호함과 순수한 무능의 혼합"으로 규정하고 "거의 아무 의미 없이 길기만 한 문장이 수시로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 P263

대학 신입생 작문 수업에서도 학생들의 나쁜 글은 게으름이나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두려움의 결과인 경우가 훨씬, 훨씬 더 많다. 선생이 학생들의 두려움을 파악하고 돕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들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는 데까지는 채 이르지도 못할 때가 많다.
- P265

수사적 용어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윤리적 호소, 논리적 호소(=논증의 타당성 혹은 건전성), 감정적 호소(=논증의 감정적 영향) 사이의 구분이 거의 무너졌다. 혹은 세 종류의 호소가 서로 영향을 너무 많이 주고받기 때문에 이제 오직 ‘이성’에만 근거해서 논증을 전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P266

철두철미한 규범주의자들이 오늘날 미국 문화에서 아주 미미한 주벼부 집단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인의 대화란 기본적으로 논쟁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실수, 무정부 상태, 고모라풍 퇴폐보다는 신권정치, 독재정치, 그 밖에도 그 목적이 논쟁이나 설득이 아니라 토론 자체를 무기한 중단시키는 것인 이데올로기를 훨씬 더 두려워한다.
- P273

한편 강경한 기술주의자들은, 스스로 냉철한 과학주의를 따르며 가치보다 사실을 선호한다고 공언함에도 불구하고, 수사적으로는 주로 파토스에, 즉 본능적으로 와 닿는 감정적 호소에 의존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때 관여하는 감정은 1960년대에서 비롯한 좌파적 감정이다. 권위적 관습, 엘리트주의적인 거만함, 고지식한 제약, 궤변, 백인 남성 위주의 편견, 속물성, 모든 형태의 뚜렷한 자부심 등등에 대한 반감이다. 요컨대 문법학자들의 깐깐한 감시와 버클리풍 엘리트들의 나른한 지적에 드러나는 태도에 대한 반감인데, 공교롭게도 바로 이 두 집단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스누트들이다. - P273

방법론적 진영이든 철학적 진영이든 유사 진보적 진영이든, 모든 기술주의자는 본질적으로 선동가다. 그리고 사실 기술주의자들에게는 교조적 규범주의자야말로 가장 귀중한 자산이다. 미국인은 교조주의와 엘리트주의적 둔감함에 본능적으로 반감을 품으니, 교조적 규범주의의 존재는 기술주의의 감정적 호소에 기꺼이 귀 기울일 청중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 P273

관광객으로서의 나는 경제적으로는 유의미하지만 실존적으로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된다. 시체에 들러붙은 벌레 같은 존재가 된다.
- P313

이 밖에도 도스토옙스키의 많은 인물들은 -프랭크가 "엄청난 생명력"이라고 불렀던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 있다. 그저 그들이 인간의 여러 유형이나 여러 측면을 능숙하게 그려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그럴싸하고 도덕적이고 설득력 있는 플롯 속에서 행동하면서 모든 인간의 가장 심오한 부분, 가장 갈등이 많은 부분, 가장 진지한 부분, 즉 가장 많은 문제가 걸려 있는 부분을 드라마화하기 때문이다.
- P354

요컨대, 도스토옙스키는 정말로 중요한 것들에 관해서 소설을 썼다. 그는 정체성, 도덕적 가치, 죽음, 의지, 성적인 사랑 대 영적인 사랑, 탐욕, 자유, 집착, 이성, 믿음, 자살에 관해서 소설을 썼다. 게다가 자신의 인물들을 대변인으로 격하시키거나 자신의 책들을 팸플릿으로 격하시키지 않고서도 그 일을 해냈다. 도스토옙스키의 관심은 늘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즉, 어떻게 진짜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 P355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프랭크의 전기를 다 읽은 미국의 진지한 독자/작가는, 왜 현재 우리의 소설가들이 고골이나 도스토옙스키에 비해 (심지어 레트몬토프나 투르게네프처럼 좀 더 경량급 작가들에 비해서도) 주제 면에서 얕고 가벼우며 도덕적으로 빈곤한지를 골똘히 생각해보게 될 것이라고. 프랭크의 전기를 읽은 우리는 절로 이렇게 자문하게 된다. 왜 우리는 우리의 예술이 심오한 신념이나 절실한 질문으로부터 늘 어느 정도 아이러니한 거리를 두도록 만들까? 그래서 오늘날의 작가들은 그런 신념이나 질문을 우스개 취급한다. 설령 다루더라도 텍스트간 인용이나 부조화스러운 병치 따위의 형식적 장난으로 위장하여, 진짜 절박한 내용은 무슨 다면적 낯설게 하기 전략 따위의 쓸데없는 짓으로 별표 사이에 가둬두곤 한다.
- P364

그러니 그는 -우리는, 우리의 소설가는- 진지한 예술을 통해서 어떤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일은 감히 시도하지 않을 (못할) 것이다. 그런 작업은 메나르의 "돈키호테" 같아 보일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비웃거나 우리 때문에 당황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고 이 상황은 기정사실이다), 우리의 진지한 소설들의 진지하지 못함을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까? 문화? 비웃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만약 도덕적으로 열정적이고 열정적으로 도덕적인 소설이 그와 동시에 독창적이면서도 아름답도록 인간적이기까지 하다면, 감히 비웃지 않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어떻게 만들까? 어떻게 -오늘날의 작가가, 제아무리 재능이 있는 작가라도- 그것을 시도할 배짱이라도 부릴 수 있을까? 확실한 공식이나 약속은 없다. 하지만 본보기는 있다. 프랭크의 전기는 바로 그런 본보기 하나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정말로 교훈적으로 보여준다.
- P368

모든 인간 문화는 가짜 신화이든 정치경제적 서사이든 이야기를 통해서 스스로를 독립된 문화로 규정한다. 모든 사람은 여러 사건과 변화로 구성되고 최소한 시작과 중간이 있어서 남에게 들려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자기 인생을 이해한다. 우리는 시공간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인간에게 내재된 속성이다.
- P429

그런데 오늘날 CY작가들의 입장에서, 미국 독자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는 이야기 패턴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아무리 너그러운 기준으로 봐줘도, 이야기 예술로서 텔레비전은 몹시 저급한 형태다. 텔레비전은 변화시키거나, 계몽시키거나, 확장시키거나, 새로운 방향을 알려주려고 애쓰는 이야기 예술이 아니라 -심지어 꼭 ‘즐겁게 해주려고’ 애쓴다고도 할 수 없다- 그저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이야기 예술이다. 텔레비전의 유일한 목적은 -공공연히 인정되는 목적은- 지속적 시청을 확보하는 것이다.
- P429

텔레비전의 최대 매력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관심을 잡아둔다는 점이다. 시청자는 자극을 계속 겪으면서도 쉴 수 있다.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받기만 한다. 이 점은 오로지 지속적 관심과 후원만을 목표로 삼는 모든 저급 예술이 다 마찬가지다. 재미와 편안함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바로 이 특징이 그런 예술의 호소력이다.
- P429

쓰레기 소설은 구조와 호소력 면에서 대체로 텔레비전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독자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관심을 붙잡아 두기만 하기 때문이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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