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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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오웰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내 생각에 이 사람의 날카로운 지성과 고결한 양심은 그가 받은 신사 교육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오웰이 경탄해 마지 않는 스페인 사람들의 관대함은 그가 다른 글에서 경멸적인 어조로 공격했던 가톨릭이라는 종교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상 사회주의 진영으로 들어가서 글을 썼지만, 오웰은 그전이나 그후에 있었던, 당파적 이익을 위해 정직성을 포기하는 수많은 좌파 지식인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사람이다. 믿고 읽어도 되는 작가 한 명을 찾아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참호전에서는 다섯 가지가 중요하다. 땔감, 식량, 담배, 초, 그리고 적이다. 겨울의 사라고사 전선에서는 이 다섯 가지가 이런 순서별로 중요했다. 적이 가장 나중이었다. 밤에는 늘 기습 공격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러나 그때를 제외하면 아무도 적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중략) 실제로 양군이 가장 관심을 쏟는 문제는 추위를 쫓는 것이었다.- P35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영국 병사들과 스페인 병사들이 늘 잘 지낸 것을 보면, 스페인 사람들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 누구나 영어 표현 두 가지씩은 알고 있었다. 하나는 “오케이, 베이비.”였고 또 하나는 바르셀로나의 창녀들이 영국인 선원들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말이었다. 아마 그 말을 이 글에 올린다 해도 식자공이 인쇄해 주지 않을 것이다.- P55

외국 자본은 스페인에 많은 투자를 했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 철도 회사에는 영국 자본 천만 파운드가 유입되었다. 그런데 카탈로니아에서는 노동조합이 모든 교통 수단을 접수했다. 혁명이 진행되면 영국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받아도 아주 조금밖에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만일 자본주의 공화국이 승리하면 외국의 투자 자본은 안전할 것이다. 따라서 혁명을 진압해야 했기 때문에, 상황을 무척 단순화하여 혁명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듯이 호도했다. (중략) 스페인 밖에서는 이곳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반면 스페인 내부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P72

철학적으로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는 양극단이다. 실제적으로, 즉 목표로 하는 사회의 형태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차이는 주로 강조점의 차이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절대 화해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무정부주의자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 P84

모든 전쟁이 똑같다. 병사들은 전투를 하고, 기자들은 소리를 지르고,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람은 잠깐의 선전 여행을 제외하면 전선 참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비행기가 전쟁의 조건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다음에 큰 전쟁이 터질 때는 사상 유래가 없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몸에 총알 구멍이 난 후방의 애국자의 모습말이다.- P90

영국에서는 파견대 병사들에게 계속 위문품을 보냈지만, 한번도 도착한 적이 없었다. 음식, 옷, 담배 등이 든 위문품은 우체국에서 배달을 거부하거나 프랑스에서 압수했다. 이상하게도 영국에서 차나 비스킷 – 딱 한 번 이런 기념할 만한 일이 있었다 –을 아내에게 보낼 수 있었던 곳은 영국 육해군의 구내 매점이었다. 가엾은 육해군! 그들은 고상하게 자신의 의무를 이행했지만, 그 물건들이 프랑코 측의 바리케이드로 건너갔으면 더 좋아했을 것이다.
- P104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러니까 나 자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선에서 보낸 처음 서너 달은 내가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무익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일종의 휴지 기간이었다. 이전에 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으며, 아마 앞으로 살게 될 어떤 삶과도 다를 것이다. 그 시기에 나는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P139

공산주의 매체의 보도들을 읽어가다 보면 그들이 사실에 무지한 대중을 의식적으로 겨냥하고 있으며, 편견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P215

총알이 목을 관통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처음 떠올린 생각은, 다분히 관습적이게도, 아내였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세상-생각해 보면 결국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세상이었다-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나는 그 감정을 매우 생생하게 느낄 만한 여유가 있었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불운에 격분했다.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냐! 전투도 아니고 이 염병할 참호 한 귀퉁이에서 순간의 부주의 때문에 죽게 되다니! 나는 또 나를 쏜 사람 생각도 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스페인 병사일까, 외국인 병사일까. 나를 맞히었다는 사실을 알까 등등. 그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낄 수 없었다. 그가 파시스트였다면 나도 그를 죽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일 그 순간에 그가 포로가 되어 내 앞에 끌려왔다면 잘 쏜 것을 축하해 주기만 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정말로 죽어가고 있었다면 완전히 다른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P240

스페인 사람들이 관대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그들은 20세기에 속하지 않는 고귀한 종족이다. 이 점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견딜 만한 형태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 현대 전체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지독스러운 효율성과 일관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P285

내가 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오도하지 않기 바란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완벽하게 진실하지도 않고 또 진실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하기 힘들며, 모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당파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된다. 혹시 앞에서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지금 말해 두겠다.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또한 스페인 전쟁의 이 시기를 다룬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조심하라.-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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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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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기숙학교에 다니며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예민한 소년이 1차 대전 후의 반항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회주의에 이끌리고, 20대에 식민지 경찰로 일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다 사회주의 활동가로 변신하는 과정이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30대의 오웰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사회주의는 빈곤이나 파시즘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웰의 결론과는 달리 모든 피착취인민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고, 사회주의가 상식적인 良識을 항상 잘 대변하지도 않았다. 
오웰이 사회주의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경험이 필요했고, 한때 부랑자 생활에 뛰어들기도 했을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고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이 정직한 젊은이는, 이 책을 쓴 후에 이번에는 공산게릴라로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는 극한 체험을 향한다. <동물 농장>과 <1984>로 끝나는 그의 지적 방랑의 다음 단계인 <카탈로니아 찬가>도 이제 읽기 시작했다. 아주 즐겁다.^^


탄광의 여건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젊을 때 땅 속에서 허리에 馬具같은 띠를 차고 두 다리를 사슬로 이은 채, 팔다리로 기고 광차를 끌며 일하던 할머니들이 아직도 더러 살아 있다. 글들은 임신한 상태로도 그런 일을 하곤 했다.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 없이 살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 P48

Lissagaray의 “코뮌의 역사”에는 파리 코뮌이 진압된 뒤 있었던 총살을 묘사하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진압군은 주모자들을 총살하고 있었는데, 누가 주모자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나은 계급 출신이 주모자일 것이라는 원칙에 따라 주모자를 색출하기 시작했다. 이때 한 장교가 줄지어 있는 포로들 앞을 지나가며 그럴듯해 보이는 유형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총살을 당한 사람 중에는 시계를 차고 있다는 이유로 불려나간 이도 있었고, “지적 얼굴의 소유자”여서 그런 경우도 있었다. 나는 지적인 얼굴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죽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어떤 혁명이건 지도자는 대개 유식한 말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게 사실이다.
- P68

20-30년 전 내 어린 시절을 사로잡으며 활보하던, 가슴은 불룩한 통 같고 콧수염은 독수리 날개 같던 거한들을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생각엔 플랑드르 진창에 다 묻혀버린 것 같다. (중략) 사실 요즈음 키 180센티미터가 넘는 영국 청년은 대개 뼈에 가죽만 있고 다른 건 별로 없다. 영국인의 체격이 저하됐다면, 그 이유는 부분적으론 분명 세계대전이 영구에서 가장 건장한 남성 100만 명을 골라다가 그들이 채 번식하기 한참 전에 몰살시켜버렸다는 데 있다.
- P132

노동 계급이 보기에 어른이 다 되도록 학교에 남아 있다는 것은 한심하고 사내답지 못한 일이다. 집에 매주 1파운드는 갖다줘야 할 열여덟 살 다 큰 사나이가 우스꽝스러운 제복을 입고 학교에 나갈뿐더러 숙제를 안 했다고 지팡이로 얻어맞기도 하다니! 열여덟 살 노동 계급 청년이 지팡이로 얻어맞는 걸 자신에게 허락한다는 상상을 해보라! 학교에 있는 또래는 아직 어린애지만 그는 어른이다.
- P156

이론상으로는 정장 있는 법과 정찬 주문하는 법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번듯한 양복점이나 번듯한 음식점에 갈 형편이 도무지 아니었다. 이론상으로는 사냥하고 승마하는 법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말도 없고 사냥할 땅 한 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아야 하급 상류 중산층이 인도에 매력을 느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군인이나 공직자로 그곳에 간 사람들은 돈벌이를 하러 간 게 아니었다. 돈은 군인이나 공직자가 버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거기까지 간 것은 예컨대 인도에 가면 말도 싸고 사냥도 공짜로 하고 얼굴 까만 하인들도 얼마든지 둘 수 있어 특권층 노릇을 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이었다.
- P166

그렇다면 ‘하층민’은 정말 고약한 냄새가 날까? 물론 대체로 그들이 상류층보다 깨끗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들의 생활 여건으로 볼 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개명한 시절에도 영국 주택 절반 이상에 욕실이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유럽에서 매일같이 온몸을 씻는 풍습은 아주 최근에 생겨난 것이며, 노동 계급은 대체로 부르주아보다 보수적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눈에 띄게 점점 더 깨끗해지고 있으며, 앞으로 100년 뒷면 일본인만큼 깨끗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 P175

하지만 전쟁 당시와 그 직후 학교의 분위기는 참으로 묘했다. 영국은 그 이후나 그 전 한 세기 그 어느 때보다 혁명적인 분위기였던 것이다. (중략) 그것은 본질적으로 청년층의 노년층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전쟁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전쟁 당시 청년층은 희생을 했으나, 노년층은 지금 시점에 봐도 끔찍할 정도로 비겁했다. (중략) 하루는 영문학 교사가 상식 시험 문제 비슷한 것을 냈는데, 그중 하나는 “살아 잇는 위인 중에 가장 위대한 10인을 적으시오”였다. 우리 반에서는 열여섯 명 중에 (한 반은 보통 열일곱 명이었다.) 열다섯 명이 레닌을 그중 하나로 꼽았다. 이게 러시아 혁명의 공포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던 1920년에, 속물적이고 비싼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 P186

밖에서 보면 영국의 인도 지배는 호의적이며 필요하기까지 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도 그런 부분이 있다. 그것은 프랑스의 모로코 지배와 독일의 보르네오 지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타국민을 통치할 때는 자국민을 통치할 때보다 관대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지배 체제의 일원이 되면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는 압제로 인식하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 누구보다 낯 두꺼운 인도 거주 영국인이라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길에서 ‘원주민’의 낯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극악무도한 침략자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 P195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 잘못된 이론일지 모르나 압제자가 되어본 사람으로 얻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 편에서 압제에 맞서고 싶어졌다. 모든 걸 혼자서만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압제에 대한 증오심을 유난히 길게 끌고 갈 수 있었다.
- P200

사회주의의 ‘근본’ 취지에 공감하는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은 어느 심각한 사회주의 정당에도 자기 같은 부류를 위한 자리는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더 나쁜 것은 그가 사회주의란 실현될지도 모르지만 가능한 한 저지해야 하는 운명 같은 것이라는 냉소적인 결론을 내리도록 내몰린다는 점이다. (중략) 보통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독재에는 움찔하지 않을지 몰라도, 잘난 체하는 인간들의 독재에는 기꺼이 맞서 싸울 것이다.
- P245

이 세상을 기계화할 수 있는 한껏 기계화해보라. 그러면 사방 어디에도 당신이 일할 기회, 곧 살 기회를 박탈할 모종의 기계가 있을 것이다.
- P267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효과적인 사회주의 정당을 출범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이 책의 1부에서 기술한 여건(인용자주-탄광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과 비참한 생활 수준)을 바로잡거나 영국을 파시즘에서 구할 가망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중략) 그런 정당은 우리가 일반인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일 만한 목표를 제시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다른 무엇보다 지능적인 선전이 필요하다. (중략) 정의와 자유, 그리고 실업자들의 곤경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 게 좋다. (중략)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사실을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하는 것뿐이다. 하나는 모든 피착취 인민의 이해 관계는 같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사회주의는 상식적인 良識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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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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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민한 사람이 오랜 세월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죽을 고생을 해 가면서 한 발 한 발 내딛었던 사고의 궤적을 책 한 권 읽는 것으로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다니 횡재했다는 기분이 든다. 민족주의 비판이 역시 제일 인상적이었고, 좌파 이데올로기의 허위를 폭로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정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증오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사랑에 절실하게 공감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 안의 好惡를 공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배웠다. .

England, Your England (1940)
기독교와 국제 사회주의는 애국주의에 비하면 지푸라기처럼 연약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들의 나라에서 권좌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그들은 이 사실을 파악했고 그들의 적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데 있다.
- P88

England, Your England (1940)
워털루 전투가 이튼 학교의 운동장에서 이긴 싸움이라면, 그 뒤에 있었던 모든 전쟁의 開戰 전투들은 이튼의 운동장에서 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70여 년 동안 영국인의 삶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하나는 지배 계급의 능력이 크게 쇠퇴했다는 점이다.
- P107

England, Your England (1940)
이제는 지식인이면서 어떤 의미에서든 ‘좌파’가 아닌 경우는 없다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마지막 우파 지식인은 T.E.로렌스였을 것이다. 1930년경부터 ‘지식인’이라 칭할 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기존 질서에 대한 만성적인 불만 속에 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사회가 그들을 미처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이상의 발전도 없고, 그렇다고 해체되지도 않는 정체된 제국에서, 그리고 우매함이라는 자산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이 지배하는 영구에서, ‘똑똑한’ 사람은 수상쩍은 사람이었다. T.S.엘리엇의 시나 칼 마르크스의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진 사람에게, 윗사람들은 절대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았다. 그러니 지식인들은 문예비평과 좌파 정당에서만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 P116

Wells, Hitler and the World State (1941)
‘레프트 북클럽Left Book Club’은 본질적으로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의 산물이었으며, 그건 ‘평화서약연합Peace Pledge Union’이 해군의 산물인 것과 매한가지이다.
- P126

Looking Back on the Spanish War (1942)
그런데 당시에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줄곧 인상적이었던 것은, 잔학행위를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이 순전히 정치적인 편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증거 조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적의 잔학행위는 믿으면서 자기편의 것은 믿지 않는 것이다.
- P138

Notes on Nationalism (1945)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 모든 민족주의자들은 비슷한 유형의 사실들이 가진 유사점을 무시하는 능력이 있다. (중략) 민족주의자는 자기편이 저지른 잔학행위를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에 아예 귀를 닫아버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략) 모든 민족주의자는 과거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자기 시간의 일부를 역사적 사건이 자기가 바라는 대로 일어나는 공상의 세계에서 보내며 이 세계의 단편들을 가능한 한 역사책에다 옮겨놓으려고 한다. (중략) 그들은 아마 자신들의 본 것이 하느님이 보신 ‘그대로’이니 그에 맞게 기록을 재편해도 좋다고 느끼는 것일 터이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무관심은 세상의 일부가 다른 일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는 바람에 더욱 부추겨지며, 그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 P190

Notes on Nationalism (1945)
요는 두려움, 증오, 질투, 그리고 세력에 대한 숭배가 개입되자마자, 현실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감각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우리’ 편이 저지른 것이면 어떤 범죄도 용서받지 못할 게 없다.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부당하다는 걸 지적인 차원에선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됐다고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충성이 개입되면 연민이 기능을 멈춰버리는 것이다.
- P206

Notes on Nationalism (1945)
민족주의적 애증은 우리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우리들 대부분이 가진 기질의 일부이다. 그런 기질을 없앤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은 가능하며, 그런 투쟁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노력이라고 확신한다.
- P207

The Prevention of Literature (1946)
‘개인주의‘와 ’상아탑‘을 비난하는 어떤 장광설도, ’참된 개성은 공동체와의 합일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식의 경건하고 상투적인 어떤 주장도,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이라는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 P240

Pleasure Spots (1946)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의 수많은 발명품들(특히 영화, 라디오, 비행기)은 인간의 의식을 약화시키고, 호기심을 무디게 하며, 대체로 인간을 가축에 더 가까운 쪽으로 몰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P248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
우리 시대에 정치적인 말과 글들은 주로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쓰인다. 계속되는 영국의 인도 지배, 러시아의 숙청과 추방, 일본에 대한 원자탄 투하 같은 일들은 변호할 수 있긴 하다. 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잔혹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당이 표방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을 해야만 변호가 가능하다. 때문에 정치적인 언어는 주로 완곡어법과 논점 회피, 그리고 순전히 아리송한 표현법으로 이루어진다. (중략) 가령 러시아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마음 편한 영국의 교수를 생각해보자. 그는 대놓고 ‘나는 좋은 결과를 낼 수만 있다면 반대자들을 죽여도 좋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아마도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 P270

(위에서 계속)
‘소비에트 체제가 인도주의자들은 개탄할지 모를 어떤 특징을 표출한다는 점을 터놓고 인정하는 한편, 나는 정적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권리 박탈은 전환기의 불가피한 부수 현상이라는 점을, 아울러 러시아 인민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초가 실질적인 공로의 영역에서는 십분 정당화된다는 점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70

Some Thoughts on the Common Toad (1946)
중요한 건 봄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나 접할 수 있으며 공짜라는 점이다. (중략) 런던 한복판에서 반경 4마일 이내에 새가 수백만은 아니어도 수십만 마리는 있을 텐데, 그들 중 누구도 집세로 반 페니도 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제법 흐뭇해진다.
- P279

Why I Write (1946)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산문을 쓰는 데 있어서는 말이다.). 이 동기들은 작가들마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가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순전한 이기심 (2)미학적 열정 (3)역사적 충동 (4)정치적 목적
- P292

Why I Write (1946)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그런가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 P293

내가 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好惡와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 P299

Lear, Tolstoy and the Fool (1947)
비극적 상황은 정확히 선이 승리하지 ‘못하지만’ 인간이 자신을 파괴하는 힘보다 고귀하다고 여전히 느껴질 때 성립되는 것이다.
- P357

Such, Such Were the Joys (1947)
세인트 시프리언스의 경우에는 솔직히 모든 게 일종의 신용 사기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인상을 심사위원에게 심어줄 것들만 배우고, 뇌에 부담이 되는 것들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었다.
- P384

Writers and Leviathan (1948)
모든 좌파 이데올로기는 당장 권력을 잡는다는 기대를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발전시킨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였다.
- P440

Writers and Leviathan (1948)
다른 어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찬바람 새는 회관에서 연설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글을 쓰고, 투표를 호소하고, 전단을 나눠주고, 심지어 필요하다 싶으면 내전에 참가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단, 자기 당에 대한 봉사로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당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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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Kwon Sun-chan and Nice People K-픽션 12
이기호 지음, 스텔라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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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술을 마신 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파트 단지 정문을 막 들어서려던 나를 그가 불러 세웠다.
저기... 교수님이시죠?
그는 맨발에 운동화를 신은 채 도로를 뛰어 건너왔다. 평상시 앉아 있는 것만 봐서 잘 몰랐는데, 그는 오른쪽을 다리를 조금 절었다. 손에는 A4용지 두 장이 들려 있었다.
죄송한데... 이것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는 내게 종이를 내밀면서 말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얇은 철삿줄이 울리는 것처럼 여렸고, 몸에선 쉰내가 났다. 종이엔 남자가 대자보에 옮겨 쓸 내용이 적혀 있었다. 2014년 6월 3일 하나은행 권순찬의 모친 김복순의 농협 계죄로부터 일금 칠백만 원이 국민은행 김석만 계좌로 또 한번 입금....
나는 종이에 적힌 문장들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읽어나가다가 말고 남자에게 물었다.
한데, 이걸 왜 저에게....?
저기.... 맞춤법 좀 봐주셨으면 해서요.... 이게 틀린 게 없이 정확해야 하거든요.....
- P50

더운 국을 먹을 때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때,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저절로 남자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키우던 고양이가 가출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고, 군 시절 혹한기 훈련을 하면서 보았던 은하수와 언 강물 같은 것들이 뒤죽박죽 계통 없이 떠오르기도 했다. 늑골에 자잘한 돌무더기가 우르르 굴러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10월 첫째 주엔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 특별 모금을 한다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딱한 사정에 처한 502호 할머니와 단지 정문 건너편 남자를 위해 작은 정성을 모으자는 취지의 안내문이었다.
- P56

김석만의 등장으로 ‘우리가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분명하게 밝혀진다. 우리는 이 사회에 고통을 만들어 내는 진정한 악인(강자)은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야에는 고작 자신들처럼 약하고 선한 사람들만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약하고 착한 사람들은 서로에게만 화를 냈던 것이며, 당연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그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략)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악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서부터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 겪는 무력증과 성냄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경재)-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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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9-05-0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소통(또는 글쓰기)에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짧은 이야기. 이기호의 소설을 좀더 읽고 싶어졌다.
 
사이토 다카시의 2000자를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루비박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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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것은 스포츠다.
- P12

문장의 질은 개개인의 독서 체험이나 인생 경험, 그리고 재능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향상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문장의 질을 향상시키고 나서 양을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양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면 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을 전환하자.
- P14

글을 쓰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구상한 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 P30

자기 주장이 있는 글이란 그 속에 내재된 의미를 타인이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글은 외국어로 번역하기도 쉽다. (중략) 문장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말은 외국어로 번역할 수 없다.
- P51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하나의 키워드로 머릿속에 잘 인식해 둔다. 그런 다음 그 키워드를 그물망처럼 펼치면서 책을 읽어 나간다. 그 그물망에 빠져 나가지 않고 걸려드는 것이 내가 글을 쓸 때 필요한 재료가 되는 것이다.
- P65

내용이 서로 다른 세 가지 인용문을 고르는데, 읽는 사람이 그 인용 부분만 읽어도 만족할 만큼 흥미로운 것을 고르는 것이 비결이다. 그리고 각각의 인용구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한 주된 개념을 이끌어낸다. 즉 인용문을 핵심으로 세 개의 주요 컨셉을 완성한다. 그런 다음 그 세 가지를 연결하는 문장을 간단히 메모한다. 이것이 나중에 생각을 정리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이렇게 세 개의 인용구를 연결하면 글이 술술 잘 풀릴 것이다.
- P72

하고 싶은 말을 적절히 표현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 줄의 키 프레이즈를 서두에 제시하자. 그것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한 문장으로 된 키 프레이즈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사고의 해동 작업’에 비유할 수 있다. 키 프레이즈를 한 문장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사고를 결빙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키 프레이즈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듯이 써나가는 작업은 결빙된 사고를 다시 해동하고 사고의 과정을 파헤쳐나가는 작업이다.
- P89

문체는 개성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연습만으로는 익힐 수 없다. 하지만 구성은 훈련만으로 누구든지 익힐 수 있다. 그러므로 문장을 향상시키려면 우선 구성력을 익히는 것이 지름길이다.
- P112

원래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일은 매우 힘겨운 작업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 내용을 남 앞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이디어를 도난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말하는 것으로 만족해버리면 자기 안에 글을 쓰려는 욕망, 즉 내압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자기 안에 에너지를 자꾸자꾸 축적해서 내압을 높이고 한발 한발 힘든 산행을 계속하듯이 글을 쓰자.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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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9-05-0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될 듯한 부분들을 발췌해 뒀는데,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글을 써봐야 알 듯. 어쨌든 용기를 주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