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
앤드류 포터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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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 중 제일 재미있었다.

생각할 거리가 한가득, 더 읽고 싶은 책도 잔뜩.

내용이 풍부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면서도, 설명이 친절하고 유머러스하다. 

우리는 진정한 나, 진정한 삶, 진정한 경험의 의미와 관련해 일종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 핵심에는 자기 실현과 자기 발견을 소중하게 여기는 개인주의가 자리한다. 물론 가치 있는 생각이다. 문제는 거기에 반사회적, 비순응적, 경쟁적 속성이 내재한다는 점이다. ‘너만의 어떤 것을 하라’고 권하는 히피 버전의 진정성 추구는 남들은 하지 않는 행동, 튀는 행동을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순응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대중의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경쟁을 유발한다. 잘 살펴보면, 로프트에서 살기, 생태관광, 슬로푸드 운동 같은 소위 ‘진정성 잇는’ 생활양식들에서도 위장된 형태의 지위 획득 행위가 발견된다. 그리고 이는 타자에게 분개의 감정을 일으킨다. - P22

가톨릭교는 세계(하느님이 7일 만에 창조함)와 지구생명체(하느님이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듦)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강력한 포괄적 교리를 갖췄다. 게다가 도덕률(십계명)과 그에 대한 정당성(신의 명령), 그리고 위반할 경우의 벌칙(불지옥에 떨어짐)까지 제공한다. 무엇보다 성서는 신부가 매개하는 성찬예식을 통한 영혼의 구원과 삶의 의미를 설명한다. 과학, 정치, 도덕, 영적 구원. 가톨릭교회는 존재론적, 정치적, 사회적, 과학적 욕구를 종합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원스톱 쇼핑몰이다. - P33

포괄적 종교의 임무는 지구상과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모든 현상에는 결국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는 신의 의지 혹은 신의 명령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된다. 이것은 철학자들이 ‘목적론적 설명’ -궁극의 목적이나 목표를 염두에 둔 설명- 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버전이다. 우주 속에 구조적으로 탑재된 궁극의 목적, 목표, 역할에 기대는 일이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날 때 세상에 대한 환멸이 찾아온다. - P34

과학적 사고방식의 핵심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일반법칙과 일반원리 추구에 매진하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의 진보란 개방적이며 궁극적으로 비결정적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 P36

어떤 종류의 소외든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소외감을 느꼈다고 해서 반드시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문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심리적, 사회적 소외는 둘 다 일정 상황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전자는 개인의 상황을 묘사하고, 후자는 개인, 집단, 제도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 P58

루소는 어떤 오지나 먼 과거에서 근대성이 제거된 안식처를 찾는 대신,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가장 기본적이고 즉흥적이고 강렬한 느낌과 감정을 돌봄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찾으라고 제안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진정성 있는 인간은 자기 내면의 깊은 감정과 접촉하는 사람, 감정적 삶을 터놓고 드러내는 사람이다. - P87

루소야말로 몇백 년에 걸친 열정 대 이성, 예술 대 상업, 개인 대 사회, 보헤미안 대 부르주아의 문화전쟁에서 중요한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르주아가 된다는 것은 진정한 자아로부터 스스로를 소외하는 일이며, 다시 말하면 안락과 안전을 앞세워 창의력을 위축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사익을 위해 신념을 버린 것이다. 순응하지 않는 보헤미안, 주류와 투쟁하는 외로운 반항아가 되는 것만이 다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진정성 있는 사람은 그 정의상 당연히 대중의 취향, 생각, 의견, 스타일, 도덕관념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 P89

그러나 철학, 문학, 문화이론 전공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그(인용자주- 발터 벤야민)의 논문이 한 편 있다. 바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이다. 1936년에 출간된 이 논문은 예술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설명하는 최고의 문헌으로, 초기에는 사진과 영화가, 그리고 요즘은 자유자재로 자르고 섞고 굽는 디지털 콜라주 문화가 야기하는 진품성에 대한 불안감을 폭로한다. - P114

진품성을 인정받으려면 일정한 공동체와 그들의 의례와 연결되는 것이 핵심이며, 의례로부터 멀어질수록 작품의 아우라는 약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벤야민은, 20세기 초 사진과 영화가 정당한 예술 형식인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핵심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았다. 진짜 이슈는 사진과 영화가 기존에 진품 관념이 이해되던 관계를 해체해버림으로써 예술의 본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기술복제시대에 그런 해체를 일으킨 두 주역은 ‘대량화’와 ‘상품화’다. - P115

동일한 복제를 무제한 만들 수 잇는 새로운 종류의 예술품이 등장하면서 무엇이 원본인지는 더 이상 문제 되지 않는다. 작품이 일단 공동체 의례에서 했던 역할을 벗어나는 순간, 즉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놓여야 할 필요성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동시적, 집합적 경험이라는 현상의 등장을 목격한다. - P115

대중상품으로서의 예술의 가능성을 열어젖힘으로써 기술복제시대는 진품성의 위기를 초래했다. 오락이 세속화, 상업화, 대량생산화되는 시대에는 작가의 삶이 작품의 아우라를 보존하는 예식의 역할을 떠맡는다. 작가들의 과거, 이력,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는 그들의 작품을 거품 낀 천박성과 상업성에서 구해내 창조적 전통이나 서사에 고정시킬 안전장치다. - P115

요즘 현대미술 작품들은 개념도 황당하고 솜씨도 미숙해서 ‘우리 애도 저 정도는 그리겠네’라는 문외한들의 전형적인 불평은 오히려 애들한테 모욕일 지경이다. 그러나 그런 불평은 초점을 벗어난다. 작품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팔리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페르소나 또는 ‘브랜드’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미술가 중에 데미언 허스트만 한 브랜드는 찾아보기 어렵다. - P117

경영학 교수 돈 톰슨은 저서 ‘1200만 달러짜리 박제상어’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100만 파운드로 살 수 있는 것 중에 유명 상표 현대미술품처럼 사회적 지위와 인정을 가져다주는 물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람보르기니를 사는 건 천박한 취향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테고, 돈 있으면 요트를 살 사람도 많겠지만, 허스트의 땡땡이 그림을 사서 벽에 걸면 사람들이 "와우, 이거 허스트잖아요?"라고 반응한다는 얘기다. - P118

현대미술의 공허함은 예술 작품의 대량생산으로 말미암은 진품성 위기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렇다고 이게 과연 발터 벤야민을 근심시켰을 만한 종류의 결과인지도 분명치 않다. 예술 작품의 기술복제로 인해 예술이 대중의 오락거리나 심지어 전체주의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현상을 그가 경계한 것은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대중이 예술에 접근하기 쉬워지면서 실력자나 엘리트의 전유물이던 예술의 소비와 비평이 민주화되는 효과를 목격했다. - P118

중심부에서 제작되는 예술을 대중이 소비하던 발터 벤야민의 시대와는 달리 디지털문화 시대의 예술은 소비뿐 아니라 생산도 민주화되고 있다. 수백만의 아마추어가 직접 제작한 음악, 동영상, 사진, 소설이 인터넷에 넘친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현상은 모든 개인은 창조적 영혼을 지닌다는 루소적 이상의 성취다. 하지만 그렇데 다들 창작에 여념이 없다면 대체 누가 그걸 소비할 시간이 있겠는가? 관심이 희소한 경제에서는 좀 거창하고 작위적인 이벤트를 동원해서라도 관심을 가장 잘 이끌어내는 아티스트가 대박을 낸다. - P120

예술 작품의 진정성은 상품화 현상에 의해 위협받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알고 보면 진정성이란 큰돈을 쓸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나 획득할 수 있다. 원래 성스러운 제례나 고대의 공동체 전통에서 기원했던 아우라는 이제 모든 마케터와 브랜드 매니저가 주시하는 훌륭한 판매 전략으로 탈바꿈했다. - P121

진정성 추구는 광고업계의 입장에서 볼 때 현대판 성배 찾기와 같아서, 브랜드 상품을 "왜곡된 메시지와 날조된 경험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가공의 세상"을 넘어서는 고매한 차원으로 승격시킬 수 잇는 궁극의 마케팅 전략이다. 진정성 게임에 참여하는 것은 이제 마케팅에서 기본이고 필수이며, 모든 브랜드 전략의 판단 기준이다. 소비자는 더 똑똑해지고 세련됐다. 이들은 끊임없는 광고의 홍수를 경계하는 한편 독창성, 진실성, 가치를 약속하(고 안겨주)는 브랜드 상품을 기꺼이 구매할 의사를 보인다. - P125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자기를 ‘진정성을 옹호하는 반영웅’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권위를 인정하고 지위 추구를 즐거워하고, 일을 너무 사랑하고, 사회에 순응하지 못해 안달인 사람이 있는가?물론 소수 존재한다. 그들을 일컫는 용어도 있다. 좀비사원, 샌님, 꼰대, 부화뇌동자, 여피족, 파시스트. 그러나 아무도 자신이 부화뇌동자나 여피라고 시인하지 않는다. 진정성 없는 삶을 사는 건 항상 ‘남들’이나 하는 짓이다. - P133

헛소리(인용자주- hoax)는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가리는 게임에 아예참여하지 않는다. 헛소리가 가장 중요시하는 미덕은 정확성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헛소리 치는 사람들은, "세상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기가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주려고 애쓴다"고 프랭크퍼트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 대신 진심을 보여주는 데 가장 집중하는 두 분야, 즉 정계와 광고업계가 헛소리가 제일 심한 분야라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달리 말하면 정치와 광고는 진정성으로 겉치장하는 데 가장 신경 쓰는 두 분야라 할 수 있다. - P136

과시용 진정성은 유혹적이고 매력적이다. 과시가 유효하려면 최소한 외관상 유용하거나 사회적으로 유익한 모습을 띠어야 한다는 베블런의 통찰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하기 때문이다. 즉, 본의를 숨기고 마치 다른 목적을 지니는 듯한 외양을 연출한다. 여기서 본의란 지위 추구다. - P148

실생활에서 집단극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은 (적어도 민주주의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일 다양한 집단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극단적으로 쏠리는 경향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선스타인은 인터넷상에서의 집단극화를 특히 걱정한다. 블로고스피어는 일련의 반향실처럼 작동하고, 모든 관점이 반복 강조되면서 히스테리에 가까운 고성으로 증폭된다. 선스타인은 정치가 온라인으로 옮겨감에 따라 공론장은 편파와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 P183

사생활 보호의 종말은 곧 문화적 성숙성의 종말이 될 것이다. 감시는 범죄자에게나 필요하고, 쓸데없는 가십은 애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생활 보호를 "그만 포기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꿈을 포기하고 잊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 P194

TV토론에 참여해본 사람은 금방 깨닫는 사실이지만 TV란 뉘앙스, 깊이, 섬세한 구분을 싫어하는 지적으로 우악스러운 매체다. TV는 첨예한 대립을 좋아한다. 정치 프로그램이 시사토론에 진보와 보수인사를 초대할 때, 방송 PD들은 양편의 동의나 양보를 기대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갈등이야말로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이며, 논쟁에서 승리자는 있을지 몰라도 (고등학교 토론대회에서 점수를 따내는 식으로) 그 승리와 견해의 옳고 그름은 무관하다. - P201

TV토론의 영향력이 커지자 토론 참석자들은 점점 더 위험을 기피하게 됐다. 특히 대통령이나 총리직이 걸린 경우 토론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심각한 실수 없이 살아남는 것이다. (중략) 이러니 TV 시대의 정치란 준비된 원고, 천편일률적인 답변, 외워서 전달하는 요점으로 가득한, 대본대로 따라하는 이벤트가 될 수밖에 없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TV토론을 보고 있으려면 너무 멍청하고 답답해서 내 머리에 내 손으로 못이라도 박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P202

민주주의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낙태, 동성애자의 권리, 자유와 안보의 균형 등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서로 이견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가 단순히 자신이 반대하는 견해를 지지한다고 해서 세뇌당한 증거로 여기는 것은 민주주의를 믿지 않는다는 얘기다. - P216

하지만 투표율이 한 나라의 민주주의를 진단하는 그렇게 대단한 척도일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국민들이 정치에 ‘도에 지나치게’ 참여하던 사회라는 게 존재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체육관, 음악연주단, 야외활동 동아리 할 것 없이 시민사회의 거의 모든 조직이 정당 노선을 따라 조직됐다. 이 과열된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투표율은 사소한 선거에서조차 어김없이 80퍼센트 이상을 자랑했고, 독일인들은 공적 영역에서 취하는 모든 행동이 자신의 암묵적인 정치 성향을 반영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졌다. 독일사회가 이렇게 심하게 정치화되어 있었던 덕택에, 집권한 나치는 그런 조직들을 너무나 쉽게 재조직화할 수 있었다. 시민사회를 새삼 새로 정치화활 필요 없이, 이미 위태롭게 정치화된 조직을 ‘나치화’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 P230

정치에서 진정성의 씨를 말린 것은 스핀닥터들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성에 대한 우리의 욕구가 정치인들로 하여금 진정성을 꾸며내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유일한 대안은 뻣뻣하고 정직하고 너무나 따분한, 즉 함께 맥주 마시고 싶지 않은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다. - P232

건강한 문화는 건강한 사람과 같다. 끊임없이 변하고 자라고 진화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떤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중략) 한 문화를 한 사회의 면역체계와 유사한 것으로 상상해볼 수 있다. 외부의 이물질에 노출될수록 튼튼해진다는 얘기다. (중략) 특정 문화를 보호하고 보존할 때 원주민이 관광객 보라고 시전하는 ‘진정한 고유성’은 우리가 신경 쓸 대상이 못 된다.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더 적절한 대상은, 더 유연하고, 더 튼튼하고, 세상과 더 긴밀히 관계맺고 잇는 것, 다시 말해 우리가 ‘세계관’ 혹은 ‘에토스(ethos)’fk 부르는 것이다. - P239

‘에토스’는 스타벅스에서 파는 생수 상표이기 이전에, 한 사회의 도덕, 정치, 종교, 예술, 과학적 기풍을 가리키는 유용한 그리스 용어다. 하나의 사회가 세계 또는 외부인과 어떤 조건으로 관계 맺을지를 규정하는 그 사회의 관습과 전제, 의식과 상징, 규칙과 위계질서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에토스다. 우리는 문화 정체성을 논할 때 보통 이 에토스를 짚고 넘어간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고유한 관점, 혹은 간단히 표현해 ‘세계관’이다. 이 정체성 또는 세계관은 사회의 예술적 창조와 과학 혁신을 촉진하며, 에토스에 충분한 자신감이 담겨 있으면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20세기 중반의 미국처럼) 놀라운 성취를 거둘 수 있다. - P239

공동체 특수주의는 자유주의의 집착적 자기애를 넘어 더 위대한 어떤 것에 대한 사랑으로 인도하는 소중한 가치로 흔히 전제된다. 가족, 친지, 그 외 역사, 종교, 가치관을 공유하는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우리는 ‘자기’의 단기적 장기적 욕구에서 벗어나 타자의 욕구에 더 민감해진다. 공동체주의자는 자유주의에 대해 "세상 모든 것이 다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개인의 욕구를 초월하는 것, 우리의 충성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P246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는 허무주의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비난은 익숙하지만 잘못된 비난이다. 고전적인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세계시민주의가 이기주의와 자기도취를 허락해서 매력을 느낀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유주의자들은 세계시민주의가 새로운 가치, 새로운 삶의 양식에 눈뜨게 하고, 관용과 상호존중의 미덕을 장려하는 방식을 보며 좋아했다. - P246

이 논쟁에서 한 가지 난점은 세계시민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가 여러 면에서 서로 동문서답을 한다는 점이다. 세계시민주의자는 특정한 자유주의 원칙의 중요성을 논하고, 공동체주의자는 자유주의자가 가치관에 일으키는 효과를 두려워한다. - P247

사회 통합과 인종 다양성의 관계를 집중 연구한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은 다양성을 사회 안정의 원천으로 본 볼테르의 믿음과 대조되는 연구 결과를 선보인다. 퍼트남에 따르면, 이민자가 늘고 다양성이 증가하면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고 거북이처럼 행동"하며, 타자에 대한 개방성이 감소하고 상호 불신이 증가해 공동체의 결속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간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양성이 큰 공동체는 균질하고 결속력이 강한 하부 소그룹으로 분열될 뿐 아니라 공동체 전반으로 불신이 확산된다고 퍼트남은 말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기와 다르게 생긴 사람뿐 아니라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마저 불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 P248

다양성 증가가 단기적으로 공동체를 약화시킨다면, 더 광범위하고 포용성 있는 시민 정체성을 구축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퍼트남의 주장이었다. 그가 지적한 대로 미국은 20세기 전반에 아일랜드, 이탈리아, 폴란드, 독일, 유대인 이민자 수백만 명을 미국 사회에 동화시킨 역사가 있다. 이를 다시 이루지 못할 이유는 없다. - P249

만약 어떤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구성원을 무지하고 가난하고 고립되게 만들고 선거권도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런 공동체는 우리가 존중하거나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 히말라야 기슭에서 농민들이 뼈 빠지게 벼농사를 하는 농경시대 불교 왕국 부탄의 매력적인 모습이나, 1946년 모습 그대로 정지한 아바나를 보는 일이 강단좌파나 진정성 추종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부탄이나 쿠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진정성이라는 허사으이 희생자다. 그리고 자기들 문화를 반근대의 상징 삼아 박물관에 들여놓으려는 자들에게 붙잡힌 인질이다. - P268

논의에서 간과된 것은 세계시민주의 덕택에 얻게 된 것들, 즉 정치적 자유권, 부의 증가, 지성과 창조성 발휘의 기회 증가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시민주의는 물질적 향상뿐 아니라 도덕적 진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세계시민주의의 핵심 도덕은 포괄적 관용에 기초한 보편주의다. (중략) 만약 세계시민주의가 결국에 가서 특정인이 원하는 종류의 ‘진정한 문화’ 관념과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땐 콰메 앤터니 애피아 교수의 말이 맞다. 안됐지만 ‘진정한 문화’가 양보해야 한다. - P268

공산주의 관광산업이 이렇게 성황중이라는 것은, 나치즘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공산주의가 사람들에게 가볍게 여겨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저널리스트 앤 애플바움은 저서 ‘굴락(Gulag)’ 서문에서, "어떤 대량살상의 상징물은 우리에게 공포감을 주는 반면, 우리를 웃게 만드는 대량살상의 상징물도 있다"는 점이 희한하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이것은 오래된 문제다. 해설도 가지가지다. 어떤 사람은 공산주의가 기본적으로 포용과 평등의 이데올로기인 반면 나치즘은 배타적이고 증오에 찬 인종주의임을 지적한다. 나치즘은 강력한 유대인 로비 때문에 순전한 절대악의 상징이 됐지만, 소련 공산주의는 수많은 서구 뭉닝과 지식인들이 좌파여서 쉽게 용서받는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P285

팩스턴은 파시즘의 경우 다음 사항에 집착하여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정치운동이라고 결론 내린다.
-개인보다 집단과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경향
-순수와 결속에 대한 상실감
-이질적 문화의 영향에 따른 쇠락에의 두려움
-합리적 원칙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숭배하는 경향
-폭력과 죽음에 아름다움과 구원의 힘이 담겨 있다는 믿음 - P293

서구 합리주의에 대한 쿠틉의 거부는 오사마 빈 라덴의 마음속에서 미국을 향한 비대한 혐오감으로 둔갑했다. ‘미국’은 지하드 전사들에게 정치(개인주의, 민주주의, 세속주의), 비즈니스(세계화, 교역, 상업), 오락(소비주의, 술, 섹스)등 근대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상징물이었다. 라이트가 지적하듯, 알카에다의 최고 이론가 쿠틉은 20세기가 제공하는 거의 모든 것에 등을 돌림으로써 이슬람이 근대와 평화롭게 공존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원리주의자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오로지 한 곳, 바로 과거였다. - P295

알카에다(와 이슬람 원리주의)를 이처럼 미국 소비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진정성 운동으로 묘사하면 9.11 이후 지적 지형도 위에 형성된 괴이한 대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좌파가 이슬람 원리주의의 노골적인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반적 논제에 널리 동조하는 현상 말이다. 즉,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민간인 3000명이 살해된 일을 내놓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도 빈 라덴의 서구 문화 비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다. - P296

그것은 후쿠야마가 시인한 대로 역사의 종결이 낳은 컴컴한 수렁 같은 권태이며,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가치 있는 건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느끼는 깊은 공포다. 원리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밧줄에서 풀려난 자유로운 정신, 무제한적인 가능성의 바다에서 닻을 내릴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순수하게 자유로운 지성에 대한 공포다. - P305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누구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무엇이 의미 있는가’ ‘무엇이 성스러운가’를 자문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질문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변주에 해당한다. 다른 종교나 이념과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이에 대해 미리 준비된 답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근대는 그런 기존의 해답을 전부 쓸어버리고 신성함이라는 관념을 약화시켰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위의 질문에 ‘그런 건 없다’ 아니면 –그보다 조금 나은- ‘당신한테 달렸다’라고 답한다. 이게 심히 공포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를 부정하고 과거에 대한 향수와 폭력에 호소하는 행태는 규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진정성 추구라는 우리의 대안 역시 혼란만 야기하고 성공할 수 없는 허구일 뿐임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 P305

인정욕구가 보편적으로 충족되면 인정의 가치가 사소해진다는 니체의 단순하지만 날카로운 통찰이 힌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누구나 인정받는다는 건 아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정이란 본질적으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하는 구별(distinction)의 한 형태로, 거기에는 권력관계와 우열 판단이 내포된다. 이때 인정이라는 용어에 진정성을 겹쳐놓으면, ‘모든 것이 진정하다면 아무것도 진정하지 않은’ 것이 된다. 진정성이란 ‘무엇과 대조해서 진정한 거냐?’라는 질문에 답함으로써 비로소 힘을 얻는 대조의 용어이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성은 누구나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가치 있는 지위재화다. - P311

진정성 허구를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근대와 화해하고 지난 250년이 비극적 실수가 아니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중략) 근대와의 화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긍정적으로 포용하는 일을 수반한다. 그것은 그 두 가지가 단순한 필요악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가치 구조와 도덕 기반을 갖춘 정치 경제의 조직체계로서 이전 체계보다 일정한 장점을 지님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시장에 등을 돌리는 일은 옳지 않다. 또한 분노와 억압으로 고통받던 수많은 이들의 숨통을 터준 권리와 자유를 해치는 사회질서를 완벽한 것으로 이상화하며 갈망해서도 안 된다.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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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이다.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따져가며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잘 이해 못 하고 '대충 이런 얘기인가 보다......'하고 후루룩 넘어가게 되는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다.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웃음이 터지는 부분,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비록 그들이 나를 존재케 하였지만, 나의 부모님께.
그리고 그들 각자의 존재가 비록 자신에게는 해가 되지만,
나머지 우리들에게는 큰 이득이 되는, 나의 형제들에게. - P7

우리는 각자 존재하게 됨으로써 해를 입었다. 그 해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삶의 질조차도 매우 나쁘기 –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정도보다 훨씬 나쁘기 – 때문이다. 비록 우리의 존재를 막는 것은 명백히 이미 늦어 버렸지만, 미래의 가능한 사람들의 존재를 막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창조하는 것은 그래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러한 주장들을 찬성하여 논하겠다. 그리고 왜 그러한 주장들에 대한 통상의 반응 – 분개는 아닐지라도 쉽사리 믿지 않는 반응 – 이 결함이 있는 것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 P9

나는 이 책을, 그것이 존재하게 될 사람들의 수에 (많은) 차이를 가져올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서 쓴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받아들여지건 아니건 간에 말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쓴 것이다. - P10

특정한 사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라는 인식을, 존재하게 되는 것이 항상 심각한 해악이라는 인식과 결합하면, 존재하게 된 것은 진짜 운이 나쁜 일이라는 결론이 산출된다. 해를 입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쁘다. 그렇게 해를 입을 가능성이 아주 희박할 때 그 해를 입는다는 것은 더욱 나쁜 일이다. - P26

친출생 편향은 많은 방식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결혼해서건 아니면 그냥 동거해서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보며, 불임이 아니라면 아이를 낳지 않는 건 퇴행적이거나(backward) 아니면 이기적이라고 본다. ‘퇴행적이라고’ 보는 것은 개체발생론적 패러다임이나 개인의 발달 패러다임을 활용한다. 즉 아이들은 아이들을 낳지 못하지만 어른들은 낳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번식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어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적절한 패러다임인지는 절대 명백하지 않다. 첫째로, 언제 아이를 갖지 않아야 할지를 알고 이 앎에 따라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은 성숙의 징표이지 미성숙의 징표가 아니다. 아이들을 기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아이를 갖는 지나치게 많은 수의 (청소년기) 아이들이 있다.
(아래에 계속) - P28

(위에서 계속)
둘째 역시 첫째 논점과 관련되어 있다. 계통발생적인(phylogenetic) 관점에서 출산하려는 충동은 극도로 원시적이다. 만일 ‘퇴행적인’이 ‘원시적인’으로 이해된다면, 출산하는 것이 퇴행적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동기를 가지고서 출산하지 않는 것은 진화적으로 더 최근 일이고 더 진보된 일이다. - P28

존재하게 되는 해악을 가하는 것을 피하고자 출산을 삼가는 곳에서는 그들의 동기는 이타적인 것이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더구나 아이를 갖고자 하는 이가 이타적인 동기라고 여기는 어떠한 것도, 이득을 보는 이로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철저하게 오도된 것이고, 이득을 보는 이가 다른 사람이거나 국가라면 부적합한 것이다. - P29

아이를 가짐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인질을 잡음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가치를 높이는 일이 불공정하며 그런 행위에 보상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의 삶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러한 결과를 방지하는 비용이 아이를 갖지 않은 사람들의 어깨에 지워져야만 하는가?
- P32

많은 이들은 삶을 즐기기 때문에 존재하게 되어서 행복해한다. 그러나 (중략) 어떤 이가 자신의 삶을 즐긴다는 사실은 그 사람의 존재를 비존재보다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존재하게 되지 않았더라면 그 삶을 사는 기쁨을 아쉬워할 사람이 없을 것이고 그리하여 그 기쁨의 부재는 나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삶을 즐기지 않을 경우에 존재하게 된 것을 후회(regret)하는 것은 이치에 닿는다. 이 경우 존재하게 되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 사람이 사는 삶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좋다.
- P94

아주 운 좋은 삶(charmed life)은 너무나 드물어서 그런 삶이 하나 있을 때마다 비참한 삶은 수백만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그 불운한 이들 가운데 끼게 되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의 아이가 소위 운좋은 극소수에 속하히라는 것은 모른다. 존재하게 된 사람 누구에게도 커다란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가당 특권적인 사람 누구에게도 커다란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특권적인 사람들조차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겪고, 강간당하고 폭행당하거나 잔인하게 살해당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 P138

법적 권리(a legal right)의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성(distinctive features)은 그릇된 일이 될 수도 있거나 여겨지기도 하는 일을 할 자유를 허용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적 권리는 모든 이들이 훌륭하고 현명하다고 여기는 표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일부 사람들은 사악하고 멍청하다고 여기는 표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P152

사람들의 삶이 지속할 가치가 없지 않은 한, 그들의 삶을 갑자기 중단시키는 것은 그들의 삶을 더 못하게 만든다. 존재하게 된 것의 다른 모든 해악에다가 때 이른 죽음이라는 해악을 또 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멸종은 이런 방식으로 발생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추가적인 사람들을 창조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미래의 사람들의 삶이 갑자기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 삶이 갑자기 중단될 어떠한 사람들도 아예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니 말이다. - P271

인류가 끝이 나게 될 때가 언제이건 마지막 사람들은 심각한 비용을 치를 것이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인구가 감소하고 사회 기반 시설이 붕괴되어 고통을 겪을 것이다. 모든 사정이 동일하다면, 이런 일이 더 나중에 벌어진다고 해서 아무것도 얻어지지 않는다. 동일한 괴로움이 발생한다. 그러나 만일 멸종이 더 일찍 일어난다면 치르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있다. 현재 세대와 마지막 세대 사이에 존재하게 되는 중간의 새 세대들이 치르는 비용 말이다. 더 이른 멸종을 찬성하는 논거는 따라서 강하다. - P272

도덕적 행위자와 합리적 숙고자를 담고 있는 세계가 뭐가 그렇게 특별한가? 인간이 그들과 같은 존재를 담고 있는 세계를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은 실제로 세계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보다는 자기 중요성에 관한 부적절한 그들의 감각에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중략) 만일 우리가 도덕적 행위자성, 합리성, 그리고 다양성과 같은 용인이 세계를 고양시킨다고 생각한다 해도 그것들의 가치가 인간 삶과 함께 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괴로움을 능가한다고 보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없다. - P274

어떤 견해의 반직관성은 그 자체로는 그 견해에 반대하는 결정적인 고려 사항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직관들은 흔히 심히 믿을 수 없는 것 –그저 편견의 산물- 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와 장소에서 심하게 반직관적으로 여겨지는 견해가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는 명백히 참으로 여겨진다. 노예제가 그르다는 견해 또는 ‘다른 인종간의 출산’에는 아무것도 그른 바가 없다는 견해는 한때 대단히 그럴 법하지 않고 반직관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견해는 지금은 적어도 세계의 많은 곳에서 자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 P280

그러므로 어떤 견해나 그 함의가 반직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는 심지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싫어하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논증을 검토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창조하는 것이 그르다는 견해를 거부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논증을 뜯어보지 않고서 그렇게 했다. 그들은 그냥 간단히 이 견해를 틀린 것으로 가정해 버렸다. - P280

그런 가정을 하면 안 되는 한 가지 이유는 그 결론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상당히 합당한 견해에서 도출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2장에서 설명했듯이 쾌락과 고통의 비대칭성은 새로운 사람들을 창조하는 일에 관한 중요한 몇 가지 도덕적 판단들에 대한 최선의 설명이다. 나의 모든 논증은 그 비대칭성을 드러내고 그것이 어떤 결론으로 이르는지를 보여준 것뿐이다. - P280

대단히 그럴 법한 전제에 기초한 강력한 논증이 있으며, 그 결론을 따르면 괴로움을 겪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박탈하지 않고서 괴로움을 감소시킬 수 있는데도, 그 결론이 단지 우리의 판단을 훼손하는 원시적인 심리적 특성 때문에 거부되는 때에는 그 결론의 반직관성은 그것에 반대하는 이유로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 P285

의문의 여지없이 일부 사람들은 이것으로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나의 논증이 터무니없다(그들의 생각)는 것을 공준으로 여기는 것이 그 이유라면, 내가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나의 결론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논증이 무엇이건간에 그들은 그것이 산출하는 결론에 의해 그 논증이 논박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논증의 결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결론의 부정(否定)이 독단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만을 입증할 뿐이다. 독단적인 사람을 납득시키기 위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285

존재하게 되는 것이 항상 해악이라는 견해에도 우리가 아이를 갖지 않아야 한다는 견해에도 그럴 법하지 않은 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이다. 인류의 큰 부분이 이 견해를 공유하게 될 가능성은 작다. 그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 가능성이 작아서 현재와 인류의 궁극적 종말 사이에 야기될 어마어마한 양의 괴로움 때문에. - P285

나의 견해에도 낙천적인 부분이 있다. 인류를 비롯한 유정적 삶은 결국 끝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종말을 나쁜 것으로 판단하는 이들에게는 종말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염세적이다. 이와 반대로 더 이상 사람들이 없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나의 평가와 더 이상 사람들이 없데 되는 때가 올 것이라는 나의 예측은 낙천적인 평가를 낳는다. 사태는 지금 나쁘지만 언제까지나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 P287

출산에 대한 자율적인 결정과는 달리 삶을 지속할지 죽을지에 관한 자율적인 결정은 문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 의해 내려진다. (내가 3장에서 논했듯이) 사람들의 삶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못하다는 것이 참이라면, 그들의 삶이 지속할 가치가 있는지에 관한 그들의 평가는 잘못되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범하도록 허용해야만 하는 잘못된 판단이다. 그 잘못된 판단의 결과는 그들이 오롯이 감수한다. 이는 자신의 후손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의 후손의 삶이 더 나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실수와는 다르다.
- P300

어떤 이의 삶은 나쁠 수 있지만, 그 삶을 끝내는 것이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야 한다. (중략) 상이한 사람들은 상이한 무게의 짐을 견뎌낼 수 있다. 그 사람에게 계속 살라고 가족들이 기대하는 것이 부당한 경우조차도 있을 수 있다. 다른 경우에는 그 사람의 삶은 나쁠 수 있지만 자살하여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의 삶을 이미 그러한 것보다 한층 더 못하게 만들 정도로 나쁘지는 않을 수 있다.
- P303

내가 도달한 결론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하게 염인적인(misanthropic)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나는 삶이 불쾌함과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아이를 갖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더 나중이 아니라 더 일찍 인류가 끝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논증했다. 그것은 염인주의(厭人主義)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논증의 압도적인 취지는 인간에게 적용된다면 염인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애적인(philanthropic) 것이다. (중략) 유정적 삶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그 삶을 갖게 되는 존재에게 해악이다. 나의 논증은 그 해악을 가하는 것이 그르다고 시사한다. 해악을 가하는 것에 반대하여 논증하는 일은 해악을 입는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배려하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 P306

(역자 후기)
이미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것만으로 친출생주의 근거가 확보된다고 믿는 사람든 인간을 한낱 수단으로 대우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베너타의 결론은 도덕적 결론이기 때문이다. 실천적 이유 중에서 도덕적 이유는 다른 모든 이유에 우선한다. 친구의 돈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이유와 돈이란 더 많이 가질수록 이득이 된다는 실천적 이유를 동일 평면에 놓고 무게를 가늠하는 사람은 이유를 잘못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존재케 하는 것이 그 누군가에게 도덕적 잘못이 된다면, 그 행위를 통해 이미 존재하는 사람이 통상적인 이득을 더 본다는 것은 결론에 영향을 미치는 근거로 제시될 수 없다. - P316

(역자 후기)
이 책은 단지 철학적 흥밋거리가 아니라 실천과 직결되는 함의를 갖는다. 우선 베너타의 논증은 무엇보다도 출산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숙고하는 개인에게 중요한 도전을 제기한다. 만일 베너타의 논증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잘못이라고 여기는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출산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이들뿐만 아니라, 이미 출산을 한 번 이상 했다 하더라도 추가로 출산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출산을 독려하거나 사회적으로 출산을 하지 않으면 불리하게 대우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것의 도덕적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사회가 취할 수 있는 정책에도 도전을 제기한다. - P317

(역자 후기)
이 책의 결론이 적어도 유력하다면 출산에 관련된 기본권이 단지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신체의 자유만이 아니게 된다. 양심의 자유 역시 관련된다. 도덕적으로 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판단을, 다른 사람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조종하여 각종 제재와 불이익을 부과하여 다른 판단으로 대체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침해라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 숙고조차 하지 않을 것이므로 겉보기에는 도전을 전혀 마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의 문제는 도덕을 무시한다고 해서 거기 없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이성적 숙고를 통해 결정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이 책의 논의는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정거장을 제공할 것이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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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너머 -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12가지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김한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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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분에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데올로기 비판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부분이 특히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반출생주의'에 대한 비판은 너무 억지스러웠다. "나는 새로운 생명을 낳지 않으려는 충동이 머지않아 지금 존재하는 생명들을 파괴하려는 충동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418쪽)"라니, 논리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요.;;;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일은 인간을 크게 바꿔 놓는데, 커다란 책임과 고통을 통해 인간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제대로된 판단력을 잃어버린 우스운 모습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는 것 같다.  어쨌든, 피터슨 덕분에 '반출생주의'에 흥미가 생겼으므로, 다음에는 데이비드 베너타의 책을 읽어야겠다! 


주변에서 우리가 통제하려는 것들이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을 자주 보는 것처럼, 우리의 이해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한 발은 지러 안에 놓고 다른 발로는 그 바깥쪽을 디뎌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 - P19

위계 구조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은 유용하다. 감사와 겸손의 싹을 틔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왜 ‘감사’인가? 전문 지식이 당신보다 탁월한 사람들이 있다. 당신이 현명하다면 그 사실에 기뻐해야 한다. 세상에는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채워야 하는 자리가 무수히 많다. 믿을 만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진정 감사해야 할 일이다. ‘겸손’은 또 무슨 말인가? 충분히 안다 생각하고 꽉 막힌 사람이 되기보다는 모른다 생각하고 가르침을 청하는 편이 낫다. 내가 아는 것들과 친해지기보다는 모르는 것들과 친해지는 게 백배 낫다. 아는 것은 유한하지만 모르는 것은 끝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 P43

권력에 굶주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이 따로 있다. 전제적이고 잔인하며 심지어 병적이기까지 한 그들은 쾌락적이고 이기적인 변덕을 즉시 채우기 위해, 질투의 대상을 파괴하기 위해, 분노를 마음껏 폭발하기 위해 권력을 탐한다. 반면에 선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집중력 있는 사람이 야심적인 이유는 실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 야심은 모든 면에서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 - P52

무정부주의자나 허무주의자들이 완전한 자유를 외치며 그럴듯하게 주장할 때, 그 밑에 잠재한 욕망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낭만주의 화가들의 그림에서 묘사되듯 숭고해 보이길 원하지만 사실은 모든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 할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타도하라’는 매력적인 구호가 될 수 없는 반면에, 그에 상응하는 ‘모든 규칙을 타도하라’는 영웅의 시체처럼 그럴싸하게 단장할 수 있다. - P61

스니치가 무엇을 상징하든 그것을 추적하고 포획하는 일이 다른 목표보다 더 중요하다. (중략) 이 문제에는 두 가지 방식으로 답할 수 있으며, 둘은 서로 중요하게 관련되어 있다. (중략) 추격꾼은 퀴디치 게임의 세부 상황을 무시하고 황금빛 공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디로 현실의 게임 참가자는 경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상관없이, 게임의 특수성과 별개로 도덕적 경기에 유념해야 한다. (중략) 스니치는 혼돈의 구처럼 근본적 중요성(의미)을 담은 ‘용기’라고 볼 수 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고 포획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 P86

어떤 것에 순간적으로 행복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본인에게 가장 유익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만 되면 인생은 정말 간단하겠지만, 지금의 당신이 있는 것처럼 내일의 당신이 있고 다음 주의 당신, 내년의 당신, 5년 뒤의 당신, 10년 뒤의 당신이 있으니, 가혹할지언정 당신은 모든 ‘당신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저주는 인간이 미래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일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과 관련이 있다. 일을 한다는 건 앞에 놓인 것의 잠재적 향상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한다는 뜻이다. - P155

우리는 무겁고 깊고 심오하고 어려운 어떤 것에 긍정적으로 빠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한밤중에 깨어나 의문에 휩싸일 때 다음과 같이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나는 결점투성이지만, 적어도 이 일은 하고 있어. 적어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 적어도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 적어도 내가 지기로 한 짐을 지고, 비틀거리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해 니아가고 있어.’ 진정한 자존감은 그렇게 형성된다. 자존감은 단지 순간순간에 당신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관련된 피상적인 심리 개념이 아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심리적일 뿐 아니라 실질적이다. - P165

부모들은 아이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기 위해 평생 노력한다. 교육 기관, 견습생 제도, 자원봉사 단체, 친목 모임 등에서도 같은 일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책임감을 주입하는 것이 사회화의 근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실수를 저질러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난 50년간 권리에 관해서는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으면서 젊은이들에게 요구해야 할 것을 말하는 데는 주저했다. (아래에 계속) - P192

(위에서 계속) 몇십 년 동안 젊은이들은 사회로부터 돌려받을 게 있으면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라는 말만 들었다. 우리는 그런 요구를 통해 젊은이들의 삶에 의미가 생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은 그와 정반대로 말해야 한다. 비극과 실망으로 가득한 인생에서 우리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의미는 고결한 짐을 짊어지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우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잘못된 장소에 눈길을 주며 성장해왔다. 그로 인해 젊은이들은 취약해질대로 취약해져서, 쉬운 길에 잘 넘어가고 걸핏하면 분노의 독에 감염된다. - P192

어떤 집단도 죄가 있다고 미리 가정해서는 안 되고, 그 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건 고소인이 악한 의도를 지녔다는 징표이며 사회적 재앙의 전조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실질적인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서 스스로를 억압자의 네메시스(복수의 여신)이자 피억압자의 수호자로 임명한다. - P207

현실은 대규모의 정교한 과정들과 체계들로 구성되어 있는 탓에 포괄적이고 단일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20세기에 유행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은 순진하고 자기도취적이며, 그것이 조장하는 운동들은 분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거짓된 성취감을 준다.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이 신봉하는 공리들은 개종을 주도하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신과 다를 바가 없다.(아리에 계속) - P209

(위에서 계속) 하지만 신은 죽고, 이데올로기도 죽었다. 20세기의 피비린내 나는 과잉에 스스로 질식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보내고, 더 작고 정확하게 정의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해야 한다. 문제를 정의할 때는 남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크기로 개념화하고, 문제를 개인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그 결과를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겸손하라. 방을 청소하라. 가족을 보살피라. 양심을 따르라. 바르게 살라. 생산적이고 흥미로운 일에 전념하라. 이것들을 잘 해냈을 때 더 큰 문제를 찾아 도전하라. 여기에서도 성공한다면 더 야심찬 계획으로 이동하라. 이 모든 과정에 꼭 필요한 출발점으로서,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 P209

진정한 예술품은 초월자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우리는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 무지에 매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창이 필요하다. 초월자와 연결되지 못하면 위협적인 도전 과제들을 이겨낼 수가 없다. 바다에 빠진 사람에게 구명구가 필요하듯이 우리는 자신 너머에 있는 어떤 것과 연결고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 연결고리란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예술의 역할을 이해하고, 예술을 더 이상 선택이나 사치, 가식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예술은 문화의 토대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심리적 통일성을 이루고,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 P237

창조적인 사람이 도시에서 하는 역할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그들은 약간 궁핍하다. 예술가로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인데, 사실 그런 가난은 예술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궁핍의 유용성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들은 도시를 탐험하고, 한때는 좋았으나 지금은 쥐가 돌아다니고 범죄가 만연할 법한 지역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곳저곳 찾아다니고 살펴보고 뒤적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조금만 손을 보면 멋진 곳이 될 수 잇겠는걸’, 예술가는 그 동네로 이사해서 중고 자재로 화랑을 만들고 작품을 전시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건 아니지만, 덕분에 동네가 약간 세련되어진다. 아주 위험했던 곳이 점차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변모한다.(아래에 계속) - P250

(위에서 계속) 그러자 커피숍 하나가 생기고, 색다른 옷 가게도 문을 연다. 그런 뒤 젠트리파이어gentrifier, 즉 빈민가를 고급화하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들도 창의적인 부류지만, 예술가보다는 보수적이다. (덜 절박하고 위험을 기피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변경에 가장 먼저 오지는 않는다.) 이어 개발업자가 나타난다. 잠시 후 체인점이 생겨나고, 중산층이나 상류층이 자리잡는다. 이제 예술가들은 떠나야 한다. 임대료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래에 계속) - P250

(위에서 계속) 이런 현상은 전위예술에 손해지만 나쁘지 않다. 가혹한 면이 있긴 해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그곳에 예술가가 머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다른 곳에 활기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다른 풍경을 정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예술가들의 자연환경이다.
예술가들이 혼돈을 질서로 변화시키는 그런 변경은 거칠고 위험한 곳이다. 그곳에 사는 동안 예술가는 혼돈에 빠져버릴 위험에 수시로 직면한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항상 인간이 이해하는 영역의 가장자리에서 살아왔다. - P250

반출생주의는 단지 출산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새로운 생명을 낳지 않으려는 충동이 머지않아 지금 존재하는 생명들을 파괴하려는 충동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도 큰 동정심에 휩싸여 어떤 삶들은 너무나 끔찍하니 그 고통을 끝내주는 것이 자비로운 일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나치즘 초기에 그런 철학이 출현했다. 인생에 의하 참을 수 없이 망가진 듯 보이는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자비로운’ 목적을 위해 안락사시킨 것이다. - P418

당신이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은 바보같이 순진해서가 아니다. 삶이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언 더더욱 아니다. 자기 자신과 세계에 가장 좋은 것을 주고 당신이 현재 무엇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획득할 수 잇는지를 잊지 않기로 용감하게 결심했기에 감사할 수 있다. 모든 존재와 가능성에 대한 감사는 세상의 변덕스러움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태도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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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의 핵심 개념들 - 제3판
앤서니 기든스 외 지음, 김봉석 옮김 / 동녘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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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한다고 일컬어지는 대 학자가 사회학을 처음 시작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초급 교재를 썼다는 것부터가 흥미진진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읽었다. 내러티브가 두드러지지 않아서 읽기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듯하지만, 중요한 개념어들의 정의, 역사적 기원, 의미와 해석, 비판적 쟁점, 현대적 의의를 깔끔하게 짚어주고 있어서 아주 재미있다. 사회학과 관련해서 더 읽고 싶은 책들을 소개해 주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든다. 막스 베버와 피에르 부르디외는 꼭 읽어야겠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행위자(이지만 인간 자신이 자유로이 선택한 상황하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논의함으로써 이 문제를 재구성하는 한 가지 방식을 제시했다. 기든스(1984)의 구조화 이론 structuration theory은 이러한 아이디어에 일부 빚을 지고 있다. 기든스가 보기에 구조와 행위는 서로를 함의한다. 그러나 많은 개인의 반복적 행위들은 사회구조를 재생산하고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기든스 이론의 초점은 ‘시간 및 공간에 걸쳐 질서 지어진’ 사회적 관행들 social practices이며, 사회구조가 재생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행들을 통해서다. 그러나 기든스는 ‘구조’를 추상적이고 지배적이며 외적인 힘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회적 관행들의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규칙과 자원으로 본다. 이러한 ‘구조의 이중성’은 기존의 이분법을 재고하는 방식이다. - P20

사회학의 역사 대부분에서 사회학자들은 명백히 특정 사회들과 그 사회들의 중심적 특성들을 연구하고 비교하고 대조해 왔으며, 이를 명확히 보여 주는 유형학 typology 들이 구축돼 왔다. - P38

합리적 방식으로 행위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행위하며 행위 수행 이전에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해 심사숙고한다는 뜻이다. 합리주의rationalism로 알려진 철학적 교의는 17세기에 기원한 것으로서 이성에 기초한 지식, 그리고 종교적 원천 및 전승적 지혜에 기초한 지식에 대한 이성적 추론을 특징으로 한다. 합리성은 명백히 그 기원을 사고, 행위, 지식 생산의 연결에 두고 있다. 사회학에서 사회의 합리화 이론은 대체로 고정된 상태보다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이며, 이는 막스 베버 저작의 핵심이다. 베버가 보기에 합리화와 주술magic의 젝는 근대성 시기의 특징에 대한 실제적 이해를 뒷받침하는 장기간에 걸친 세계사적인 사회적 과정이다. - P56

베버는 합리성을 실용적practical, 이론적theoretical, 실질적substantive, 형식적formal이라는 네 가지 기본 유형의 측면에서 논의한다(Kalberg, 1985). - P57

19세기 초반에는 많은 사회비평가들이 산업화가 중단되거나 역전될 단기적 과정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던졌지만, 같은 세기의 후반에 와서는 그러한 전망은 불가능한 것이 됐다. 오늘날, 산업사회로부터의 퇴행 de-industrialization은 가능할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지구 전체 인구가 엄청나게 감소하지 않는 한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다. 60억에서 80억 명 사이 수준의 지구 인구는 식량 생산의 산업화, 교통, 지구적 분업을 통해서만 지속 가능하다. - P114

소비주의 consumerism.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회들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생활양식으로서, 소비재의 지속적 구매를 경제와 개인적 욕구 충족 양자의 측면에서 유익하다고 선전하며 촉진하는 것 - P169

노동은 개인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중요성이 떨어졌다. 오히려 소비가 사람들에게 다양한 요소의 구매를 통한 개인 정체성 구성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보다 자유로운 선택과 개인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을 부여한다. - P170

소비주의는 또한 끊임없는 소비 욕구를 생성하는 사고방식, 정신 상채, 또는 심지어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소비사회학자들은 소비의 쾌락이 생산물의 사용이 아니라 무언가를 구매하리라는 기대에 있다고 논의한다. - P171

많은 사회학자들은 가족이 상호 지지에 기초한 협동적 단위라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가족은 어떤 구성원에게는 득이 되지만 다른 구성원에게는 불이익이 되는 매우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많은 연구 결과가 있다(Pahl, 1989). - P257

공동체 community.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특정한 지리적 위치에 살고 있거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으면서 서로 간에 체계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 P260

공동체 개념의 주된 문제점은 사회 분석이 규범적 편견으로 바뀌어 버릴 위험이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종종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다른 것에 우선하는 인간 정주settlement의 대규모 유형으로 여겨지곤 한다. 퇴니에스(1887)의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대비는 이러한 문제의 분명한 사례다. 그의 연까 비록 여러 측면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 발전이 초래한 중요한 사회변동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과정 속에서 무언가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 상실됐다는 생각이 관통하고 있다. - P263

문화적 재생산에 관한 현재까지 가장 체계적인 일반 이론은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1986)의 것이다. 그의 이론은 경제적 위치, 사회적 지위, 그리고 문화적 지식과 기술로 대변되는 문화자본을 연결시킨다. 부르디외 이론의 핵심 개념은 자본인데, 이는 자원을 획득하고 사람들에게 이득을 부여하는 데 사용되는 다양한 유형을 일컷는다. (중략) 문화자본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이를 경제자본과 교환할 수 있다. (중략) 사회자본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중요한 인물을 알거나’ ‘중요한 모임에 가입할 수 ’ 있고, 이를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존경과 사회적 지위 상승이라는 상징자본과 교환할 수 있으며, 이로써 권력 획득 기회를 증대시킨다. - P310

이데올로기 ideology. 사회 내의 ‘상식적’ 관념 및 널리 펴진 신념으로서, 많은 경우 간접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봉사하고 그들의 위치를 정당화하는 것. - P321

권위 authority. 개인이 또는 집단이 타인 또는 집단에 대해 보유한 정당한 권력power. 막스 베버 Max Weber((1925) 1979)의 정치사회학은 대부분의 권력, 정치, 권위 연구의 출발점이다. 베버는 권력을 개인 또는 집단이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역량으로 봤지만, 누군가가 권위가 있다는 것은 명령을 내릴 수 있고 그 명령이 수행되리라는 타당한 기대를 가진 경우에만 그렇다고 했다. 따라서 권위는 명령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가 정당하게 명령을 내린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 P425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2006)은 민족이 구체적 ‘실체’가 아니라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 즉 자신들의 속해 있다고 느끼는 문화적 독립체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인식 또는 상상에 의해 결속된 다양한 집단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상된’ 것이기 때문에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 공동체의 인식에 기초해 행위하면, 상상된 공동체는 이들을 결속시키는 공유된 민족 정체성을 일으킨다. - P433

에릭센Thomas H Eriksen(2007)은 자신의 흥미로운 연구를 통해 "민족은 사이버 공간에서 번성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민족이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인터넷 활동을 계속하면서 먼 거리를 통해서도 보다 효과적으로 민족 정체성을 고취하는 ‘상상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인터넷은 지구적 커뮤니케이션과 대량 이주의 시대에 민족 정체성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한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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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팝니다 -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지음, 윤미경 옮김 / 마티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비문, 오역이 너무 많아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 책의 내용이 좋아서 더 안타깝다. 

반문화 분석에서는 그냥 즐겁게 노는 것이 궁극적인 전복적 행동으로 보인다. 향락주의가 혁명적 독트린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문화 반란이 소비 자본주의를 활성화시킨 것이 뭐 그리 놀랄 일이겠는가? 현실을 점검해봐야 할 때다. 즐겁게 노는 것은 전복적이지 않으며, 체제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다. 사실, 만연한 향락주의로 인해 사회 운동을 조직하기가 더 어려워졌고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희생을 하라고 설즉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우리가 볼 때 진보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정의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문화에서 분리시킨 뒤 전자는 계속 추진하고 후자는 폐기처분하는 것이다. - P16

너바나는 대성공을 거둔 2집 ‘Nevermind’가 마이클 잭슨을 앞서기 시작한 이후로 팬들을 떨어내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이들은 후속 앨범인 ‘In Utero’를 의도적으로 어렵고 접근이 불가능한 음악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허사였다. 이 앨범 또한 연이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코베인은 얼터너티브 음악에 대한 자신의 약속과 너바나의 대중적 성공을 결코 조화시킬 수 없었다. 결국, 자살이 곤경의 타개책이었다. - P22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이 이러한 거짓 생각들의 결합체에 완전히 갇혀 있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하려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물신주의와 소외된 노동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 - P31

1920년대에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허위의식을 유발한 것은 노동자들에게 경제 체제 작동에 관한 어떤 거짓 신념을 불어넣어서가 아니라 완벽한 문화 ‘헤게모니’ 확립을 통해서였으며, 이 헤게모니가 다시 체제를 강화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상 문화 전체-책, 음악, 그림-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를 반영하므로 이를 버려야만 노동계급이 해방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P33

나치 정권은 ‘대중 사회’의 서막을 장식했다. 고대 전제군주들의 권력 구조에는 대개 엘리트만이 포함되었다. 인민들 대다수는 그저 자기 일에나 관심을 쏟고 지도자에게 복종만 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근대의 전제국가는 대중을 동원했다. 인민들 자체가 열정에 휩쓸려서 스스로 전제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근대의 선전기법들과 결합하여 작은 무리들에서 볼 수 있는 광기와 순응을 사회 전체의 규모로 재생산할 수 있도록 한 ‘대중미디어의 발명’ㅇ었다. 그리하여 대중매체와 집단순응의 사생아인 대중사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 P36

만일 모두가 무법자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도도 규칙도 법규도 없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반문화 이론은 전통적으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요리조리 회피해 왔다. 이런 발뺌을 할 때 늘 하는 말이 "자유로운 사회에는 청사진이 없다"거나 문화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우리의 의식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하므로 미래 사회가 어떠할지 예측할 수 업다는 것이다. 미셸 푸코가 이 분야의 대가였다. 또 다른 한 가지의 답은 반란과 저항을 그 자체로 낭만화하는 것이다. 주류사회에 대한 저항이 종종 개인을 위한 치료책으로 여겨졌고 장려되었다. 사회의 전반적인 환경 개선과 사회정의의 추구라는 목표는 실종되었다. - P77

상호 이익을 창출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사회통제가 요구되고 따라서 불복종에는 처벌이 따른다. 그렇다고 모든 사회규범이 압제적이거나 강압적이지는 않으며 복종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순응주의자이거나 겁쟁이가 아니다. 이들을 "훌륭한 시민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P104

다른 사람들을 무의식적, 순응주의적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축하는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 P124

프레드 히르쉬는 물질 재화(material goods)와 지위 재화(positional goods)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이, 주택, 가솔린, 밀과 같은 물질 재화가 부족한 경우는 재화의 생산에 시간, 에너지,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투자할 의지가 있다면 물질 재화는 더 많이 생산해낼 수 있다. 하지만 지위 재화의 부족은 내재적이어서 우리가 원한다고 해도 더 많이 생산해낼 수가 없다. 지위 재화는 양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개인의 상대적 지급 능력에 의해 접근성이 결정된다. 지위는 지위 재화의 한 유형이다. 부동산도 다른 유형의 지위 재화이다. (중략) 삶의 질을 결정하는 데 있어 지위 재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려하면 왜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행복과 절대적 부의 관련성이 없어지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P153

실제로, 카진스키와의 차이가 본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전술적이라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이 많았다. (알 고어의 ‘위기의 지구’에서 인용한 구절과 카진스키의 성명성서 인용한 구절을 구별하라는 유명한 인터넷 퀴즈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답을 맞추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그의 신념에 동의했다. 다만 우편물 폭탄에 찬성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폭력에 대한 카진스키의 생각은 장 폴 사르트르, 프란츠 파농과 말콤 엑스에 이르는 수많은 60년대의 아이콘들이 취한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유나바머 사건은 반문화 지지자들이 수십 년 동안 애써 피해 왔던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직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중략) 반사회적 행위에 가담하는 것과 사회에 반기를 드는 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안이 광기로 타락하는 것은 어느 시점인가? - P174

다음은 이 책을 함께 쓰고 있는 앤드류가 지난 몇 년간 쿨하다고 생각해서 산 물건들이다. 진품 버버리 레인코트, 상하이탕 실크 재킷, 존 플루보그 신발 세 켤레, 와이드스크린 모니터 델 인스피론8500, 레이반 프레데터 선글라스, 케네스콜 손목시계. 다음은 조가 쿨하다고 생각해서 산 물건들이다. 솔로몬550 프로용 스노보드, 앞부리에 강철을 댄 블런드스톤, 듀웨스트 가죽반코트, 루츠가죽클럽의자, 미니쿠퍼 승용차. 우리들 대부분이 이런 목록을 어렵지 않게 작성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목록의 대부분이 브랜드 소비재이다. (중략) 그런데 쿨이 도대체 무얼까? - P239

쿨한 사람들은 용인된 진행 방식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급진주의자, 파괴자로 보이기를 좋아한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힘이다. 진정한 창조성은 정적으로 반항적이고 파괴적이라는 말이 진실인 이유는 그것이 기존의 사고 패턴과 생활 패턴을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진정한 창조성은 "자본주의 그 자체를 제외한" 모든 것을 타도한다. 따라서 토마스 프랭크가 "쿨의 정복"이라고 묘사한 과정은 사실 전혀 정복이 아니다. 프랭크는 "반문화는 미국 중산계급의 가치 발전의 한 단계, 즉 소비자 주관성이라는 20세기 드라마의 화려한 한 편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더 정확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 P259

집이 없는 사람들이 없도록 임대료를 일괄적으로 저렴하게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 아주 비효율적으로 혜택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빈곤 문제를 처리하는 옳은 방식은 수입 지원, 노동시장 정책, 정해진 대상에게 복지 혜택 주기 등의 방식을 통해서이다. - P401

반문화 신화가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의식에 미친 영향은 궁극적으로 나치 독일이 서양문명에 가한 광범위한 심리적 외상의 증거이다. 이전이라면 예술가와 낭만주의자들에게서나 보통 볼 수 있는, 순응에 대한 온건한 경멸감이었을 것이 홀로코스트 이후에는 규칙성이나 집단성의 기미가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과도한 혐오감으로 부풀려졌다. 순응은 가장 큰 죄가 되었고 대중사회는 反유토피아의 주요 이미지가 되었다. 이전이라면 인민의 옹호자로 나섰을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그 인민들을 점점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진보적 좌파의 경우, 상처는 한층 더 깊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파시즘뿐만이 아니라 많은 경우, ‘사회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좌파는 사회규범(예절 포함), 법률, 관료조직 등 사회조직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들 중 많은 것들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기본요소 없이 인간들 사이의 대규모 협력을 조직하는 일은 정말이지 불가능하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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