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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평점 :
못생긴 여자, 라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이탈리아의 현대문학은 - 물론 뭐 그리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은 그 몇권의 책을 떠올려봤을 때 - 우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표현되는 것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하고 있는 고민들, 학업, 취헙, 가족.... 에 대한 고민과 갈등의 모습이 바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못생긴 여자'라는 제목을 봤을 때 그녀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일 것이며 그녀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과 같을 것이라는 예감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더구나 글의 시작부터가 심상치않다.
"못생긴 여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꺼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삶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우리 못생긴 여자들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으면 마치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삶의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는다. 그곳에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우리가 죽지 않고 숨이나 경우 쉴 수 있을 정도로만 열어놓은 조그마한 틈새에 대고 하소연을 늘어놓는 것이다.
못생긴 여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할 줄 모른다. 그저 자신이 무엇을 누릴 수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 만족할 뿐이다.
... 나는 못생겼다. 진짜로 못생겼다.
그렇다고 불구는 아니어서 남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내 몸에 붙어 있어야 할 것은 다 붙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영락없이 어딘가는 기준치보다 조금 더 짧거나 길다. 그것을 일일이 열거하는 건 의미도 없을뿐더러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린아이처럼 예쁘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내 외모는 인간이란 종에 대한 하나의 모욕이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모욕이다."(5-7)
그러니까 '못생긴 여자'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책의 내용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처음 시작부터 완전히 현실적으로 내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든다. 나 역시 못생겼다. 못생긴 여자가 못생긴 여자를 읽고 있다. 이것이 아이러니가 될지 웃픈 이야기가 될지 슬픈 이야기 혹은 즐거운 이야기가 될지. 아주 조금은 기대를 하며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혹시 '못생김'이라는 것이 이 책에서 하나의 은유로 쓰인 것은 아닐까, 못생긴 여자인 레베카의 모습은 또 다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고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작가는 레베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책장을 덮으며 뭔가 좀 아쉽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 이내 내 마음을 치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나 역시 사회적으로 형성된 습관적 개념에 의해 레베카를 판단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한 판단은 레베카의 외모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구인 루칠라와 루칠라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굴곡시켜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난 후, 나 역시 못생겼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으리라는 내 오만이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나 또한 레베카를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차별'이라는 말에서 두려움을 느껴왔다. 민족, 사회, 문화, 외모, 취향....
감히 누가 어느 한쪽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단 말이가. 이 소설은 그 '두려움'에서 태어났다. 환영도 사랑도 못 받는 레베카는, 지금도 우리 안에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레베카의 손을 잡고 입학식에 참석하는 것을 포기한 아버지, 너무 못생긴 레베카의 탄생으로 인해 심한 우울증에 빠져 레베카를 외면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부모를 비난하며 레베카를 돌보기 위해 한집안에서 같이 지내고 있지만 그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던 에르미니아 고모까지 레베카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는 가족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레베카에게도 모두에게 내세울 수 있는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이 있다. 그것으로 인해 레베카는 데 렐리스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레베카의 주변 인물들, 그러니까 가족을 비롯하여 레베카를 돌봐주는 마달레나와 친구 루칠라, 루칠라의 어머니와 이모(레베카의 학교 선생님이기도 한), 렐리스 피아노 과외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게 영향을 주고 그녀의 삶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하고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그 모두를 통해, 그러니까 관계와 일상의 모습 속에서 레베카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듯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데 렐리스 할머니는 레베카에게 이런 말을 한다. "얘야, 너는 특별한 아이야. 설령 네가 또 다른 외모를 가졌다고 해도 그것이 네 인생에 절대로 커다란 영향은 끼치지 못해. 넌 그 정도로 특별한 아이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 이 땅에 사는 날이 얼마나 된다고 외모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서로 다투어가며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느냔 말이지. 정말 한심한 노릇이야."(208)
그리고 그 말중에 요즘은 외모를 바꿀 수 있는 간단한 방법, 수술을 하면 그뿐이라는 이야기도 언급하고 있다. 그래, 왜 레베카는 수술을 하지 않는거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 생각의 이면에 '못생김'이라는 것은 수술을 통해 그 표면적인 외형을 바꿀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내면의 못생김을 바꿔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데 렐리스 할머니를 만나면서 레베카는 조금씩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버지와의 관계도 변화하게 되고, 그녀의 집안 역시 조금씩 어머니의 향을 품어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레베카의 삶이 확연하게 바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선가 백마를 탄 왕자님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학교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고 냄새나는 괴물 취급을 당하고 결국은 집단구타를 당하기도 하는 모습은 현실이 아닌 꿈속의 모습처럼 그려진다. 한참을 읽고 난 후에야 그녀의 현실적인 괴로움의 실체를 보게 되어 슬프기도 했지만, 이미 레베카가 "완전히 불행한 건 아니야. 이게 내 인생이니까"라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덜 슬펐다.
그러니까 인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이고 뭔가 특별한 삶의 선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소설속의 통념을 깨버리면서 레베카의 일상을 그대로 바라보게 만들어서 오히려 다행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말이다. 나 역시 '나름 잘 지내'라는 말을 모두에게 하고 있으니 내 인생은 그리 나쁘지 않아,인 것이다.
"하지만 못생긴 건 어쩔 수 없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건 나도 알아. 좀 더 뛰어날 수 있으면, 나를 잊을 수 있으면, 내 외모를 잊고 살 수 있으면 말이야..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아. 그래서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해 질 때까지 여기 갇혀 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면서 지내는 거야. 아버지는 대단한 미남이지만 나처럼 맞서서 세상일을 헤쳐 나갈 줄 몰라. 마음은 있지만 못하는 거야. 그 점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이해해. 난 불행하지 않아. 완전히 불행한 건 아니지. 나름 잘 지내. 그리고 그렇게 외롭지도 않아. 관중들에게 익숙한 오페라 가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말이야. 마달레나도 있고 데 렐리스 선생님도 있고, 일로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외롭다고 할 수는 없지. .그냥 그게 내 인생일 뿐이야."(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