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호떡 먹었다고 서민 삶 이해할까. 그래, 그러니까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재래시장 골목을 누비며 서민들의 음식을 먹으며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데, 정말 그런다고 그들이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까. 뒤집어 생각해봐라. 내가 하루동안 최고급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최상류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 먹지 않던 음식을 잘못 먹으면 배탈만 난다. 아, 근데 너무 졸립고 정신없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조용하던 거리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선거철이지만 동네가 조용하다... 싶었는데 내가 그런 조용한 곳으로만 돌아다녔는지도.
드라마를 보는데 아주 참한 청년과 아주 엉망인 청년이 대조되어 나온다. 착하기만 한 순둥이 그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바로 합격이 되어 교사로 취직이 되고 첫 월급을 부모님께 다 갖다드린다. 반면 그녀의 친구인 날라리 부잣집 딸내미는 겨우 들어간 똥학교마저 제때 졸업하지 못하고 여전히 학생의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는둥마는둥하고 있다. 부모가 한마디 하자 대뜸 아버지가 부자인데 자기마저 취업을 해 돈을 벌면 어떻게 하냐고, 자기가 놀면서 돈을 써 주는 것이 부의 재분배이고 평등의 일환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지금의 시대에 수많은 청년을 배신하고 저 혼자 살아보겠다고 취업을 한 친구가 나쁘다는 궤변에 이어.
그래도 그쯤은 귀엽게 봐줄수 있다. 아침에 뉴스를 듣는데 또 다시 되풀이되는 재벌들의 횡포. 자신들이 고용한 피고용인인 운전기사를 인격모독할뿐 아니라 폭행마저 서슴치않고 있다한다. 자기 몸종 부리듯이 한다는. - 뉴스기사를 전하는 기자의 표현 자체에 '몸종'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누가 누군가를 위해, 아니 그저 자신을 위해서일지라도. 인형을 만드는 방법이 적혀있는 책을 관심있게 본다면 누군가에게 (그것이 자신일지라도) 인형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것,이라는 말에 동감. 그런데 좀 웃긴건. 엊그제 양말을 빨아널고 - 양말을 널 때 손으로 꾹꾹 쥐어짰는데 빨래를 걷고 보니 말짱해보였던 양말의 발뒤꿈치쪽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나 있다.
왠만하면 꿰매어 한두번이라도 더 신어보겠다마는 그건 쫌. 그러고보니 쌓아둔 양말더미에서 그렇게 구멍이 나기 시작하고 터질듯말듯 - 신발을 벗어야하는 상황이 되면 아침에는 멀쩡했지만 오후에는 발가락이 구멍을 내겠다 싶은 양말들도 꽤 많이 찾아냈다. 터질때까지 꾸역꾸역 신지 말고 그 양말로 손가락 인형이라도 만들고 싶은데. 바느질이 영 젬병이라 선뜻 손을 못내밀겠다.
그렇다면 저 짜투리 양말짝들은 던져야한다는 결론인데, 괜한 미련을 갖고 있다보니 여전히 집안은 엉망인 상태다.
ㅇ이이
이제는 책이 아니라 이렇게 뭔가 손으로 꼬물거리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하면서 마당에 있는 상추와 치커리를 뜯어 먹을줄만 알지 잡초를 메거나 빼곡하게 난 새싹을 솎아주는 것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저 볕좋은 주말에 현관앞에 쪼그리고 앉아 요전번에 심은 꽃씨가 얼마나 새싹을 틔우고 있는지 살펴볼줄이나 알지. 그마저도 볕이 좋지 않거나 피곤해서 졸릴때는 바라보지도 않고 신경을 꺼버린다. 그러면서도 말은 좋아서 여름에는 고추랑 오이, 토마토를 심는 것이 아주 당연한 듯 말하고 있으니.
입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인테리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섯부르게 손을 댔다가는 괜히 더 엉망으로 만들고, 그래서 비용이 들어가는것은 쉽게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나날이 엉망이 되어가는 집안 정리를 위해 저렇게 멋지고 정돈된 인테리어책을 보는 것은 좋아하고.
ㄴ나 나무수업을 읽은 후,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마당의 나무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니까 그냥 오래된 나무의 껍질이 벗겨지는가보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마당의 앵두나무를 보니 이렇게 겉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속은 정말 매끈하고 탄탄하게 버티고 있고. 사진에서는 잘 안보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정말 딴딴한 느낌이 확 온다. 나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좋겠구나, 싶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