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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몸은 진실을 기억한다. 트라우마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나 속이 뒤틀리는 기분으로 몸에 남아 있다면, 가장 먼저 싸움 - 도주 상태에서 벗어나 위험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타인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552)
하나의 이야기처럼 책 한 권을 그대로 읽어내려가다가 문득 '몸은 진실을 기억한다'라는 말에 심장이 쿵 와닿는다. 트라우마라고 하면 커다란 사건이나 지워지지 않는 외상에 대한 것 같은 굵직한 덩어리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상적으로 내게도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내게 오히려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언젠가부터 왠지 모를 불안에 빠져있곤 했었는데 어쩌면 그 이유가 어머니의 건강과 관련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머니가 숨을 멈추고 쓰러졌을 때즈음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악몽에 시달려 비명을 지르기도 했고, 내가 내 비명소리에 놀라 깨기도 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괜찮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한 것 같은 반응을 보이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불안한 느낌이 지속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더 읽어보고 싶었다.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이라는 부제도 의미심장하지만 '몸은 기억한다'라는 제목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모든이가 나름대로 조금씩은 겪고 있을지 모르는 '트라우마'에 대해 좀 더 접근을 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게 만들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노트에 옮겨적은 내용들이 꽤 많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 책에 대한 요약을 해볼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반이 넘어갈 때쯤 나는 나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내가 주위에서 접해본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대한 - 사실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별 것 아니라고 여길수도 있는 그런 가벼운 이야기들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나 자신에 대한 것을 알고 난 후 다시 읽어볼 때에는 다른 이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깊이있는 파고들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약물치료나 역할극을 하는 치유과정에 대해서는 트라우마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다하더라도 다들 한번쯤은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일것이다. 여러가지 사례에 대해서는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뇌파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 대략적으로 훑어지나가버려서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확신하게 되었고, 그것은 단지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미래가 좀 더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시도해 볼 수 있으며, 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첫번째 노력은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것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시작은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이해하고 있지만 백여년 전을 떠올려본다면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 대한 이해는 물론 과거의 상처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시대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 후 전쟁, 홀로코스트 같은 커다란 사건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성폭행 같은 개인의 아픈 상처 역시 뇌에 각인되어 무의식중에 그 상처를 드러내고 있음을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트라우마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과 화해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상처임을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삶의 고통을 다 갖고 있다,라는 생각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고통속에 자신을 파묻어버리고 살아갈 것인지, 변화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자신의 내적 경험을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자기 스스로를 자각하며 트라우마와 직면하여 이겨내려 노력하며 다른 시각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바라보는 다른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그것은 스스로의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혼자가 힘들다면 주위의 도움을 받을수도 있고, 전문의의 도움과 때로 누군가는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트라우마는 자신의 나약함과 끊임없이 대면하게 만든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처하도록 만들지만, 동시에 월등한 회복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 수많은 사람이 그 고통스러운 경험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소중한 파트너가 되고 부모가 되며 모범적인 선생님, 간호사, 과학자, 예술가로 살아간다"(563)
이 책의 모든 부분이 다 인상적이고 마음을 움직이고 있지만 특히 닫는 글의 마지막 문장은 더 마음을 울리고 있다. "공중보건 분야에서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트라우마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알고 있는 사실대로 행동할 것인지는 이제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