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 진짜 여행에 대한 인문학의 생각
정지우 지음 / 우연의바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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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기쁨, 쾌락, 감격, 감동, 설렘, 들뜸, 새로움, 즐거움으로만 정의하는 데는 분명 무리가 있다. 여행 Travel의 어원인 Travail이 고통과 역경을 의미한다는 것은 애초에 여행 속에 '부정적 순간들'이 배태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생, 피로, 고통은 모든 삶이 그렇듯, 모든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필수 요소다"(175)

 

한권의 책을 읽으며 여행에 대한 여러 의미와 느낌들을 떠올리고 정리해보게 되었는데 자꾸만 이 여행에 대한 어원의 이야기가 머리속을 맴돈다. 오래전부터 여행은 삶이고, 삶이 곧 여행이다 라는 이야기를 되내이곤 했기 때문일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야기들 역시 그 맥락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여행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내 첫 여행이라는 것은 기껏해야 수학여행이었을뿐이었고 그에 대한 추억은 반 친구들과 함께 외박을 하며 놀았던 기억이 가장 크다.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친구들과의 추억이라고 해야하겠지. 그렇다면 첫 해외여행은 또 어떤가. 그것 역시 세계가톨릭청년대회라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떠난 것이었기에 어쩌면 진짜 '여행'이라고 할만한 첫번째 여행은 언니와 언니친구부부와 함께 떠났던 배낭여행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찌보면 꼴랑 로마와 파리 중심가만 둘러보고 돌아 온 여행이었다고 치부해버릴 수 있는 여행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길을 물어물어 돌아다니고, 빤히 누가 훔쳐갔는지 알면서도 지갑을 돌려받지 못한 집시들의 모습과 프랑스 사람들의 양면성도 느꼈었던 나름의 문화체험을 하고 돌아온 여행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맥베스를 읽을 때 어떻게 병사들이 나무를 한그루씩 짊어지고 움직이는 것으로 숲 전체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지? 라는 어릴때의 의문을 로마에 가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렵게 바티칸을 중심으로 구경은 했지만 파업으로 인해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할 수 없었는데 우연히 만난 한국인 유학생 덕분에 저렴한 숙소도 구하고 하루 관광 가이드도 소개받아 시 외곽으로 차를 타고 나가는 길에 저 멀리 보이는 나무들이 올리브 나무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어떻게 내 머리속에서는 맥베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한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숲이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문학의 사실성과 함께 문화체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내게 여행은 '체험'이 가장 크게 자리잡았다.

 

이 책은 '여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처음의 시작은 누구나 그렇듯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과 일상에서의 일탈이라는 기대감이 아닐까 싶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바로 그곳에 내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진을 남기는 것. 그렇게 일반적인 시작을 하고나면 조금씩 자신의 여행에 대해, 그러니까 어쩌면 여행과 삶의 닮은 꼴을 찾게 되기 시작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있는 사색에 빠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저자만의 경험과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것은 또 나 자신의 여행과 닮아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생각해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와는 다른 나의 체험과 삶을 정리해보게 하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이 책을 읽고 나는 '나의 여행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떠올리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가장 기본적으로 아무생각없이 지금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해방감을 느껴보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이든 연로하신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갈 수 있는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지 어머니와 함께 떠날 수 있는 짧은 온천여행이라도 가보고 싶은 것이든 그 모든 여행이 바로 나의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남은 나의 삶과 여행은... 조금씩 더 생각해보도록 해야겠다.

 

"여행은 삶을 견디고 바꿀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선물하고, 우리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기도 하며, 또 한편 우리를 허무한 욕망의 사슬로 이끌기도 한다. 최고의 것들에는 항상 최악의 가능성이 함께 감추어져 있듯,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 현명한 여행은 틀림없이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선물해주고, 우리를 새로운 지평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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