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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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게 잡았던 책을 더는 끌고 갈 수 없어서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일을 팽개쳐두고, 퇴근하는 것도 잠시 미루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다 읽어버렸다. 서서히 드러나는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은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이미 관심사는 추리소설의 정석인 '범인 찾기'를 떠나버리고 만다.

등장하는 가족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는 일본과 우리의 사회문제와 그 현실에 눈길이 가고 점점 더 불어나는 등장인물들의 생활상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이 책을 그저 '추리소설'이라고만 분류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라 내뱉게 되었다. 나는 정말 이 책이 아주 아주 재미있는 추리소설인 줄 알았으니까.

아무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까지, 그를 두려워하는 자가 하나도 없어질 때까지, 그의 창백한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내내 거기 있을 것이다(659)

결론처럼 다가오는 이 문장때문에 또 한참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왜 이 책의 제목을 '이유'라고 했는지 알 것만 같아 마음 한 켠이 휑 하게 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가족은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저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이유가 필연처럼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설정, 그러니까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는 이야기 설정에 억지는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요, 그 어지러울 정도로 높은 아파트 창문을 밑에서 이렇게 올려다보면서 생각을 했어요. 저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갑부들이고 세련되고 교양도 있고 옛날 일본인의 감각으로는 상상도 못할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어쩌면 가짜인지도 몰라요. 물론 실제로 그런 영화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그것은 그것대로 점점 진짜가 되어가겠지요.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가 거기에 다다르기까지는, 얇은 껍데기 바로 밑에는 예전의 생활 감각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연극이 아직은 한참 동안 계속되지 않을까요? 다들 핵가족, 핵가족 하는데, 내 주위의 좁은 세계를 보면 진짜 핵가족은 한 집도 없어요....... 그 웨스트타워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뭐랄까, 갑자기 화가 꾹 치밀어 오르더군요. 자기 안에 살고 있는 비열한 사람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저렇게 떡하니 버티고 서 있쟎아요...(493-494)

모든 것이 이 거대한 웨스트타워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결국 그 안에 누가 살아가고 있고,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관없는 거대한 현대문명의 '집'은 그 안에 살고 있는 '가족'을 무참히 해체해버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이 묵직한 두께만큼 무거워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무거운 주제로 심각해져 책의 흥미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살인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시작하여 그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한명씩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는 것으로 점차 흥미를 더해가고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또 우리와 비슷한 정서와 사회문제를 갖고 있는 일본의 이야기여서인지 그닥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이 책을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어쩌면, 그닥 낯설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이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는 더 서글픈 이유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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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2-29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람의 책 좋아라 하는데^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