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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평점 :
새삼 어린 왕자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오히려 낯선 느낌이다. 너무 많이 읽어서 오히려 더 멀어져가고 잊혀져가고 있었던 어린왕자. 나는 지금 어린 왕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중학생이 되어 처음 읽었던 어린 왕자 이야기는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고 여우와 장미와 소행성 B612, 사막, 보아뱀...이 하나씩 그 의미를 더해가다가 나중에는 그 모든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여행길에 읽을 책을 사려고 서점에 들렸다가 눈에 띄었던 어린 왕자를 집어들고 비행기를 탔을 때, 잘 기억하지도 못했던 또 다른 등장인물들을 만나게 되었다. 뜻밖에 많은 어른들이 등장을 했고, 나는 그들과는 달라, 라는 생각을 위안 삼아 어린 왕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스스로 만족하며 감탄하는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어린 왕자를 피상적으로만 생각했다. 아니, 어린 왕자를 잊고 살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기억하는 어린 왕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보다는 내가 만났던 생텍쥐페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를 더 떠올리려 애쓰고 있다.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책 한 권을 다 읽어버리고나니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져버려서일까.
마지막 비행에서 저 멀리 자신의 별을 찾아 떠나버린 것처럼 돌아오지 않은 생텍쥐페리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조금 많이 슬프게도 꽤 오랫만에 다시 읽어 본 어린 왕자에서 처음 만난 것은 나의 모습이었다. 지배하려하고, 소유하고 싶어하고, 계산이 중요할뿐만 아니라 나의 일을 해내기 위해 다른 무엇을 할 여유를 가질수도 없다....
나는 그런 어른과 달라,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분명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그런 어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해버리고 그냥 떠나버렸다. 나는 어쩌라고?
"나는 두레박을 그의 입술까지 들어 올렸다. 그는 눈을 감고 마셨다. ... 그 물은 보통 음료수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 물은, 별빛을 받고 걸어온 발걸음과 도르래의 노래와 내 팔의 노력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선물처럼 마음을 흐믓하게 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에도 이처럼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 자정 미사의 음악, 다정한 미소들이 바로 내가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빛나게 했다"(100)
지금 내게 위안을 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생텍쥐페리의 마음을 통해 내가 받은 선물을 빛나게 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 밀밭을 보며 어린 왕자의 금빛 머리를 떠올린다거나 오천송이의 장미 속에서도 나의 장미를 찾아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처럼 한모금의 물에서도 별빛과 노래와 나의 노력을 함께 선물로 받는 것이라는 것.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것.
읽을때마다 어린 왕자는 내게 더 많은 말을 건네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떤 말을 건네주게 될지는 전혀 짐작할수가 없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어린 왕자를 만나야 할 것이다. 그를 직접 만나게 되기 전까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