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다니, 뭘?

 

산을. 나아가서는 나라를. 백성을. 여전히 피폐한 나라의 미래를. (293)

 

 

 

 

 

십이국기를 읽기 전에는 이 이야기들이 그 흔한(?) 영웅들의 모험담, 건국기... 정도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 위대한 이야기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아주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이야기 전개와 나름 맘에 들 것만 같은 세계관이 나와서 좋았다. 머잖아 나도 이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겠구나.. 싶긴 했지만 바쁜 일상에 이들의 판타지같은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에 묻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조금 여유가 생겨 [히쇼의 새]를 집어들어 읽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한 이 이야기는 빠르면서도 더디게 나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아들은 괴로워했어요. 우리도 괴롭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겁니까. 당신들에게 우리 백성은 아무리 괴로워해도 돌아 볼 가치조차 없는 존재입니까"(152)

 

이 울부짖음은 ... 수많은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해도 슬픔이 북받치는데...

 

 

지난 주,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축복식에 다녀왔다. 강정생명평화,를 위한 기나긴 여정의 정점이었다고도 할 수 있었을까?

축복미사 강론중에 강우일 주교님께서는 이것으로 우리의 싸움이 끝난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하셨다.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단순히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이들과의 마찰이 아니라 우리 안에 전쟁을 긍정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국가안보를 빌미로 폭력성을 위장하며 전쟁준비를 정당화하려는 그들이며 그들과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하셨다.

전쟁준비를 위해 쏟아부어대는 그 많은 예산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인다면......

지금 전 세계를 들끓게 하고 있는 시리아 난민 어린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난민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로 정책화되어가고 있을뿐이고.

 

"그러니까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말라고 했던 것인데. ... 현실을 외면하면 끔찍한 일이 피해 가리라 믿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를 원망하면 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 죄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고, 그럼에도 지킬수도 막을수도 없었다.

틀렸다.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왕은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잔혹한 현실을 외면한 바람에 자신의 잔혹함도 깨닫지 못했다."(60-61)

 

 

 

 

사실 [히쇼의 새] 이야기 안에는 더 많은 백성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특히 '사형제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논란을 전개하기 전에 이미 오노 후유미는 '살형'의 본질에 대해 일곱살짜리 아이를 통해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사람을 죽이는거야?' 라고.

그리고 고향마을의 너도밤나무숲을 지키기 위해, 산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지키는 것임을, 우리의 미래를 지켜내는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청조란] 이야기를 읽으며 청조란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효추의 함을 짊어지고 그 뒤를 이어가는 모습에 괜히 뭉클해졌다.

"폐허 같은 나라, 결실을 거둘 수 없는 대지, 이 아이들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실감은 나지 않는다. 가도는 여전히 엉망이고, 가는 도시마다 여전히 생기가 감돌지 않았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새로운 왕은 나라를 구해줄까. 그것을 위해 자신은 무엇을 했을까. 새로운 시대를 바랄 만큼의 일을 했을까."(303)

새로운 시대를 바랄 만큼의 일.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 십이국기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솔직히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가 더 궁금해졌다. 괜히 비장한(?) 마음으로 밑줄긋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역시 이 작품은 문학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히쇼의 새]에서 내가 끄집어내고 싶은 문장은 바로 이것. 죽음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면서 또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래서 힘을 내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저 그윽한 향기 속 하얗고 아름다운 꽃잎에 몸을 파묻고 부지런히 일하는 벌들이 사랑스러웠다. 반짝반짝 빛나는 날개, 부드럽게 빛나는 털, 윤기나는 금빛 꽃가루, 부웅하는 날갯 소리가 바람소리, 새소리와 함께 졸음이 쏟아질 듯한 한가로운 음색을 연주하고 있다.

이렇게 일하는 벌들도 가을에는 전부 죽는다.

자연의 무자비.

그래도 생명은 끊임없이 살아가고, 건실하게 유지되어 이어진다.

...... 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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