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박형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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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다고 잘 살고 없다고 못사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어머니 적 시절을 다시 생각해본다(134쪽)

가만 보자.. 이 글을 쓰신 분이...... 58년생이시네. 이렇게 맛깔스럽게 글을 쓰시다니 도대체 뭐하는 분이여? 하며 책을 읽다 말고 저자 약력을 다시 살펴본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 책의 내용과 표현은 쩍쩍 달라붙는다. 다만 아쉬운것은 내가 좀 더 오래 살았거나 남도의 구수한 맛을 느껴봤다면 이 책을 '책'이라 하지 않고 맛난 음식이라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밭농사나 바닷가음식 이야기는 내게 낯선 것이지만, 구들장에 엎디어 고구마 쪄 먹고, 동네를 도는 아이스께끼 장수에게 얼음을 얻어 먹는 이야기들도 다 낯선 것들이지만 그에 따라 줄줄이 이어지는 어렴풋한 나의 어릴적 풍경은 충분히 재미있다. 그러다 머릿니만큼의 공통점이라도 나올라치면 괜히 좋아서 히히덕거리며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메주덩이에 붙어 미처 으깨어지지 못한 콩알을 손가락으로 띠어 먹는 재미나 추운 겨울에 김치쪽 손으로 집어먹으며 고구마를 먹던 것을 떠올리다보면 저절로 내 입에 침이 고여버린다. 아, 이렇게 얘기하니 또 살살 군침이 도는 것이....

그나저나 책을 한참 맛나게 읽다가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기에도 찬찬히 말뜻이 뭔가, 생각해보고 자그맣게 써놓은 풀이를 보며 읽어야 하는 이 책을 좀 더 어린 세대가 읽게 되면 어떤 느낌이 날까. 음식의 맛도 못느끼고 우리말글의 맛도 못느끼는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맘이 아리다.
내가 아장거리며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만해도 여름철이면 집 옥상에 올라가 돗자리펴고 누워 밤하늘을 이불삼아 잠들곤 했었다. 간혹 별똥별을 발견한 오빠가 '아이스크림' 소원을 빌어 그 덕에 나도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유난히 반짝이는 인공위성에 밤하늘의 멋이 사라져버렸다. 그 밤하늘의 정겨운 추억은 영영 과거의 일이 되어버릴 것인가? 아쉽다, 는 말로 지나쳐가기엔 마음이 너무 허하다.

그래서 그런가. 부모님이나 내 윗세대의 분들이 읽으면 정말 맛나게 읽힐 책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좀 더 어린 세대에서 읽으며 감칠맛을 느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이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가마솥 콩물 줄줄이 흘러 넘치던 겨울, 날이 선득선득 해지는 겨울, 쭈꾸미 철 지나기 전에 한번 모태본다고 하는 변산과는 달리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어떨까. 내 기억에야 겨우내 따뜻한 아랫목에서 손가락 끝이 노오랗게 물들어가도록 귤껍질 까먹으며 놀던 기억이 전부이긴 하지만.

이번 겨울엔 동무들에게 그런 얘길 해볼까?
"혼디모영 귤 까먹으멍 지꺼지게 놀아봅주" (함께 모여 귤 까 먹으면서 재밌게 놀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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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1-23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맛깔스러워요... ㅎㅎ 프란체님..

chika 2005-11-2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감사함다, 라 쓰고보니 ㅎㅎ (평소에도 프란체라고 불리우는지라 아무 의심없이 넘겼는데 여기선 제가 '치카'였군요! ^^;;;;)

2005-11-25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