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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 황경신의 프로방스 한뼘 여행
황경신 지음 / 지안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지금 당장,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여행기를 읽고 나서는 거즘 짐을 꾸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느라 어수선한 마음이 되곤 했는데, 이 책은 그렇지는 않네.
아마 길을 떠나고 돌아온 사람이 일상을 벗어난 일탈의 시간들에 대한 설레임으로 여행의 추억을 기록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생각만큼 사진은 많지 않았고 (그렇지만 사진들은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소한 풍경들, 딱 한뼘 만큼의 감상이 적혀있을 줄 알았던 이 책에는 내 예상을 훌쩍 넘겨버리는 사치스러움이 배어있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런데 이들과 같이 여행길을 따라가다 보니 버릴 것은 버리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여행은 누군가의 대신, 일 수 없기에 말이다.
나의 추억은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가. 이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불편하지도 않았고, 부럽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 내 여행의 꿈을 키우면 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일상의 지루함이라거나 외로움, 소유에 대한 욕망이라거나 두려움, 부정하고 싶은 과거라거나 멋대로 굴러갈 미래 같은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장소를 바꾼다고 해서 모든 문제들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프로방스는 나의 자유를 묶어놓고 있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켰다. 눈부신 태양은 사랑에 대한 갈증을 더욱 가중시키고,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강렬한 미스트랄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형체도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나다 벼랑 끝에 몰린 것이다"(246쪽)
황경신이라는 사람이 프로방스에서 느낀 이 감정이 나의 것이 될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는 공감할 수 있지 않은가. 장소를 바꾼다고 해서 모든 문제들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여행을 떠남은 일탈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와 쉼, 을 위해서이다. 나도 딱 그만큼의 평온과 나의 추억을 위해 언젠가 떠나게 될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얻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건초 더미 속에서의 짧은 휴식은 끝이 났지만, 살아 있는 동안 삶은 계속될 것이다"(248쪽)
참, 뱀다리. 이 책은 여행정보지가 아니기 때문에 여행지에 대한 친절한 안내는 없다. 대신 저자 나름대로의 숙소고르기나 레스토랑 고르기, 새로운 도시 탐험하기, 화장실 이용, 엽서 보내기, 공중전화 사용하기 등 소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에 대한 친절한 노하우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