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책 괜히 끌린다. 오늘 아침에 성당에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가 미사 시간 이십여분을 남겨두고 바람이 잦아드는 것 같아, 가만히 앉아있다가 후다닥 가방 챙겨들고 댕겨왔다. 언제나 그렇듯 오밤중에 바람이 한바탕 몰고 지나가면 아침에는 조금 잦아드는 기운이 있는데다가 이번 태풍은 조금 일찍 시작되어 육지로 올라가리라는 예상을 들은터라 어쩌면 아침 그 시간에는 바람이 잦아들어 걸어갈만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준비하고 있다가 튀어나갔다 온 것이다.
오분전까지만해도 갈까 말까의 망설임, 그러면 낮에 갈까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갈까, 저녁이 되면 또 귀차니즘때문에 미사시간을 놓치는거 아닌가..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밖으로 나가니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지만, 거리를 거닐만 했다. 다만 집 앞마당의 풍경과 하천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면서 몰려드는 두려움에 약간 주춤했을 뿐.


평소에는 마른천이었다가 비가 내리면 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천을 메우며 바다로 흘러가는데 태풍이 오면 이렇게 엄청나게 쏟아져내린다. 비가 많이 내리면 하루종일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몇년 전 태풍으로 복개천에 있던 차량 수십대가 물벼락을 맞기도 했고, 성당갈 때 건너는 이 하천다리의 아래쪽에 있는 다리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는 사망사고가 생기기도 했다. 이건 이렇게 물이 흐르도록 놔두지 못하고, 복개천을 만들면서 그 밑에 토적물이 쌓이다가 한번에 터지며 대형 사고가 나는. 그러니까 물빠짐이 좋은 우리동네에서 아무리 태풍이 몰아치고 장마가 져도 물난리가 난 적은 없었는데 난개발이 이뤄지고 복개천이 생겨나면서 자꾸만 물이 고여있게 되고 물난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작게는 집 앞 골목만 나서도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겨나 비가 많이 오는 날 물벼락은 피하기 힘들게 되어버렸고.
아, 정말 사는 게 뭔지.
그래서 다시 이 책을 집어들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생존을 읽다보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가뭄 기간의 장기화로 오래 된 나무가 최소한의 수분을 섭취하지 못해 말라 죽을 위험에 처할수도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땅에서 얻는 것이 많지만 그 땅을 함부로 다룬 결과 인간은 순간의 이익을 위해 살다가 더 큰 재앙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자연의 힘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태풍이 지나고 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보면, 그 사소한 것에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널부러져버린 해바라기와 토마토 줄기들.
비가 그치면 이것들을 세워봐야 하는데, 낮에 잠깐 햇살이 비추더니 이내또 바람이 거세어졌다. 아니, 무엇보다도 귀차니즘이 발동해 저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게 되어버려.
그래서 열심히 노동으로 땅을 일궈 뭔가를 수확하는 기쁨으로 배를 채울 생각은 하지 않고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아 과자 쪼가리를 씹어 먹으며 신간도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 동화 이야기의 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옛 동화 읽기가 정말 싫어졌는데, 그건 '잔혹'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만큼 끔찍한 느낌과 배신같은 것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여전히 힐끔거리며 눈길을 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예전의 그 파란 표지책을 잊을수가 없어서 왠지 다른 책 같지만 그래도 내용은 같은 것일테니.
ㅇ이잊이주중중ㅇ에 이중에 이미 갖고 있는 책도 있고, 이제 받을 책도 있는데, 그래도 없는 책이 압도적으로 많네.
눈에 확 띄게 이거야! 하는 책이 안보여. 지난 주에도 책을 구입하지 못하고 그냥 넘겼는데... 하아.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을 일단 정리하고 책 주문할꺼야, 라는 건 일주일을 하루처럼 금세 넘겨버리게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