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누군가 그냥 내게 뉴스를 읽어줬으면 좋겠다. 이 망할놈의 속터지는 관용방송소식말고 말 그대로 뉴스,를 말이다.
어머니때문에 어쩔 수 없이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가끔 입에 담지 못할 욕이 터져나오기도 한다. 저런 미친놈의 xx를 지나 더 심한 욕설이 방언 터지듯 터져나올정도면 나는 이미 참을만큼 참았다는 표현인 것이다. 아, 내 돈 내고 전기료 써가며 수신료까지 부담해서 저런 뉴스를 들여다보고 있다니 한심해 미쳐버릴 것처럼 속이 뒤집어 진다. 그래서 왠만하면 뉴스쇼를 잘 보지 않는다. 그런거 보지 않아도 세상돌아가는 건 마찬기지겠고, 오히려 안보는 것이 덜 스트레스 쌓일테니말이다.
그런데 시사인 404호의 시사에세이에 'kbs 수신료 인상 추진의 속내'가 실려있는 것을 보니, 몇날 며칠 수신료 운운하던 뉴스가 떠올라버렸다. '야, 이놈들아. 그냥 광고비 처받아서 프로그램 만들어라. 수준높은 다큐나 훌륭한 몇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광고비 없애고 수신료를 인상해야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잖아?'하고 있었는데 "kbs가 축소하겠다는 광고 2000억원은 어디로 흘러갈까'라는 글을 보니. 하아. 정말. 뉴스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방송이 공정성, 공익성을 말하며 수신료를 인상하고, 광고비 수익이 종편으로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꼴뚜기가 춤을 추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시사인과 주간경향에 실려있는 신간 소식
그러니까 말이야. 뉴스를 읽어 줄 때도 목소리가 중요한거야.
응? 이건 그런 말이 아니라고? 아이고 참나. 말 속에 숨어있는 메타포를 좀 즐겨보란말이야. 그러니까 알겠지?
졸립고, 찌뿌둥한 날씨에 온몸이 막 뒤틀리는 듯 좀이 쑤시면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어서 그냥 아무말이나 나오는대로 궁시렁거리고 있는 중이다. 이거 뭐야? 하면 안되는 이야기들인거,라는 말씀.
[왜 목소리가 중요한가]는 시장자본주의 이윤 논리가 계산할 수 없는 수많은 가치를 질식시켜 그것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게 한다고 말한다. 말할 수없는 것을 말하고, 그것들을 들리게 하는 과정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저항의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글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알만한 사람은 알아서 저항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거 아냐?
이사카 코타로의 신간이 나왔다! 이제 또 슬슬 번역이 시작되는 건가? 아니, 이제 슬슬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아무튼 지난번 산문을 읽은 이후 보는 소설! 그리고 여전히 마스다 미리. 그러고보면 일본 작가들은 정말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는 있는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출판 시장이 그만큼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온 듯 하니, 여전히 찌뿌둥하고 땀나고 옆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정신사납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 슬슬 딴 짓을 할 때가 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