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히기 단계=
135번 버스는 우리 집 앞에 선다. 그리고 그녀의 집이 있는 성산동이 종점이다. 어느 날 압구정동에서 거나하게 술을 먹고 길을 가는데 영양센터 통닭이 눈에 밟혔다. 집에 혼자 있을 형에게 사다 줘야지. 집에 가려고 서둘러 버스를 탔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내가 탔던 135번 버스는 한 바퀴를 돌아 성산동 종점에 서 있었다. 시간이 늦어 차도 끊겼고 통닭을 사 버린 탓에 차비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나 희열인데, 차비 좀 줘." 거리 쪽으로 창이 나 있는 2층 방이 그녀의 방이었다. 작은 돌멩이를 던지자 그녀의 창은 톡톡 소리를 냈고, 잠시 후 드르륵 와일드하게 창문이 열렸다. 그런 모습의 그녀는 처음이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굵은 테 안경을 끼고 머리는 뒤로 훌떡 깐 모습, 너무 예뻤다.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받아 보니 키세스 초콜릿 봉지였다. 초콜릿은 사랑의 표시라던데...... 벌렁거리는 심장을 자제시키며, 초콜릿 봉지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1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 들어 있었다. 나도 뭔가 주어야만 할 것 같아서 담을 딛고 올라섰다. 가까스로 창문으로 손을 뻗어 통닭을 전하며, 로미오와 줄리엣도 이렇게 했겠구나 생각했다.
뒷이야기.
나중에 들었는데 그때 그녀는 다이어트중이었다고 한다. 통닭을 방에 두고 소 닭 보듯이 바라보다가 무를 한 조각 먹었다. 그러자 갑자기 입맛이 돌면서 닭다리를 물어 뜯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희열이는 참 좋은 아이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당시 밴드를 하느라 긴 머리에 가죽잠바를 입고 다녔는데, 그날은 우연히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무테 안경을 쓴 얌전한 학생 스타일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그녀는 '희열이도 사람이구나' 했다고 한다.
더 뒷이야기.
그녀와 사귀기 전 나는 성산동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지나가면서 보았다면 '변두리구나' 할 만한 성산동의 풍경들. 작은 구멍가게, 허술한 호프집, 게다가 서울에 웬 기찻길..... 그런 풍경들이 그녀를 사귄 후 부터 모두 낭만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성산동만 좋은게 아니라 버스로 두 정거장 떨어진 모래내까지 좋아졌다. 성산동의 옆에 옆에 옆에 동네에만 가도 그녀 생각이 난다.
|
치카님 이건 유희열의 익숙한 그집앞에 나오는 얘기에요
헤헷 기분 좋아지는 글 없나 두리번 거리다가 이걸로 드립니다 ^^
보너스 컷으로 아주아주 푸른 숲 사진 -치카님을 생각하면 씩씩한 나무가 생각 나다 보니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