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고 있나요, 어쩌지도 못하고 있나요. 여름은 다 갔나요. 가을이 깃발처럼 펄럭이며 옷깃을 파고드나요. 소식은 가끔 듣나요. 듣고도 모른 척하나요. 좋은 사람을 만났나요. 누군가와 헤어졌나요. 미소를 지으며 자학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자만하는 습관은 여전한가요. 매일 아침 오만한 절망을 거울 앞에서 확인하나요. 숨기고 감추고 혼자 견디는 날들을 아직도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나요. 지우고 기록하고 또 지우는 일들을 지금도 반복하나요. 어떤 빛깔로 평안한가요. 어떤 리듬으로 비루한가요. 누군가 손에 쥐어준 기쁨의 알갱이들을 부스러뜨리며 슬픈 노래를 들을 때, 호수에 담긴 물고기처럼 행복한가요. 사랑하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일, 영원하지 않기 위해 소진하는 일, 일상을 허구로 만들고 모래 위에 성을 짓는 일, 당신과 썩 잘 어울리는 일, 그런 일들로 채워지는 단 하나의 인생, 속에서 길을 찾았나요. 아니면 당신의 지극한 소원대로, 완벽하게 길을 잃었나요. 그래서 어쩌지도 못하고 있나요. 그래서 어쩌고 있나요.


사소하게
사소한 무심함으로 울다가 사소한 다정함으로 웃는다. 사소하게 기대하다가 사소하게 실망하고 사소하게 위로를 구한다. 사소하게 숨기거나 사소하게 드러내거나 사소하게 자랑하다가 사소하게 후회한다. 사소한 인연이 사소한 기억으로 가까워져싿가 사소한 망각으로 멀어진다. 나의 삶이 온통 사소함으로 채워져 있으나 사소한 행복은 가볍지 않고 사소한 견딤이 쉽지는 않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의 절망이 사소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