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의 서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마태 5,17-18

 

나는 이천년 전 베들레헴의 더러운
말구윳간에서 태어났으나
지금도 그대의 비참한 슬픔을 위하여
가난한 시골집에서도 태어납니다
나는 사랑을 위해 그대 생애 속으로 들어왔으나
좀 더 큰 사랑을 위하여
그대 생애의순간 속에서
태어나고 괴롬받고 또 부활합니다
나는 사랑을 위하여 역사를 택했으나
다시 사랑을 위하여
당신의 생애를 택합니다
이것은 그대 절망의 찰라가 그지없이 길다는 뜻도 되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완성하기 위해서
당신 온 생애의 수없는 부활이 필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대의 역사는 지금 내 눈앞에서
반바퀴도 채 못돌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불변은 아닙니다
변치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
내가 불변이라고 해도 그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그대는 그대의 변함으로
나의 변치않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어느 여관방에서 애비없는 자식으로 태어나고
지금도 그대 오만의 죄 속에서
그대와 함께 죽어갑니다
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이 역사는 아니나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의 역사를 위해서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또 구제받아야 되는
어떤 찰나의 참상인 것입니다
그건 당신의 혁명을 위해서
그건 당신의 인간됨을 위해서
배반을 위해서, 부활을 위해서
마침내 그대와 내가 동시에 필요한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김정환, 황색예수전, 탄생의 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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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의 논리

예수님은 이승의 삶을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옹호해야 할,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이해하지 아니하시었습니다. 이승의 삶은 오로지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신 하느님에게서만 만나게 되는 충만한 성취 속에 질서지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그대로의 생명력의 활동은 한 은혜입니다. 즉, 이웃과 만나려고 자신의 밖으로 나가는 것, 남을 섬기는 것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위대한 현자처럼 말씀하실 수 있었는데, 곧
자기 목숨을 지키려는 사람은 잃을 것입니다 (요한 12,25 마태 10,39 ; 16,25)
라고 하시었습니다. 목숨에 매달리는 사람에게는 목숨이 끝장으로 내달으리라고. 예수님 자신이 섬기는 사람으로(마르 10,45), 특히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봉사자로 스스로 느끼고 계시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이란 더불어 삶(Mit-Leben)이요 실존이란 위하는 실존(Pro-Existenz)이었습니다. 남을 위하여 몸바치면서 어떤 인간 차별도 없이 꼴찌에게서부터 시작하는 그런 실존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삶에서 펼치어 나오는 절로 환한 귀결, 그것은 사랑과 포용과 용서와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밀알에서 삶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의 한 본보기를 보시었습니다. 밀알이 땅 속에서 죽지 않으면 혼자 그대로 있을 뿐, 아무 열매도 내지 아니합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내게 됩니다(요한 12,24). 여기서 죽음은 고스란히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따로 남겨두지 아니하고, 그러면서 남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다 하는 것입니다. 보기로는 약함을 드러내는 듯한 이 자세가 실상으로는 진정한 자기 실현을 체현합니다.

- 레오나르도 보프, 해방하는 복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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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적인 성향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요. 그래서 항상 스텔라님에게 보내는 글에는 이렇게 '신앙'에 대한 글이 들어가게 되네요.  처음 떠올렸던 것이 '탄생의 서'였답니다.

나는 사랑을 위하여 역사를 택했으나
다시 사랑을 위하여
당신의 생애를 택합니다

지금까지 꿋꿋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다시 사랑을 위하여 그분의 생애를 택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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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9-30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고맙습니다. 너무 귀한 글입니다. 저는 얼마전 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그런 일을 당했는데, 예수님의 생애만 생각하면 나는 정말 보잘 것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셨는데 나는 고작 자존심의 문제 가지고 씨름하고 있으니 한없이 작은 존재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이것 때문에 저는 예수님을 위해 산다는 건 불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ㅜ.ㅜ

chika 2005-10-01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어떤 일이 있으셨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