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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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찰에 대해 그리 썩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는 않다. 아무래도 일제시대의 형사 이미지가 그대로 경찰로 이어지면서 민중의 지팡이라기 보다는 민중을 패는 몽둥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탓도 클 것이다. 그렇게 무작정 싫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내게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갖게 한 것이 일본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읽으면서부터일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부정부패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어느 조직에나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있는 법. 나는 사건의 행간에 드러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게 하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들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경찰소설을 읽으려고 하면 잠시 뜸을 들이고 망설이게 된다. 괜히 그런 미적지근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어서인지 첫부분은 그리 흡입력있게 읽히지 않았다. 추리 수사극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역사와 연관되는 그런 미스터리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들의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 흐르는가에 더 큰 시선을 두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왠지 이 경찰 삼대의 결말이 무엇인지,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그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다 짐작이 가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경관의 피'는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있게 잘 읽혔다.

어쩌면 경관인 아버지의 모습을 자란 아들이 그 모습을 따르기 위해 경관이 되고, 또 그의 아들이 경관이 되는 모습에서 굳이 선대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밝혀 명예회복을 하고 가문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에게서 깊은 존경심을 느끼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경관의 피는 미스터리와 추리를 통해 사건해결을 하는 묘미를 느끼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기대했음에도 나는 이 책이 흥미롭게 기대 이상으로 따듯해서 좋았다.

 

“경관이 하는 일에 회색지대란 없다. 약간의 정의, 약간의 악행, 그런 일은 없어.”
“그런가요? 솔직히 저는 제가 명도 백 퍼센트의 결백한 흰색이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명도 영 퍼센트의 검은색도 아니지만요.”
“우리 경관은 경계에 있다. 흑과 백, 어느 쪽도 아닌 경계 위에 서 있어.”
“어느 쪽도 아니라니,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해. 우리가 하는 일을 시민이 지지하는 한, 우리는 그 경계 위에 서 있을 수 있어. 어리석은 짓을 하면 세상은 우리를 검은색 쪽으로 떠밀겠지.”
“모든 것은 세상의 지지에 따른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경관이다.”

 

약간 생각과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경관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이 대화를 읽으면서 나 스스로 경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경관2대인 안조 다미오의 이야기는 내가 오래전에 책을 통해 알고 있는 적군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나 역시 모든 것을 이데올로기라는 관점에서만 등장인물을 바라보려고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경관의 피]는 '경관'이라는 직업에 한정되어 그들의 불명예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이야기이지만 아버지의 모습이 어떻게 아들에게 이어지고, 스스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그리고 또한 '시민이 지지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경관의 혈통이 대를 이어간다는 것은 시대의 정의로움뿐만 아니라 가족으로서의 강한 유대감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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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8 16: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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