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줄 몰랐어
모르강 스포르테스 지음, 임호경 옮김 / 시드페이퍼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솔직히 책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죽을 줄 몰랐어, 라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이건 왠지 한 사람의 죽음이 개인의 문제일수만은 없다는 뜻을 넘어 그 당사자에게 죄를 묻지 말라는 뜻처럼 느껴져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실제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납치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저자는 치밀한 자료조사를 하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물론 그런 이야기가 없더라도 사건의 현상뿐 아니라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배경에 대해서까지 철저히 조사하고 글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만큼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이 모든 일들이, 소설을 읽고 있지만 원래 실화를 바탕으로 씌여진 것이라 생각하니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한다. 정말 사소하게 '돈'때문에 사람을 납치하는 걸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그러다가 '어쩌다' 사람을 죽이게 된건가?

 

아주 오래전이긴 하지만 파리에 여행을 갔을 때, 민박집을 찾아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온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집 위치를 알려주다가 결국 찾는 집까지 데려다주고 초인종을 눌러 주인에게 설명까지 해 주고 갈길을 떠났다. 나중에 들은 설명에 의하면 그 동네가 좀 외곽지역인데 아랍인과 동양인들이 좀 많은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똘레랑스로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그 지역에서는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고, 그 아저씨는 아랍사람인데 길을 헤매는 우리를 보고 동병상련을 느끼셨는지 집 앞까지 데리고 와 준 것 같다고.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빈부격차, 이주노동자, 인종차별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래, 감옥에까지 갔다온 야세프는 그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나타난 영세한 아랍계 이슬람 프랑스인 아닌가.

그런데 그러한 야세프가 쉽게 돈을 벌고 싶어하는 철없는 십대 젤다와 맘, 그 친구들을 이용하여 돈많은 부잣집 아들을 납치하고 몸값을 받아내 한번에 큰 돈을 손에 넣고 프랑스를 떠나려고 한다. 그리고 여러번의 시도끝에, 아이러니하게도 부잣집 아들이 아니라 평범한 집의 아들인 엘리를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물론 소설의 제목에서도 미리 짐작할 수 있듯 엘리는 허망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고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경찰에 잡히게 된다.

 

"자기 이익을 해치지 않는 타인에게 유연하고도 관대해야 한다. 이 법을 어기는 이는 야만인,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사회에 부적합한 사람이다.(토머스 홉스, 시민론)"

 

이 소설은 범인을 찾는 과정이나 사건의 전개가 핵심이 아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 여러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관련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왜 야세프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고, 왜 이런 범죄에 수많은 십대들이 심각한 죄의식없이 동조하게 되는지, 왜 엘리는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 그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이 소설의 의미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엘리가 사망한 후 검게 그을린 얼굴에 천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풋풋한 청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힘든 인생을 산 노인의 얼굴이었다. 평범한 어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평생이 걸려서야 가늠하게 되는 것, 즉 인간의 섬뜩함을 단 며칠 사이에 완전히 체험해버린 얼굴이었다. 엘리의 얼굴을 이렇게 변모시킨 것은 타인의 비열함이었다. 엘리는 악의 학교에서 3주를 보냈다. 그의 두 눈은 감겨있지만 감은 두 눈은 크게 부릅뜬 눈보다 우리를 더 잘 보고 있으리라"(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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