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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에 베이다 -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
이로 지음, 박진영 사진 / 이봄 / 2014년 5월
평점 :
아, 미치겠다. 머리속으로는 책등에 베이다,를 생각하면서 글로는 자꾸만 '칼등'에 베이다 라고 쓰고 있다. 글을 쓸 때마다 그러고 있으니 생각없이 나오는 습관이려니 하다가 문득 '칼등에 베이는' 느낌이 뭘까 생각해보게 된다.
가끔 책장이나 책표지의 날카로움에 손가락을 베일때가 있다. 종이에 베인 상처는 짧고 강렬한 통증을 느끼게 한다. 그러고는 그냥 잊게 된다. 그런데 책등에 베인다,라거나 칼등에 베인다, 라는 것을 떠올리면 왠지 뭉툭하게 와서 박히는 묵직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책등에 베여본 적이 있던가?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일수도 있고 오래전에 책 안에 갇혀있는 먹글로만 봤던 이야기들이 나의 생활 이야기로 느껴지는 그런 순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책등에 베이다,라는 것은.
나는 가끔 멍때리며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때가 있다. 읽은 책과 읽지 못한 책을 구분해내고, 책등을 보면서 저 책의 표지가 어떤 것이었더라 떠올려보다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땐 책을 끄집어내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내용이 가물거리는 책을 꺼내어 다시 훑어보기도 하고, 읽고 싶다는 생각은 가득하지만 시간에 쫓기거나 생각보다 글이 쉽게 읽히지 않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의 책등을 보면서 독서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가끔은 책등을 쳐다보고 있다가 책의 표지까지 살펴보고 그러다가 결국은 책을 펼쳐들기도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책등'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해 파생되는 생각들의 파편을 끌어모아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정말 '책등에 베이다'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 책은 다 읽었는데, 내가 읽은 내용에 대해 그러니까 이 책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니 무엇을 떠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한데 정확히 책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이야기를 꺼내들게 된 책등의 사진들은 한가득인데 그래서 그 책이 어떻다고? 라는 말은 할수가없다. 책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생각과 느낌의 줄기는 지극히 주관적인것에서 시작하고 있다. 우리에게,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절대적인 공감을 할 수 있는 문장들의 인용도 없고, 확연하게 드러나는 감동이나 심지어 독특함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자꾸 이 책을 들춰보게 되는거지?
"다시 읽는다. "혀가 수초처럼 흔들렸다. 이빨은 이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떤 문장이 마음에 걸리면 반복해서 읽는다. "이빨은 이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이빨을 발음해내는 나의 입과 이빨. 특정한 구절을 여러 차례 읽는 행동은 작가의 호흡을 베끼는 일이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같은 문장을 포갠다. 글이 아주 잠시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글이 되어 귀로 들어온다. 세심한 단어 하나 하나 쌓아 만든 이야기의 집에 들어가 무엇이 되었든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떠올려본다"(46)
이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김중혁 작가의 표현대로 '이로의 미로 같은 책'에 빠져들고 싶다면,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의 느낌을 공유해보고 싶다면, 물론 그저 아무런 이유없이 이 책에 눈길이 갈뿐이다 하더라도 책을 읽어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웅의 뒷면. 멋진 사랑의 뒷면. 환상의 뒷면. 아름다움의 뒷면. 자수의 뒷면. 예쁜 표지의 뒷면. 나는 모든 것의 뒷면에 산다. 뒤엉킨 뒷면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실수가 반복되는 생활과 드라마답지 않아서 삶다운 삶에 대해 밤을 새워 이야기하고 싶다."(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