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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요 - 아들이 써내려간 1800일의 이별 노트
다비트 지베킹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솔직히 이런 류의 에세이는 읽고 싶지 않았다. 감성적일것만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 그런데 왠지 그 내용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저자와 저자의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그가 어떻게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 어머니의 죽음이 두려워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요즘들어 자꾸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면서 내가 없으면...으로 시작하여 생활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늘어놓으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귀기울이기보다는 오히려 어깃장을 부리며 들은척도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은 그 모든 것을 부인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이 아니라 분명 언젠가는 내게 닥쳐 올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준비해야겠다는 의무감처럼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이 책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괜히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다큐 3일을 바라보듯 어머니의 삶과 일상이 펼쳐지면서 병의 진행과정과 생활의 변화가 담겨있는 글을 읽고 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게 되어버렸다. 아마도 약간의 치매 증상을 보이다 병원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서일수도 있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아버지 손을 놨는데 그 사이에 아버지가 가셨다면서 서럽게 울던 언니에게 조금이라도 맘 아프지 않게 가고 싶어서 그때 가셨을거라는 위로를 건네지 못해서일수도 있고, 머잖아 내가 없으면 국 끓일때는 어찌해야하고 저 안쪽 장농에는 뭐가 담겨있고..라는 말씀을 잔소리처럼 늘어놓는 어머니가 정말 머잖아 돌아가실 것만 같은 슬픔이 치올라와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이제 정말 오랜 시간이 남지 않은 우리의 인생에서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의 소중함이라는 것이다.
치매 증상을 보이며 아들에게 '너는 누구니?'라고 묻는 어머니의 모습을 무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게 그저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표현하는 듯 보이는 글에 오히려 더 위안이 되고 가족의 추억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적이고 똑똑하던 어머니가 점차 자신의 기억을 잃어가면서 일상생활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온갖 메모를 적어놓고 상태가 좋아졌다가 나빠졌다를 반복하는데 그 모든 과정을 가족들은 함께 이겨내려고 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도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해 연명치료와 수술에 대한 결정을 가족이 심사숙고하는 모습은 진정으로 '살아있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기억의 가치가 전혀 달라져. 젊은 시절엔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 언젠가 그 생각의 방향이 정반대로 향하게 되고, 뒤를 돌아보게 되는거지. 사람이라면 꼭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인생은 정말 무익해지는거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년에야 비로소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이가 많은거지.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어. 그렇게 무無로 사라지지만, 그들은 기억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거야"(142)
얼마전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 초등학생때 뇌종양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살아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 야속하게도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기고 다시 재발한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모든 물리적인 치료를 중단하고 약물투여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의료조치도 다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었을 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손을 잡고 기도를 하며 마음을 전하고 있을 때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떠 주었다. 그 눈망울이 얼마나 맑던지. 몇년 전 차마 항암치료 때문에 병색이 완연한 환자의 모습으로 대하는 것이 두려워 친구와의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던 기억에 그 모습은 더 기억에 남는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경험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타인의 죽음에 직면하는 슬픔과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강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그것은 공감하면서 위로하고 더 큰 위로를 받는 마음의 평온을 선물받는 것과 같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아들의 기나긴 시간에 대한 기록은 그래서 좋을수밖에 없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자꾸만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하실때마다 불안감에 휩싸여 밤잠을 설치고 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시간동안 더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어 다행임을 위안삼는다.
"기억이란 인간에게서 몰아낼 수 없는 유일한 낙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