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읽고 내용과 의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문득, 이건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인데 웃음기가 완전히 빠진 글이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거운 주제도 가볍게 다룰 줄 알고, 사회의 온갖 모순되고 엇나가는 세태를 실실거리며 비웃는 것으로 그 문제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가로 기억하고 있을 뿐인데 [침묵의 거리에서]는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웃음폭탄인 비아냥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작가의 현사회의 세태 풍자에 대한 칼날이 무뎌진 것도 아니다. 한 소년의 죽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감춰진 모습들, 각자의 입장에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어서 이 책은 술술 읽히면서도 순간순간 멈칫하게 하는 깊이가 있다.

 

학생이 아직 집으로 귀가하지 않았다는 학부모의 전화를 받고 교사 이지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교 순찰을 시작한다. 그리고 교정의 은행나무 옆을 지나칠 때 그 밑 도랑에 쓰러져있는 학생을 발견하게 된다. 학생 나구라 유이치는 이미 피를 흘리며 싸늘하게 죽어있었고 그의 죽음은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나구라 유이치는 자살을 한 것일까, 단순한 사고일까,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일까. 온갖 예측이 가능한데 특히 나구라 유이치의 부검을 하다가 발견된 등의 상처때문에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라고만 생각을 해서 조금은 단순한 사건과 이야기구성을 떠올렸었는데 이건 뜻밖에도 좀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학교 교사와 학생들, 유가족과 가해학생들의 부모들, 언론과 경찰, 변호사, 검사의 입장뿐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친척의 모습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의 표현에서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있다. 더구나 드러난 사실과 나구라 유이치의 죽음 이전에 있었던 학교생활의 모습이 교차되어 전개되면서 예상치못한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드러나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 무겁고 쉽게 풀어나가기 힘든 이야기들을 막힘없이 읽어나갈 수 있게 쓴 것은 분명 작가의 필력일것이다. [침묵의 거리에서]는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가볍고 통통 튀는 명랑한 웃음은 없지만 이야기를 끌어나가면서 가벼운듯 하지만 무거운 본질을 생각해보게 하는 깊이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나구라 유이치의 죽음은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져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흠칫하고 놀라게 된다. 침묵의 거리에서, 이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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