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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어둠이 찾아왔어
레모니 스니켓 글, 존 클라센 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오랫만에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공연 시간에 딱 맞춰서 급히 들어가는 것보다 조금 일찍 자리에 앉아 관람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미리 서둘러 갔습니다. 5분 후 공연이 시작된다는 알림에 들여다보고 있던 휴대폰도 무음으로 해 놓고 가방도 얌전히 무릎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극장안은 온통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자그맣게 소곤거리던 사람들도 일시에 침묵을 하고 그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온통 새까만 어둠에 놓여있었던 것은 정말 오랫만입니다. 조명이 꺼지고도 한참후에 연극이 시작되었는데 그 사이에 나는 어둠속에서 어둠과 친근하게 앉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날, 어둠이 찾아 왔었기 때문입니다.
라즐로는 어둠이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라즐로의 커다란 집에 어둠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지붕은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창문은 매끌매끌 차갑고 오르락내리락 계단이 많은 커다란 집에 어둠은 옷장에 숨어있기도 하고 샤워 커튼 뒤에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어둠은 지하실에서 지냈고 밤이 되면 밖으로 나왔지요. 라즐로네 집 창문과 문을 향해 쭉쭉 몸을 뻗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지하실로 돌아갔습니다. 라즐로는 어둠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하고 싶었지요. 어둠을 먼저 찾아간다면 라즐로의 방에는 찾아오지 않을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라즐로" 어둠속에서 어둠이 불렀습니다.
자, 이제 라즐로에게는 무슨 일이 생길까요?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의 저쪽 구석에서 들리는 냉장고의 드르륵 덜컥 거리는 소리, 창문이 덜컹덜컹 흔들리는 소리, 저 멀리서 문이 삐걱대며 열리는 듯한 소리에 두려워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녁이면 불이 꺼져있는 저 어둠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가 않아 자그마한 소리가 천둥처럼 커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웅크리고 있을 것만 같아 무서워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그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어둠 그 자체를 친구로 만들고 어둠의 도움을 받아 미지의 세계에 속하는 어둠을 이겨내는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은 새까만 어둠일수도 있지만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을지 모르는 무한한 미래의 세계가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날, 내게 찾아 온 어둠은 내 친구가 맞는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