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탁에는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앞쪽 식탁의 백인 여자가 다가오더니 실례한다고 말하며 자기의 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자기 아들은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인데, 자기 부부는 아이가 출신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한국 식당에 온다는 것이었다. 먼저 음식 맛을 알아야만 다른 전통문화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자기들이 젓가락질을 가르쳐도 아이가 잘 하지 못하니 아무래도 자기들의 젓가락질 방법이 좋지 않은 것 같아 나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때 나는 열과 성을 다하여 그 부부와 까아만 눈동자의 황인종 아이 앞에서 진지하게 젓가락질 시범 공연을 해보였다. 아이의 젓가락질이 이제는 능숙해졌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 깊이 남은 것은 나의 시범을 본 다음 그 백인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나의 젓가락질을 자세히 본 다음 그 어머니는 아이가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라고 "젓가락은 두개로 이루어져 있지? 그러니까 음식을 집어먹기 위해서는 꼭 두개의 젓가락이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알았지?"라고 요약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무언가를 배운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던 것 같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더불어, 사랑이라는 것의 성실성에 대해 오히려 내가 그들로부터 배웠다.
그녀의 말처럼 젓가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두 개가 한 쌍이고, 그것이 평형을 이루어야 우리가 음식을 집어서 입 안으로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또 두 개가 평형을 이루지 않으면 입 속으로는 아무것도 넣을 수가 없다. 인생이란 것도 젓가락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일찌기 불가에서 말한 것처럼 생은 시와 더불어 이루어져 있고 희망은 절망과 더불어서, 기쁨은 슬픔과 더불어서, 성공은 실패와 더불어서, 늙음은 젊음과 더불어서 있는 것이다. 크게본다면 그 둘이 크게 다를 것도 없고, 또 싫다고 해서 둘 중하나를 쫓아버릴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젓가락질을 할 때처럼 그 둘 사이의 심리적 평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집고 싶어하는 행복이라는 양식을 집어 마음의 속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말이 생각나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해도 아무도 당신을 낙오자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김승희, 젓가락과 사랑 중에서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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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04-10-2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ika님, 내가 이 글을 읽어 용기를 얻었어요. 감사해요.

chika 2004-10-2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애써 글 올린 보람이 있네요. 같이 힘내자구요. 홧팅~!! ^^

숨은아이 2004-10-2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