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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거칠게 깎은 돌로 이루어진 수도원에 들이비치는 빛에는 일종의 장엄함과 웅장함으로 정신을 정화하고 승화하는 신비로운 힘이 존재했다. 나는 몸을 바짝 죄는 듯한 긴장감에 사로잡힌 채 홀로 수도원 내부를 걸어다니며, 금욕적인 석조방에 너무나 크게 울리는 내 발소리에 놀랐다. 이 공간에서는 정신만이 중요할 뿐 육체의 쾌락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업는 곳에 들이비치는 빛의 엄격한 아름다움, 돌뿐인 방에 울려 퍼지는 소리의 장엄함. 모든 것을 버린 끝에 남은 것들은 한층 심원해지며 본질과 원리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본질과 원리는 신의 영역이라 바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한 건축을 만들기 시작한 배경에는 세낭크에서의 체험이 바탕에 분명 깔려 있다."(264) 

안도 다다오가 프랑스의 세낭크 시토 수도원에 갔을 때의 느낌과 그 느낌이 자신의 건축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안도 다다오의 도시 방황이라는 책을 받아들면서 왜 요즘 다들 안도 다다오에 미쳐있는 것처럼 그의 자서전에서부터 건축에 이르기까지 온갖 책이 다 나오는걸까,라는 심정으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자서전을 읽은 기억에 더 이상 글로 그를 만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다만 직접 그의 작품들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때문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의 노출 콘크리트 작품이 자연의 숲과 나무들과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야트막한 돌담과 앙증맞다 싶은 밭두렁들이 오밀조밀 어우러지는 것과는 달리 시멘트 덩이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게 디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건 어쩌면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본적없이 콘크리트의 회색덩어리만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나는 안도 다다오에 관한 온갖 종류의 책이 아니라 실제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이 더 급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펼쳐들고 심드렁하게 읽어내려가다가 책 제목을 다시 쳐다봤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 방황'. 이건 그의 자서전도 아니고, 그에 대한 평전도 아니고 그의 건축작품에 대한 해설도 아니라는 걸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건물이 완성되고 주변의 풍경에 녹아들고 일상에 뒤덮이면서 공사 중 건축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날선 생명력은 안으로 가라앉고 언젠가는 보이지 않게 되리라. 그렇기에 완성 과정에 놓인 이러한 상태야말로 건축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인간도 똑같으리라. 인간이 삶과 죽음이라는 결과로 향하는 과정에 놓인 존재라면, 인간의 생이 지닌 아름다움 역시 그 과정 속에 있기 마련이다. 인간도 건축과 마찬가지로 미지의 가능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을 터. 그렇기에 나는 공사중인 건축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130-131)  

그는 건축이라는 것을 하나의 건물을 완성해 내는 결과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행생활자들은 '삶은 곧 여행'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안도 다다오는 세계의 곳곳을 다니며 건축에 대한 영감을 얻고 그를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을 하고 그 결과물로 작품을 탄생시킨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목적지에 이르기 전, 그 시간 동안 존재하며 그 과정 속에서 당황하고 방황하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여행의 행로는 미로처럼 엉켜 복잡할수록 얻을 것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생에 적용해도 어긋남이 없으리라. 명쾌함만을 추구한 나머지 근대 도시가 베네치아 같은 미로를 버리고, 사회 또한 복잡함과 애매함을 배제하면서, 현재 우리 인간의 생에서도 심원한 방황이 상실되고 말았다. 대체 인간의 문화와 정신이 깃드는 순간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수로가 흐르는 베네치아의 골목을 헤매며, 문득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243) 

인간의 문화와 정신이 깃드는 순간은 정말 어디로 가버린 걸까? 엊그제 우리 사찰 건축의 자연과의 조화로운 어울림과 아름다움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조금씩 사라져가버리고 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있는데,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건물들이 진정 우리 삶의 편이성을 가져오는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쓸데없는 뱀다리를 하나 덧붙이자면 건축이야기를 담은 책이니만큼 책의 디자인에도 꽤 신경을 쓴 느낌은 든다. 폼도 나고 깔끔하기도 하고 멋지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형광등빛에 반사되는 회색빛 글씨를 읽기 위해 책을 이리저리 각도조절하면서 애써 읽어야 하는 것은 그리 익숙하지 않은 책읽기를 연출해냈다. 디자인만 멋진 건축이 실용성이 없다면 무엇에 쓰겠는가 싶은 마음에 비유되니 어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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