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 오주석 / 솔

 

어느 수업에선가 <세한도>에 결정적인 잘못이 있다고 주장한 학생이 있었다. 즉 작품속의 집은 그 오른편이 보이는데 둥근 창문을 통해 본 벽의 두께가 어째서 왼편에서 바라본 모양으로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은 그것뿐이 아니다. 첫째, 창문이 보이는 면은 직사각형 벽에 이등변삼각형 지붕이다. 이건 앞에서 본 것이지 애초 비껴본 모습이 아니다. 둘째, 지붕은 뒤로 갈수록 줄어들어 원근법을 쓴 듯한데 아랫벽은 오히려 뒤로 갈수록 조금씩 높아져 역원근법에 가깝다. 셋째, 지붕의 오른편 사선도 앞쪽에 비해 뒤쪽이 훨씬 가파르니 역시 오류가 아닌가?

김정희는 일찍이 중국으로 건너가 25세되던 해 정월에 그곳 학계를 일끌던 78세의 노대가 옹방강을 만났다. 첫대면에서 옹방강은 "조선에 이러한 영재가 있었던가"하고 탄복하면서 "경전, 학술, 문장이 조선의 으뜸"이라는 자필 글씨를 즉석에서 써주었다. 이렇게 한 시대를 울렸던 천재가 집 한 채를 제대로 못 그릴 리가 있겠는가?

추사는 <세한도>에 집을 그리지 않았다. 그 집으로 상징되는 자기 자신을 그렸던 것이다. 그래서 창이 보이는 전면은 반듯하고, 역원근으로 넓어지는 벽은 듬직하며, 가파른 지붕선은 기개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림이 지나치게 사실적이 되면 집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옛 그림을 눈으로만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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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5-04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죠? 우리 옛 그림이 전 외국의 서양화보다 좋더군요. 즐독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