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보다 여행 - 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
왕영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여행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모험과 자유의 본능을 깨우는 열쇠는 될 수 있습니다. 자유를 향해 나아가세요. 내 운명의 주인은 나 자신이고 내가 선장입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168)

사회인이 되어 처음 직장생활을 하면서 행운처럼 외국여행의 기회가 생겼었다.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면, 처음으로 유럽이 아닌 아시아지역에서 가톨릭청년들의 행사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또한 직장인이 아니었다면 경비때문이라도 선뜻 참가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연찮게 나의 첫 해외여행은 시작되었다. 물론 수십만명이 모여들어 우리는 행사장에도 못들어가고 커다란 공원같은 곳에서 하룻밤 노숙을 하며 화면으로조차 대회장을 보지도 못하는 처지에 있었지만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낯선 광경들은 내게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보다 더한 설레임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일주일정도의 짧은 기간을 필리핀에서 보내고 온 후, 또 기적처럼 1년이 안되어 자유여행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당시에는 몰랐지만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것도 아니었고,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항공권만 끊고 훌쩍 떠나는 자유여행은 특히나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설레임에 나는 여지없이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관련 책을 구입해서 줄을 그어가며 읽기 시작했고, 문화를 좀 더 알기 위해 관련 책들을 마구 읽어대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지역의 문화를 좀 더 많이 알기 위해 책을 읽는 버릇은 그 첫 여행에서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한밤중에 로마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헤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말도 못하면서 무작정 떠난 우리의 수첩에 적혀있는 호텔은 이미 빈방이 없었고, 성수기가 시작되어 유일하게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한국인 가이드의 연락처에는 부재중 메시지만 남겨있을뿐이었고, 주변의 호텔이란 호텔은 모두 다 돌아다녀봤지만 밤 열시가 넘어 거리에 사람의 자취도 사라져가고 있을때까지 우리는 숙소를 찾지 못하고 헤매기만 했었다. 그러다가 빈방이 있다는 곳에서 나와 한명은 더 참지를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버렸고, 다른 두명은 방 상태를 보고 결정하자고 주인을 따라 올라갔다. 우리가 좀 더 여유롭게 보였다면 방 가격을 좀 낮출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그저 숙소를 구했다는 기쁨에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다른 이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어렵게 들고 간 컵라면까지 끓여먹고, 설레임 가득한 마음으로 여행의 첫걸음을 내딛었던 기억은 지금 웃으며 얘기하는 추억이 되었다.

집보다 여행,이라는 책을 읽다보니 오래전 여행에서의 추억이 스멀거리며 올라오고 또다시 그때의 그 설레임이 마구 느껴지기 시작한다. 처음 이 책을 집어들어 읽으려고 했을 때 '집보다 여행'이라는 말에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라는 기대감이 넘쳤다. 다른 여행에세이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단편소설의 묶음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떠난 곳에서, 여행에서 돌아와서... 여행에 대해 느끼고 한번쯤 여행에 대한 꿈을 꾸며 상상을 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이 소설속에 담겨있으니 그리 새로울 것도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씩 더 읽어나가면서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이 뭔가 다른 듯 같은 공감이 느껴지니 슬그머니 책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설 형식의 글이 지나가고 이제 본격적으로 저자의 여행에 대한 에세이가 펼쳐지니 '집보다 여행'이라는 책이 담고 있는 '여행의 가치와 의미'라는 뜻이 무엇인가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세이가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상념이라면 이 책은 여행을 통해 바뀌게 되는 자신의 삶의 모습과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 혼자 여행을 떠날만큼 용기있는 자가 아니라는 자괴감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단지 말이 안통해서 라는 핑계를 댔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익숙한 고향땅을 떠나 서울의 한복판에서 어딘가를 찾아갈때조차 괜한 스트레스에 돌아다니는 걸 피했고 그것은 말을 못해서 낯선 길을 떠나기 어려워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길찾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달리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낯선길을 무서워하는걸까.
여행은 모험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완벽하게 계획을 한다하더라도 어딘가에서 어긋날수도 있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도 했다. 그런데 모험을 두려워하는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진짜 여행을 떠나보지는 못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마음이 달라진다. 몇년 전 조카를 데리고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을 떠나기는 했지만 자유일정이 있는 하루동안 그 누구의 안내 없이 나 스스로 길찾기를 하고, 조카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말도 안되는 영어를 쓰면서 대화를 시도하고 아무 탈 없이 하루를 신나게 보내고 돌아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집보다 여행'은 스스로의 자괴감에 빠져있는 나를 끄집어내고, 여행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해 주었다. 저자가 느끼고 깨달은 것은, 어쩌면 여행을 떠나 본 누구나 다 이미 알고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나가 다 그처럼 실천으로 옮기며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집보다 여행은 한 권의 책을 통해 그 모든것을 다 생각하고 스스로의 깨우침의 시간을 갖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것일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