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해왔던 교리교사를 때려치울때, 맘이 좀 씁쓸하긴 했지만 반년동안 주일에 미사 한시간만 하고 집으로 돌아와 퍼지게 자거나 어머니와 함께 미사참례하고 집으로 돌아와 쉬는 기분도 꽤 좋았기에 이제는 그 옛날에 어떻게 그리 오랜 시간을 교리교사하며 살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임신부님께 뱉어놓은 말도 있고, 중등부교리쌤이 애들이 많아 혼자 하기 힘드시다고 해서 이번학기부터 보조교사로 도와주기로 했다. 대표교사에게도 미리 말을 해 놨는데 개학이 되어가는 시점에도 아무런 얘기가 없어 - 성당에서 2주전부터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 오늘 주일학교 개학이라고 해서 그냥 나갔다. 사실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잠정적으로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가 라는 판단을 하고 가지 말까..싶기도 했지만 그래봐야 욕들어 내쳐질 것은 나일뿐이니 그냥 나갔다. 

내가 먼저 얘기하기 전에 대표교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아무튼 오늘 참 할말이 많았는데.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교사회합도 끝나고 꼬박 반나절이 다 지나가버렸고 그냥 돌아오려는데 마침 보좌신부가 들어온다. 평소 인사성없는 나와 또 마찬가지로 인사성 없는 보좌신부는 인사를 할리가 없고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없는 사람처럼 쌩무시다. 교사회합이 막 끝나고 그 자리에 못보던 사람이 있으면 대부분 누군지라도 물어볼텐데. 거기에다 대표교사도 보좌신부와 농담이나 하고있다. 

내가 뒤쪽에서 손짓으로 나를 보좌신부에게 인사시키라고 세번이나 눈치를 줘야 말을 꺼낸다. 그건 우리 두린 대표교사의 성격이려니..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대뜸 보좌 신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좀 기분이 나쁘더라. 아니, 교리교사를 하기 전에 실무자와 면담을 하는건 어쩌면 당연한거다. 하지만 '실무자'라고 한다면 그건 교사이지 보좌신부는 아니지. 

면담을 하고, 내부적으로 교사들이 회의를 하고. 그런것은 다 이해를 하겠다. 아무나 교리교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내가 오랜 경력이 있는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질논의를 하겠다 라는 표현을 '아무나'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표현했다는 것에 내 기분이 화악 상했다는거다.  

어쩌면 그 이전에 '아무때나 나가고 싶다고 나가고 아무때나 들어오고 싶다고 들어오고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그런게 아니다'라는 표현을 해서 더 기분이 나빴는지도 모르겠어. 그냥 통상적으로 교사를 받아들이기 전에 면담을 하고 교사회에서 내부논의를 하여 교사의 자질을 이야기하거나 교사회의 화합을 깨뜨리지 않을 사람인지 얘기한다는 느낌이었다면 그리 기분나쁘지는 않았을것이다.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개인사정으로 교사를 못한다고 얘기를 했고 행사계획과 예산안까지 다 올려놓고 대표교사선출까지 다 끝내고 교사를 관둔건데. 아무때나 나가고 싶다고 나간 교사가 되어있다는 것이 불쾌해진것이다. 수도자나 사제는 자기 맘에 안드는 평신도를 쉽게 짜르면서, 평신도는 맘에 안드는 수도자나 사제와 일하기 싫다고 하는게 잘못이냐,라는 일차적인 생각을 넘어서 주일학교 교사회의 의견과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면서 자기 뜻대로 하는 보좌신부가 '아무나' 운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변함없이 지난주에 만난 아이들처럼 그냥 웃으며 인사를 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인상쓰며 툴툴거리고 학교성적 얘기하고... 그렇게 똑같은데 상관없는 사람들이 막 걸고 넘어뜨리고 있다. 이미 사명감 같은 건 헌신짝처럼 내던진지 오랬으니 굳이 할 필요 없어,라고 생각하니 맘이 편하기는 하지만. 

다음 주 면담을 하자고 했으니 무슨 말을 꺼낼지 기대가 된다. 주임신부님께 약속한 일이기 때문에 온 것이기도 하고, 중등부쌤이 도와달라고 개인적으로 요청하기도 했으니 왔을 뿐 굳이 내가 교사회에 들어가는 것이 탐탁치않다면 기꺼이 관둬줄 수 있다고 시니컬하게 얘기해주고 싶지만 보좌신부 성격을 보아하니 내가 그런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짜를듯한 분위기다. 별로 알고 지내고 싶지도 않아. 보좌신부에게 나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면 나는 그보다 더한 선입견이 있으니 말이다. 빈첸시오회보다 경제인회를 더 좋아하고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으며 본인은 기억못하겠지만 우리 사무실에 와서 대뜸 돈도 없냐면서 비품구입 좀 하고 낡아빠진 사무실 좀 뜯어고치라는 말을 내뱉았을 때 뭐 저런게...라는 생각을 했었어. 댁은 돈이 많고 부족함이 없어서 쉽게 다 바꿔버리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돈이 없어서, 새것이 좋은 걸 몰라서 그냥 참고 사는게 아니거든. 아, 구질구질하게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걸까. 

자질을 논할 자격이 없는 자가 자질 운운하는 것이 정말 심각하게 기분나빴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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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년엔.. 잊을 수 있는가
    from 놀이터 2010-09-05 23:56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기억이 있는것과 비례하여 세월의 흐름에 더욱 또렷해지는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에둘러 얘기하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 너무 예상대로 흘러가서 오히려 우스워진, 교리교사 건은 무산됐다. 짧게 줄여서 한마디로 하자면 '교리교사는 필요없다'의 뜻인데 그 뿌듯해하는 신부의 얼굴이란.  오늘 오전의 기분으로는 앞으로 더이상 교리교사를 하면 안되겠구나 였다. 이 더러운 기분으로,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