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본당의 날이라고 해서 성당에서 빈첸시오회 30주년을 맞아 바자회를 했다. 본당의 날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가난한 이웃을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빈첸시오회를 기념하여 바자회를 하고 수익금을 생명장학금으로 모금한다는 의미가 참 좋았어. 꼬불쳐 뒀던 책을 몇 권 내어놓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곳에선 그리 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아 (사실 무거운 책을 조금씩 나눠 성당에 들고가서 뒀었는데, 누군가가 짐짝처럼 팽개쳐두고 책도 마구 헤쳐놔버린 장면을 본 후로 쌓아뒀던 책을 다시 들고 가고 싶은 맘이 싹 사라져버린 탓이야) 그냥 뒀는데 어제 가보니 잘한것같기도 해. 아무튼. 

선거를 앞두고 성당에서 바자회를 하든 뭘 하든 사람들이 떼로 모여드는데 이 좋은 기회를 그들이 놓칠수는 없지. 성당 신자인 후보자들뿐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각자 누군가를 대동하고 모여들었어. 은근히 사람들이 다가오면 모른 척, 혹은 (특히 돈지랄해주신 후보의 부인이라는)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을때 다가오기전에 휙 돌아서서 다른 길로 가버리곤 했는데 어머니와 말을 하다보니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미처 못봤던거야. 

그 아줌마가 잘 부탁한다며 악수하자고 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는 표시로 고개를 숙이며 네,하고 말았지. 근데 마스크로 얼굴을 반은 가린 그 아줌마가 계속 자기랑 악수를 강요하는거야. 아마 나는 악수하기 싫다는 말까지 하고야 말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결국은 그 아줌마랑 악수를 한 기억도 남아있어. 그게 떠오르니 자꾸만 화가나는 거야. 

근데 더 화가 나는건, 돌아서서 에이씨,하고 있는데 그 아줌마 뒤에 있던 다른 분이 바로 내 앞으로 다가오는거야.  

아, 내가 잘 아는 우리 성당 아줌마였던..거지. 주일학교 교사하면서 내가 가르쳤던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이기도 했고. 그분과 인사를 나누고, 그분이 가시자.. 더 화가 나기 시작했어. 

이 좁은 땅에서 좋은게 좋은거라고 하지 못하는 내가 나이값을 못하는것이 화가나고, 당신따위는 지지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화가 나지만 후보자들 뒤에는 온통 아는 사람들 천지인거야. 예전엔 성당에 가도 내가 그 성당 신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걸까.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 이럴때 절실히 깨닫게 되고 있다는 것도 화가나고. 내가 진보주의자는 못될지언정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있소,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다들 그렇게 알아주질 못할만큼 애매한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화가나고. 이래저래 화만나는거야. TV에 나오는 꼬맹이처럼 그저 네네네~ 하고 웃어 넘겨버리면 되는 걸 꽁하게 붙잡고 있는 내가 더 화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네. 

어쨋거나 내가 사는 곳에서는 온통 족벌체제로 선거싸움을 하고 있을뿐이야. 사돈의 팔촌에, 제자의 누이 며느리에, 성당 레지오 단원에 이르기까지.
근데 우리성당에는 같은 선거구에 각기 다른 후보가 두명씩 무더기로 나왔더라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성당을 그래 다니는데도 왜 정치가 이모양일까,라는 자성보다 저들은 선거후에도 정치적 견해가 다른것과 상관없이 성당에서 화합을 하겠지,라는 자찬이 먼저인걸보니 나도 썩어빠져가고 있나봐. 앗, 아니...벌써 썩어문드러져..................................... 

 

바자회에서 색이 너무 빨개서 좀 그럴까,라고 망설이시는 어머니에게 괜히 툴툴거리면서도 맘에 들면 사시라고 해서 옷 두벌을 사 드렸고, 멀리 우도에서 일부러 오신 전교사님을 봐서 굳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가격이 좀 비싼탓에 ㅠ.ㅠ) 직접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만들었다는 국화차를 사고 점심먹고 집으로 왔다. 올해 본당의 날은 그것으로 착한 일 했다고 기억해야지. 아무래도 어머니가 맘에 들어하시던 옷을 사드린것이 제일 좋았던거야.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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