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단지 책 한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에 난 마당이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집에서 살았다. 물론 그 크기는 상대적인 크기였을 것이다. 대문과 현관문사이의 거리가 종종거리는 내 걸음으로 스무걸음도 더 되었다는 기억은 내가 알기로는 내 생애 최고로 넓은 마당이었다.  

그 길의 양쪽에는 수선화와 비슷한 모양의 하얀꽃들이 줄지어 피어있으며 그 경계선 너머에는 일미터정도높이의 나무는 별꽃모양의 하얀꽃을 피워냈으며 친구들은 모르는 글라디올라스, 다알리아, 사루비아 등등등의 꽃이름도 다 알 수 있을만큼 온갖 꽃들이 피었다.  


그런 기억을 가진 나였으니 '비밀의 화원'을 수십번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디콘과 메리가 뛰어다니던 그곳을 얼마나 동경하며 가고 싶어했는지, 그 넓은 정원과 무어... 잡초라고 말하면 왠지 풀무더기가 떠오를 것 같지만, 우리의 야생화처럼 드넓은 들판에 히스꽃 가득한 그곳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미치게 보고 싶어했는지.. 타샤 할매가 가꾼 그녀의 정원은 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숨막히는 아름다움이었는지...내가 아닌 다른이들은 나의 이런 느낌을 잘 모를것이다.
황무지,라고 하면 황량함과 쓸쓸함보다는 야생화가 가득한 자연그대로의 숨결이 있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내 마음을.  

 

 

 



그런 내가 단 3일동안이었지만 독일 어느 산골마을의 이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내가 잠을 잔 곳은, 하이디가 푹신거리는 밀짚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창문으로 맑은 알프스의 산을 바라봤던 것과 같은 그런 벅찬 느낌을 갖게 했던 다락방 분위기의 이층이었다. 사진으로 보기엔 집이 작아보이지만 저래뵈도 지하에 세탁실, 다용도실뿐만 아니라 방음시설이 된, 드럼과 일렉기타까지 갖추고 있는 음악실도 있는 아주 알찬(?)집이었다.
첫날 저녁에 도착해서 잘 몰랐는데, 아침 산책겸 동네 한바퀴를 돌았더니 이 집이 그 동네의 맨꼭대기에 위치한 집이었다. 그래서 나는 3일동안 정말 마당이 넓은 집에서 지낸셈이 되었다.









 

독일 산골마을에서의 그 좋았던 짧은 추억을 그리워하며 옛사진을 꺼내든 이유는 물론 한권의 책, 때문이다.  

이 책의 느낌은, 상상력이 빈약한 이들을 위하여 - 그러니까 나처럼 실제로 본적이 없으면 어떠한 풍경인지 절대로 떠올릴 수 없는 이들을 위하여 비유할 수 있는 것을 끄집어 낸다면,

이 영화 '미스포터'일 것이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 책은 피터 래빗을 그린 베아트릭스 포터가 실제로 생활했던 니어소리 마을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니어소리 마을은 포터가 살았던 백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 똑같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꽃무늬라면 미친듯이 좋아하는 친구가 홀딱 반해버릴 윌리엄 모리스의 고향 코츠월즈, 책 좋아하는 이들에게 영국을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고향 데번, 우리 모두의 친구 곰돌이 푸의 고향 하트필드.... 
그곳을 직접 다니며 산책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워 죽을 지경인데, 그 시골길에서 맘껏 즐긴 야생화, 티룸의 평온함, 차와 다과, 음식, 그곳이 아니면 살 수 없는 포터의 작품들...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반드시 영국에 가 볼꺼야'라고 다짐했던 예전의 결심이 '언제 가려는거야?'라는 채근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년전의 사진을 끄집어 내고, 몇년전에 본 영화까지 떠올리면서, 내 어릴 적 꿈이었던 '마당 넓은 집'에 대한 소망까지 마구 되새기게 한 책은

 

그냥 '영국의 시골길'이 아니라 '아름다운' 영국의 시골길을 걷다, 이다!  
책 제목을 생각하면서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제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 더 맘에 든다.  

특별한 것도 없고, 별장처럼 화려하고 편리한 시설도 아니다. 그곳엔 그저 농장을 가꾸고 양을 키우며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가정집처럼 빵과 과자를 구워내고 차를 내어주는 시골의 티룸이 있을뿐이다.
가꿔지지 않은 투박함이 소박하게 느껴지고, 일상의 노동이 고됨이 아니라 풍요로운 휴식을 위한 즐거움이 담겨있는 이곳의 사진을 보고, 그 아름다운 시골길을 걸었던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벌떡 일어나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피터 래빗이 태어난 그곳에, 곰돌이 푸가 친구들과 야유회를 즐기던 그곳에 가리라 결의(!)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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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0-01-15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더 다듬고 보충해야 하는 글인데... 귀찮아, 귀찮아 ㅠ.ㅠ
리뷰를 올려야지, 생각하면서 글을 이렇게 써버리다니. 이걸 그대로 리뷰로 올려도 될라나?

울보 2010-01-1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저 집 사진이요, 기억나요 님이 편지 보내실때 그때 그 사진, 맞지요 그런데 집이랑 마당이 너무 이뻐요 마당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너무 고운 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