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 지음 / 창비 / 199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하학이나 도형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멈춰버리고 덩달아 건축이라는 것 역시 나와는 거리가 먼 강건너 얘기로만 알고 있던 내가 이 책을 뒤적거리게 된 이유는 처음 가 봤던 해외여행의 여운때문이었다. 우연찮게 가보게 된 까따꼼베에서 지형과 지질을 이용해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설명의 기억이 이 책에 대한 흥미를 끌었던 것이다. 그 즈음에 알고 있는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만 훑어보다가 구석에 처박아 놓고 까맣게 잊고 지내다 최근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견문이 넓지 못한 나로서는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을 하나의 진리로 여기며 여행전에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자 했는데, 이 책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처음 로마에 갔을 때 포로로마노를 쳐다보면서 '저 돌덩이들의 잔해를 뭐하러 구경하러 오는걸까' 생각만 하고 지나쳤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 가게 되었을 때는 그 옛날에 살아 숨쉬던 로마인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 포로로마노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보니 왜 나는 포로로마노의 그 장대함을 느껴볼 생각을 못했는지 한스럽다. 포로로마노는 단지 로마 유적지일뿐인것은 아니지 않은가. 경주가 단지 신라시대의 유적지일뿐인 도시가 아니듯....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위대한 건축을 통해 문명을 읽게 하는 안내서, 자연과 역사와 인간이 하나가 된 문명을 읽게하는 안내서'로 씌어졌으며, 이제 우리의 도시와 건축에 우리 문명의 아름다움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쓰고 있다.

현재의 판테온이 '성당'이라는 사실 하나만 알고 찾아가서는 원하지도 않는 조카에게 천주교 예식을 강요한 내 모습이 떠오르며 몹시 부끄러워진다. '고대 로마를 알아야 빤테온을 알 수 있는데, 이미 아는 기억만으로 빤테온을 보려 한 내가 어리석었다'는 저자의 말은 바로 나 자신의 얘기가 되어버렸다.

역사의 시간 속에서 건축을 통해 문명이 이루어지고, 또한 그 문명을 통해 아름다운 건축이 이루어진다. 그 문명의 흔적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신을 느낀다. 행여 또 한번의 여행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잊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아니 더 깊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