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엄마 - 거의 행복한 어느 가족 이야기
무리엘 비야누에바 페라르나우 지음, 배상희 옮김 / 낭기열라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요즘은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서도 그랬고, 직장에서는 더 그랬고. 다들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듯 해 보였고,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맘껏 지르며 사는듯해 그 기분에 당하는 심정이 배배꼬였었다. 나 역시 내 기분에 이것저것 쑤셔보다가 꽃미남에게나 빠져볼까.. 싶은 생각에 일본에서 상영되었던 '아름다운 그대에게'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휙휙 지나가는데, 여차저차한 사정이 있어 남학교에 들어간 여학생이 있었고 그(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동급생 친구는 사랑에 빠지면서 고민이 시작된다. - 물론 드라마의 주제가 단순히 그것은 아니지만, 이 글의 주제 역시 드라마 얘기가 아니며, 친구가 '그녀'인줄 모르고 사랑에 빠진 남학생의 고민이 순간적으로 이 책을 연상시켰기에 슬며시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그의 고민은 동성 친구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 고민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까지 이어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학교에는 누가 가야되나?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우리의 아이는 누구에게 아빠라고 부르고 누구에게 엄마라고 부르지? 라는 고민에서 상상의 나래가 확 꺽인다. 아니, 애초에 우리는 애를 낳을수가 없잖아!라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어이없는 한마디를 외치며 그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조금 멀리 돌아가는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엉뚱한 이유로 보기 시작한 꽃미남들의 유치찬란한 드라마를 보다가 '가족'에 대한 생각에 잠시 빠져들었다. 왜 우리는 '가족'을 떠올리면서 그 구성원을 '엄마, 아빠, 나'가 기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걸까? 라는 의문과 함께.

이쯤에서 짐작되는 것처럼 '두 엄마'는 낳아주신 엄마와 길러주신 엄마의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흔히 레즈비언이라 일컬어지는 동성애자인 엄마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짐작하게 되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이야기라거나 동성간의 사랑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두 엄마'는 말 그대로 두명의 엄마와 함께 사는 거의 행복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뿐이다.
사실 제도적인 문제나 문화적으로, 가장 크게는 종교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편견은 당대 시대의 시대성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시선을 달리 해봐야 하는 것 역시 문화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필요한다고 보기에 이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책 '두 엄마'는 스페인에서 동성간의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된 2005년을 시점으로 그 해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는 두 엄마와 엄마들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엄마의 생물학적 딸과, 한 엄마의 입양된 딸과 두 엄마가 한 가정을 이뤄 살아가는데 그들 가족에게 비정상적이라거나 뭔가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다. 서문에 밝힌 저자의 이야기처럼 '변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이지 동성애자인 엄마들이나 아빠들이 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에 동의를 할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는다면 말이다. - 어쩌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혹은 입양되는 아이들에 대한 편견, 틀에 박힌 가족 구성원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저자는 그래서 거꾸로 읽어도 상관이 없다지만 나는 현재에서 과거로 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권하고 싶다. 왜 그들이 합법적인 제도에 얽매여야 하는지, 그것이 그들이 이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왜 거의 행복한 느낌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지... 더 집중하게 되고 그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으니까.

자전적인 이야기를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이 짧고 얄팍한 책이 문학적으로도 흥미롭게 쓰여졌고, 내용으로도 감동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이 그냥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는데 도움이 될뿐이지 않을까,라는 선입견으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지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사회가 소외시켜버리고 있는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 가족이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되기까지의 글을 읽으며 괜히 마음이 짠해지고 감동이 느껴져 간혹 슬며시 책을 덮어버리기도 했었다.

문득 라일락 피면(창비)에 실린 오진원의 단편이 생각난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이라 믿었던 얼굴이 상처로 변할 때, 그 얼굴을 보며 울기보다 살짝 윙크를 보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다'(라일락 피면 중 오진원의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154)는 말은 지금 내 곁을 되돌아볼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곁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나의 평가와 편견은 그들을 공격하는 무기일뿐이라는 것을 새삼 되새겨보게 되는 것이다.
소외되거나 불행해지는 가족이 없게 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아니 변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우리의 인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모두가 해봐야겠기에 이 책을 권한다.
틀에박힌 제도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생각하게 된 '가족'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고 행복해야 할 진짜 가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면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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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8-05-19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는지 혼자 울컥울컥 하는일이 잦아요 -_-
이 책 읽으면서도 유난히 그랬다는...

chika 2008-05-1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그냥 담담히 써내려간 글인데 왜 그리도 눈과 마음이 짠..해져버리는지...
(이미 나이를 먹어버려서 더 그랬을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