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거대한 슬픔이 차올랐다. 깨어 있는 동안 나의 모든 시간의 질서와 내가 차지할 공간을 엄격히 정할 권위를 나에게 아무 관심도없는 냉담한 타인들이 쥐고 있다면, 그리고 매일 나의 자기 보호 본능을 부인당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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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을 위한 것이든 갱생하고 용서하기 위한 것이든, 올바른교정 제도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다. 악마의 섬에서버려진 감옥 안을 돌아다니고 몇몇 감방에 들어가 한동안 앉아있기도 하면서 당시 수감자들의 상황을 짐작하게 할 흔적들을주변에서 찾고 있을 때, 인간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거대한 슬픔이 차올랐다. 깨어 있는 동안 나의 모든 시간의 질서와 내가 차지할 공간을 엄격히 정할 권위를 나에게 아무 관심도없는 냉담한 타인들이 쥐고 있다면, 그리고 매일 나의 자기 보호 본능을 부인당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이 유형지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수리점에서 제대로작동하라고 둥근 머리 망치로 두들겨 맞다가 밤이면 다시 선반에 던져지는 고장 난 기계 같은 취급을 받았다. 나는 툴레의 빈 집터 앞에 앉아 있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악마의 섬 텅 빈 감방에 앉아, 우리 시대에 안전함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지, 불안으로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운명은 어떤 것일지 곰곰 생각했다. 지평선 위로 보이는, 점점가까이 다가오는 명백한 여러 위협을 고려할 때,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 사회의 무질서와 생태의 재앙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어둠일지 아니면 첫 번째 계몽과는 아주 다른 두 번째 계몽이 펼쳐낼, 상상으로 온전히 구상해낸 풍경일지 궁금했다. - P314
나는 서로가 처한 곤경에 대한 감정이입이 우리 시대 모든 사법제도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어느 수도원의 부수도원장이 내게 했던 말처럼 "전례 없는정의는 야만이며, 정의 없는 전례는 감상성"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윤리의 틀(성경, 쿠란, 미합중국헌법 등) 밖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일은 자신들의 윤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에서는 용인될 수 없으며, 악이 인간 사회의 조직에서 힘을 발휘하는 한 요소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무지몽매함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언젠가 나는 남아공의 데즈먼드 투투 명예 대주교에게 감옥에 관해, 그리고 그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분열 상황에서 감옥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관해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내게 그의대답은 기이하게도 그 부수도원장이 했던 말과 비슷하게 들렸다. 남아프리카에서 살인적인 인종차별 정권이 종식된 후, 재건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때 할 수 있는 선택은 평화를 희생시키며 정의를 추구하거나 정의를 희생시키며 평화를 추구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그는 말했다. 거기서 중간 타협점을 찾고 유지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투투대주교와 동료들은 그런 타협점을 만들기 위한 답을 진실과 화해위원회라는 법적 절차에서 찾았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 청문회에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묘사하도록 요청하고, 그 피해를 초래한 자들에게 자신이 행한 일에 관한 진실을 털어놓도록 요구한다. 양측은 같은 날 같은 법정에서서로 마주 보고 앉은 채 발언한다. 투투 대주교는 이런 청문회의 결과가 화해였다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묘사하게 하고 가해자에게 자신이 행한 죄상을 낱낱이 인정하고그런 짓을 한 이유를 설명하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정의와 어느 정도의 평화 둘 다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법정에서피고에게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서 감정이입의역량을 찾아내고 또 북돋우려 노력했다. 그리고 최악의 범죄자들만이 감옥으로 보내졌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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