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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진민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9월
평점 :
한때는 언어에 관심이 많았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어규칙에 대한 이해와 기억력이 감소하기 시작해서 그런지 언어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은 무관심이었으나 우연찮게 신간소식을 읽으며 이 책은 읽어보고 싶다는 관심 이상의 열의같은 것이 생겼다. "한 단어 속에 든 너른 세상을 볼 수 있는 책, 결국은 우리의 삶과 인생에 대한 책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단순히 독일어의 '단어'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는 순간 더 깊이있는 언어배우기, 아니 언어를 통한 세상살이를 보게 됨을 깨닫게 되었다.
경험주의적인 입장에서 내게 독일의 첫 인상은 규칙이었다. 아주 오래 전 행사를 위해 독일로 모여든 한국의 청년들은 늦은 시간 숙소에 도착해 서둘러 짐 정리를 하고 첫 날의 흥겨움을 풀어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대도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서 저녁7시가 되기전인데도 문을 연 상점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겨우 9시까지 영업을 한다는 곳을 찾아갔더니 그곳은 온통 우리 일행들뿐이었고 독일 사람들에게 삶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궁금했을뿐인 청춘의 시기가 지나가고 나니 이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다.
도로가 막히거나 말거나 양보도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이 깜박이 등 하나 켜기 힘들어하는 우리네 운전자들을 보면 이십여년 전 독일의 거리에서 수신호로 우회전 표시를 하던 앞서가던 자전거 운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전거의 경우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방향으로 간다는 표시를 하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건 그저 규칙에 따른다,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나는 꽃길만 걸으라는 말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꽃길만 걷다 보면 발이 너무 보드라워져서 다른 어떤 길도 걸어가기 어렵다. 무엇보다 사람이 인생을 그렇게 만듯하고 아름답게, 깔끔하게만 살 수는 없다. 자꾸 걸려 넘어지는 게 진짜 인생이다"(202)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단어들을 통해 독일과 우리말의 차이, 교육뿐 아니라 문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특히 '슈톨퍼슈타인'에 대해서는 한번 더 언급하고 싶어진다. 슈타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아인슈타인을 떠올리게 되는데 슈타인이 돌,이 맞다고 한다. 슈톨퍼슈타인은 의미상 걸려넘어지는 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 단어에서 92년도부터 예술가 귐터 덴니히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떠올린다고 한다.
한때 조금은 아이들을 애지중지하는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강하게 키워야지'라며 스스로 할 수 있게 어느정도의 방관이 필요하다는 얘길 하곤 했었는데 친구들은 내 아이가 아니어서 그런말을 할 수 있는거라고 했었다. 그런걸까 싶기도 했지만 사실 평탄하지 못한 삶이 곧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슈톨퍼슈타인은 걸려 넘어진 후 일어나야 다른 길을 또 걸어갈 수 있으며 다채롭고 강인하게 살아가는 삶이 진짜 인생,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괜히 백만배 동감하게 된다.
한꼭지씩 생각하며 깊이있게 읽기 위해 조금씩 아끼며 읽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진도를 나가게 된다. 그래서 아쉬움에 이 한 권의 책으로 끝나지 않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두번째 책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에 더해 나도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일상어에서 인문학적인 상념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져보지만, 쉽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