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현대 문명에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한 반감이 들더군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데 몰려 있는 것이 야만적이고 파괴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세어보진 않았지만 칠백오십만 명은 되었을 거예요. 한가지 확실한 점은 그렇게 엄청난 군중을 보고 불현듯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는 겁니다. 숲에서 길을 잃은 어린애처럼 마음이 몹시 불안했고 프라하가 몹시 그리워졌습니다. 좋아요. 시원하게 인정할게요. 솔직히 무서웠어요.
길을 잃을까봐,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을까봐, 무슨 일이 생길까봐 겁이 났죠. 저주가 내려진 건 아닌지, 인간의 삶이 무가치해지는 건 아닌지, 인간이 그저 흰 곰팡이핀 감자에 들끓는 수백만 마리의 거대한 박테리아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혹시 이 모든 게 지독한 악몽에 불과한 건 아닌지, 어떤 무시무시한 재앙이 닥쳐 인간성이 말살되는 건 아닌지, 인간이 무력해지는 건 아닌지, 이런생각을 하다가 뜬금없이 눈물이 터져 모든 사람이, 그러니까 칠백오십만 명의 사람이 나를 비웃는 건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처음 마주한 그 풍경에 왜 그토록 겁이 났는지, 왜 그토록 괴로웠는지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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