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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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 줄게"


청혼,이라는 제목과 저 문장을 읽고 뭔가 낭만적이거나 혹은 애절하거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일 것을 기대한다면 잠시 책을 덮어두시라 말하고 싶다. 배명훈 작가님의 글을 재미있게 읽기는 하지만 십일년만의 재출간이라는 이 소설을 이제야 읽어본다. 

책을 읽은 직후라 그런지 자꾸만 결론같은 이야기만 떠오른다. 사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라고 표현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책 속 문장들을 곱씹다보면 이 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이건 우주전쟁이 아니라 지구인들의 전쟁이 아닐까 싶어진다. 


아니, 딱히 지구인과 외계인의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 '적'이라는 규정 역시 '파멸의 문' 건너편에 있으니 당연히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적이 맞는 것이겠거니 라는 생각을 했을뿐이다. 

이야기는 먼 미래 우주전쟁이라고 하기에는 싸움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 파멸의 문 너머에 있는 적의 함대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부의 적인 반란군과 동일한 것인지를 의심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며 더 명확하지 않게 느껴지는데 아무튼 그 적과 대치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군함선에 복무중인 '나'의 서술로 시작하고 있다. 


과학적인 이야기는 전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1초후의 나와 똑같으면서도 똑같지 않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포 발사의 시간차 공격에 대한 설명이 또 전혀 어렵다거나 쌩뚱맞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구에서 180시간을 날아, 어느 한순간에 순간이동으로 지구에서 함선의 휴양지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시간을 건너며 찾아 온 연인에게 느끼는 것이 사랑이고 그래서 청혼을 결심하게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느껴진다. 


아, 그러고보니 왠지 이 이야기는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라 사랑의 이야기였던가?

소설의 문장들을 읽다보면 연인의 사랑이야기에서부터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이해까지 - 아니, 이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아주 대단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사기꾼 같은 느낌이니 나는 그저 문장들이 좋았다,라고 해야겠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들고 현재의 내 모습이 미래의 나를 투영해보게 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파멸의 문 너머 거울효과를 보는 듯한 철학적 사유는 이 소설을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읽고난 후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이지? 하고 정리를 해 보려고 하니 떠오른 생각이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라고는 못하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배명훈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고 재미는 별로...라고 말하는 '청혼' 역시 절대 '별로'라는 말은 못하겠다. 내가 좋다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말이다. 아무튼. 역시 마무리는 청혼의 문장으로.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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