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7회의 황금펜상수상작품이 탄생했는데 왜 나는 처음일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번 작품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대상수상작인 '해녀의 아들'이었기 때문인데 제주의 4.3과 해녀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려 일어나는 미스터리라는 내용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갈지 너무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솔직히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대상작품인 해녀의 아들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몇몇 작가님은 이미 다른 작품으로 익숙하기도 하고 우수작품상을 받은 '팔각관의 비밀'은 왠지 익숙한 플롯과 트릭이 담겨있어서 - 사실 언젠가 한번 이상은 읽어 본 기억이 있는 명탐정코난의 한 장면같은 느낌이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 작가님이 리뷰어로 이름이 익숙한 엽기부족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익숙한 플롯이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허술하지는 않아서 기분좋게 읽은 작품이다.
4.3의 역사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비극적인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기때문인지 해녀의 아들은 '살인'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좀 과장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역사속 제주도민들의 아픔이 크다는 것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아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과하지 않지만 역사적인 비극의 핵심을 뚫는 이야기 구성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해녀의 아들이었다.
해녀의 아들이 가장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서미애작가의 '죽일생각은 없었어' 역시 섬뜩하면서도 생소한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남아있다. 여성 빌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주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그녀가 맞닥뜨리는 상황들이 그녀를 폭력적인 상황으로 몰고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뭔가 정의로움과는 거리가 좀 있는거 아닌가,싶은 결말이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곧 지금 모두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더 '죽일 생각은 없었어'의 의미를 떠올려보게 된다.
추리소설이다, 라는 느낌이 가장 강했던 것은 '40피트건물 괴사건'이었다. 처음 시작은 뭔가 으스스한 괴담 소설인가 싶었는데 논리적인 트릭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내용이 담겨있는 작품은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이었다. 10대 청소년들의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행동이 놀라웠는데 이 소설의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해서 더 충격적이었다. 2017년이라면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닌데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어 찾아봤는데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이라는 모티브만 따온 것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실제로 있었던 사실들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사건을 찾아보니 몇가지는 당시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연일 뉴스에서 언급했던 것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스치듯 접했던 뉴스와는 달리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나니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느낌이든다.
송시우작가는 실제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는 것에서 창작자의 윤리적인 고민을 계속할수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혀 비윤리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한마디가 더 마음을 후비고 있을뿐. "앞으로 너보다 더 악한 아이가 나타나겠지. 믿기 싫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