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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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정보라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다고 한 기억이 있다. 이전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4년만의 소설작품이 나왔다고하니, 더구나 김초엽 작가의 추천사 '쉴새없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는 매혹적인 소설'이라는 글을 읽고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쉴새없이 책장만 넘기고 생각의 파도가 몰려오지 않아서일까. 여전히 혼란스럽다. 책장을 덮으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한글자 이름이 - 이름 옆에 유독 한자어 표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의미를 담았구나 싶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해설이 없어서 좀 아쉬운 느낌이 들기는 했다. 사실 신임형사가 어느 순간 순 형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급하게 다시 책을 뒤적여봐도 명확하지가 않다. 도대체 나는 뭘 읽고 있었던 걸까.


소설의 이야기는 마약같은 중독성도 없이 고통을 없애주는 진통제가 개발되었는데 그 회사에 폭탄이 터지며 사망자가 생기고, 그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회사소유주의 딸 경은 자살을 시도하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죽음을 피해간 아이러니함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폭탄테러를 한 사람은 고통을 통해 영혼의 존재증명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구원의 길이라 주장하는 사이비 교단의 일원 태이다. 범인을 잡고 사건이 일단락되며 끝나는 듯 했지만 교단과 관련된 인물들의 살인사건이 이어지며 살인범을 쫓는 형사 륜이 사건해결을 위해 이전의 관련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에세이같은 느낌이 드는 이 소설은 읽을수록 SF소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하지만 또한 인류의 생존을 이어가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은... 아니, 이건 나름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생각이 쌓이기 시작한다. 출산의 고통을 떠올려보다가 고통을 완벽히 없애는 NSTAR-14가 있으니 고통은 없는것인가, 이들은 그 약을 거부한다면 또다른 교단의 탄생이...

뭔가 스스로도 궤변을 늘어놓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이 소설은 내게 쉽지가 않다.


고통을 없애는 완벽한 진통제가 개발이 된다고 하면 또 누군가는 고통을 그리워(!)하며 신약을 거부하고, 맹목적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신념을 종교화시키려나. 과연 인간의 삶에 있어서 고통은 무엇인가. 

"흉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흉터는 상처와 고통과 회복의 과정과 회복에 동반하는 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 뒤에 남는 감정과 기억을 대표했다. 경이 탐색했던 것, 탐색해서 되찾으려 한 것은 그 기억이었다. 신체에 새겨진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채, 상처 입은 흉터투성이 존재를 떠안고 죽는 순간까지 망가진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그러한 삶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존재를 그녀는 찾고 있었다. 그것은 사랑도 성욕도 아니었다. 사랑이나 성욕보다 더깊은 어떤 것이었다. 망가졌더라도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 망가진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승인을, 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존재를 통해 재확인하고자 하는 생의 가장 깊은 추동(推動)이었다"(301)


고통에 관하여,는 이런 이야기인가 싶지만 큰 맥락안에 담겨있는 이야기 줄기를 살펴보면 '생각의 파도에 휩쓸린다'는 말을 떠올려보게 된다. 고통이 구원의 길이라 믿는 이들은 자신의 구원이 아니라 타인의 구원을 위해 고통을 주기만 할 뿐이며,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는 이들에 대한 폭행과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질병의 고통에서 모든 것을 잃고 고통에서는 벗어났지만 삶의 의미를 찾고 그를 전하기 위해 교단에 들어간 욱은 오히려 그것이 교단의 신념과 다른것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만이 아니라 폭력남편을 피해 보호센터로 가지만 남편은 그녀를 찾아내고 경찰로 인해 보호센터에 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숨어지내다 무료숙식제공에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간 효는 아이들을 위해 남편을 떠난 것이었지만 결국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하게 부당한 삶을 살다 숨지게 되고...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도 사건사고뉴스를 찾아보면 수없이 터져나오는 현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법제도의 헛점으로 인해 희생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내게는 쉽지 않은 소설이었다,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싶었는데 하나하나 끄집어 내다보니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다.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 이 소설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스스로도 궁금해지는 그런 소설이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방금 밑줄긋기 한 내용을 살펴보다가 책의 첫장 차례 뒷 장에 '등장인물'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름 한자어를 찾아보며 읽은 나는 뭐였나... 싶지만 아무튼 등장인물을 찾음으로 인해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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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3-09-23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다섯개!!!

chika 2023-09-23 13:58   좋아요 1 | URL
ㅎ 제가 별점이 후합니다요... 인것도 있는데. 사실 딱히 제 취향은 아니지만 읽고난 후 더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추천할수밖에 없는 책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