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시력 저하는 화가의 인생에 치명적인 약점을 안겼다. 사물간의 거리를 느낄 수 없었고, 색과 형태에 대한 뚜렷한 구분이 어려웠다. 하지만 추상화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사실 추상이라는 세계는 답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무얼 그렸는지가 불분명하고,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고 매혹적이다. 나는 추상화를 그리면서 인생을 살다가 만나게 되는 변화무쌍한 순간들을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원근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니 시멘트를 발라 두께감을 쌓았고, 디테일한 스케치를 생략하는 대신 색과 터치에 힘을 실었다. 툭불거진 조소와 색채가 깔린 회화, 그 어디쯤의 경계선상에 서게 된것이다.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 지금 할 수 있는일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 이처럼 인생에서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지를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삶의 명확한 방향을찾는 시작은 언제나 자신이 어디 서 있는지를 아는 것부터다.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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