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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간 -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수전 톰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평점 :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피아노를 배워봤다고 하는데 나는 피아노뿐 아니라 그 어떤 걸 배우기 위해 학원이라는 곳에 가본적이 없다. 학창시절 친구가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데 자기는 손이 작아 건반치는 것이 너무 어려워 포기했다는 말을 하며 내 손을 보더니 피아노를 배우기 쉬웠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키작은 그 친구의 손길이에 비하면 내 손은 한마디 정도는 길었으니 그리볼만도 했겠지만 나는 피아노를 배운적이 없을뿐이고 그때부터 피아니스트를 보면 자꾸만 손가락을 먼저 보게 되었다.
음악을 듣는 귀(!)는 없지만 음악수업시간에 음악감상 시험에 대비해 선생님이 지정해 준 클래식 음악을 들었었는데 그때 음악듣기 시험 성적은 형편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계속 듣고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피아노곡을 떠올리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그 선율을 부를수는 없지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곡이 되었다. 음악에 대해 무지한데다가 막귀이기도 해서 누군가 추천하면 음반을 사서 들어보곤 했었는데 친구가 또 다른 느낌이지만 내가 들어보면 좋아할 것 같다며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한 음반을 선물해 줘서 그때 처음으로 연주자에 따라 음악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
이렇게 구구절절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책 '피아노의 시간'이 어떤 책인지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피아노의 시간은 저자 수전 톰스가 엄선한 100곡의 피아노곡이 담겨있다. 피아노의 역사를 보여주기에 100곡은 너무 적은 숫자임을 강조하며 첫머리에 나름대로 선곡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에 더해 여성작곡가의 음악이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잠깐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음악뿐 아니라 다른 예술, 전문적인 분야에서 여성이 오로지 자신의 재능만으로 그 천재성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들이었기에 저자의 설명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다.
들어 본 기억이 전혀 없는 음악에 대한 설명은 그냥 설명문일뿐이었는데 많이 들어봤던 음악,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설명은 그 곡의 분위기와 느낌에 대한 설명이 문장속에서 음악의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순차적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하다가 내게 친숙한 음악부터 찾아 읽고 듣기 시작하니 오히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좋은 느낌이다.
책의 내용은 주로 선별된 곡의 해설에 대한 것이지만 그 곡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 이야기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각각의 곡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음악 감상의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초심자에게는 조금 더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도움이 되는 글이라고 할수는 있을 것 같다.
피아노의 전신이라 일컬어지는 하프시코드에서부터 시작하여 재즈곡까지 다양하게 선곡되어 있는데 목차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선율을 바로 떠올려보지는 못하지만 - 좀 부끄럽긴 하지만 - 음악을 들으면 익숙한 느낌의 곡들이 많이 있어 보인다. 책을 읽는 동안 틈틈이 큐알코드로 연결하거나 동영상을 검색해서 찾아보며 음악을 듣곤 했는데 - 역시 아는 것만 찾아 듣기는 했지만 오랫만에 들어서 그런지 그저 좋기만 했다.
오랜 시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책을 뒤적이며 피아노 100곡을 넘어 또 다른 명곡 100, 아니 숫자와는 상관없이 그냥 좋은 음악을 찾아 들어보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