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로서의 삶 대부분을 시인 C. D. 라이트(C. D. Wright)가 했던,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더 큰 자아 속에서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좇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꿈이다. 타인으로 예술작품을 만든다는것은 언제나 그들이 보여주고자 가려 뽑은 모습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바라보는 방식대로 본다는 의미다. 

애니는 마리아 가족 그 누구에게도 자기 집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들이 만에 하나라도 국경을 건너와 집을 찾아오면 결코 돌려보낼 수 없을 것을 알아서였다.
사진가 메리 엘런 마크와 그의 남편 마틴 벨은 1983년 타이니라는 이름을 가진 시애틀의 열세 살 성노동자를 중심으로 기록물 「거리의 아이들」을 제작하는 동안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어야 할지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이들의 고통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기록하는 게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도움이라는 부가적인 책임을 진다면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란 지속 불가능해진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리 큰 도움을 주어도결코 충분하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마크와 벨은 자신들이 촬영한 아이들에게 돈은 절대 주지 않았으나 음식, 재킷, 신발은 주었다. 촬영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타이니더러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벨의 표현대로라면 "입양이나 다름없었다." 조건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것뿐이었으나 타이니는이를 원치 않아 함께 뉴욕에 가지 않았다. 그들은 수십 년간 연락을 주고받았고, 이로부터 19년 뒤 타이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늘 생각해요. 제가 뉴욕으로 따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 P204

애니는 일기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온갖 신화적인 버전의 자신들을 심문한다. "나는 어떤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스스로 구원자 행세를 해야 하나?" 그는 수십 년간 구원자가 되고자 하는욕망과 싸워왔다. 한 일기에서 그는 자신을 "선한 의도를 가진
‘박애주의자‘라는, 나 자신도 속일 만큼 효과적인 가면을 썼지만 사실은 무방비에 취약하고 독선적이며 자기도취적인 예술가"로 묘사했다.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애니는 썼다. "인과응보를 내리는건 내 역할이 아니다."

나는 이 사진이 아는 모든 것과 함께 사진이 아직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본다. 그리고 이 알지 못함은 사랑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다. 사랑이란 완전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에 헌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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