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물건을 평생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이 쓸쓸한 물건의 보관자가 된 나는 가끔 물건도 사람을 사랑하는지 궁금해졌다. 레프의 바이올린은 그레그와 함께 바삐 보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라도 하듯 상실감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가끔 나는 레프 바이올린의 몸에 새겨진 흉터 자국을 꼼꼼히 들여다보곤 한다. 하나하나가이 악기의 과거에 관한 모진 진실을 알려주는 또렷한 흔적이다. 바이올린은 언제나처럼 겸손한 자태로 조용히 누워 있다. 악기의 모퉁이들을 조심스레 쓰다듬어본다. 너무도 부드러워 바람과 물에 마모된 것만 같다. 내 손가락이 느끼는 건 나무가 아니라 나무가 사라진 공백이다.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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