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주다 - 딸을 키우며 세상이 외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다
우에마 요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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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에세이, 서점대상, 오키나와... 책 내용이 무엇인지 신경쓰지 않고 연상되는 단어만으로 한번 읽어볼까 싶은 마음이 들어 책을 집어들었는데 예상외의 글들이 담겨있어서 기대이상으로 좋은 느낌을 받은 책이다.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저자는 다정하게 지내던 친구와 남편이 몇년동안이나 외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남편과 이혼을 하고 이후 여성문제 연구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저자인 우에마 요코가 인터뷰한 여성들의 이야기와 오키나와에서의 일상이야기가 담겨있다. 물론 오키나와에서의 일상이란 것이 우리의 바닷가 일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하지만.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서는 주로 문학작품을 통해 많이 접해왔었는데 2차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주민들이 일본군의 방패막이로 희생당하고 자살특공대처럼 죽음을 강요받았고, 오키나와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고 전후에는 미군기지가 세워지고 그로 인한 피해들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주한미군 주둔지에서 발생했던 범죄들을 떠올려보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들으면 심각하기만 한 성범죄, 환경오염, 소음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딸의 이야기와 같이 풀어나가는데 그래서인지 때로는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손녀와 할머니의 다정한 만남이라고 생각하다가 할머니가 겪은 전쟁이야기에 마음이 무너지고, 물을 좋아하는 아이가 오염때문에 맘껏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좋아하는 물놀이도 못하게 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 하고 그렇게 이 이야기들에 빠져들어가게 되었다.  


어린 딸에게 낯선 사람이 과자를 사 준다고 같이 가자고 해도 따라가면 안된다고 교육을 시키려 하지만 유괴가 무엇인지 모르는 딸은 사 준다는 과자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며 본인이 좋아하는 센베를 준다고 하니 따라가겠다는 어린아이다운 말을 하는데 엄마의 성교육을 받고는 어린이집에 온 검진 의사가 남자아이들의 팬티를 들춰봤으니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어린애같은 귀여움이 느껴지면서 또한 4,5세의 어린이에게 성교육이 필요없다는 어린이집 교사의 조언보다 저자인 우에마 요코의 교육이 좀 더 나아보이기도 했다. 


사회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말에 우에마 요코는 자신도 나름대로 조사, 연구를 하고 강의도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항변을 하지만 그 말을 꺼낸 사람이 며칠 후 단식투쟁을 한다는 소식에 바로 자신을 뉘우치는 겸손함도 좋았는데 단식투쟁을 하는 곳에 딸과 함께 방문을 하고 그곳에서 본 이야기들을 소소하게 담아낸 이야기도 좋았다.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바다와 순박한 주민들의 일상에 담겨있는 아픔들이 오키나와의 역사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연대'가 무엇인지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희망이 없는 비관적인 세상의 이야기들이란 느낌이 들지만 계속 되새겨볼수록 어린 딸에게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결의가 느껴지는 것 같다. 그날을 위해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야겠다는 실천의지는 우리의 몫일뿐.


"지형이 바뀔 만큼 폭탄이 쏟아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어 가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아이와 자신은 늘 함께 있을 거라고 말한 뒤 죽은 엄마가 있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굶주림과 공포로 인해 생리가 멎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할머니는 그 모든 일을 경험한 뒤 다시 한번 그곳에서 땅을 일구어 살아왔다는 것을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뜨는 딸에게 전쟁은 까마득히 먼 옛날에 일어났고 이것은 옛날 옛적 이야기라고 나는 언제쯤 딸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딸과 함께 반짝이는 수면 위를 나는 물총새를 보러 가서 이곳은 매우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이고 지금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자연호 속에서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을 테니 후카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없다고 나는 언제쯤 딸에게 말해 줄 수 있을까."(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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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2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정하게 지내던 친구와 남편의 외도라니 역시 끔찍. 친구와 남편 모두를 잃어야 하는거잖아요. 아 그런데 그걸 딛고 또 여성학자가 되다니 진짜 대단한 멘탈의 소유자네요.

chika 2023-01-29 10:34   좋아요 0 | URL
그녀를 살린건 또 다른 친구들의 따뜻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활동가,라고하면 왠지 전투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데 전혀 그런 느낌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뿐,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야기들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