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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 지하철 앤솔로지
전건우 외 지음 / 들녘 / 2022년 7월
평점 :
지하철 엔솔로지,라는 것이 흥미롭지는 않았다. 사실 내가 사는 동네는 지하철도 없는 곳이고 내가 지하철을 타 본것도 3년은 되는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지하철 이야기라고 했다면 그리 흥미롭게 느껴지지는 않았을텐데 작가들의 이름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장르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쉽게 넘겨버릴 수 없는 작가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앤지 '지하철 엔솔로지'라는 것 자체가 흥미를 끈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하철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
예상한 것 이상으로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50여일간 지속된 열대야에 잠을 못 이루는 괴로움에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속으로 몰두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공항철도 이야기는 괴짜 노인의 활극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치매에 걸려 지하철에서 난동을 부린 것이라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소설속에서 언급된 것처럼 나 역시 여행을 다녀오고난 후 피곤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공항철도를 탔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두편의 작품을 쓴 정명섭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데 2호선과 3호선의 이야기를 썼다. 2호선은 한때 서울나들이를 했을 때마다 탔던 노선이라 반갑기는 한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좀비의 출현이라며 공포에 사로잡히고 소녀가 사라진 후 정체모를 공포에 대한 두려움이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결국은 그 모든 것의 정체와 허상에 긴장감이 훅 풀어지기는 하지만 인간군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더 씁쓸해졌다.
6호선 버뮤다응암지대의 사랑은 순환선을 타는 청춘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들의 아름다움으로만 포장할수는 없는 청춘의 현실을 떠올리게 되고 4호선의 여왕은 한편의 치정코믹활극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5호선 농담의 세계와 1호선 인생, 리셋은 시간여행때문에 왠지 그 결이 비슷한 느낌이지만 진행과 결말은 전혀 다르다. 미래세계로 잠시 넘어왔다가 과거로 돌아가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갖고 간 설정이라거나 자신의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 과거의 선택을 바꾸지만 자신이 변화하지 않는 한 삶의 종착은 똑같을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1호선의 이야기는 익숙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달라지는 이야기는 좀 섬뜩하기도 하다.
다양한 형식으로 여러 장르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그런지 이야기 하나하나 짧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지하철을 통해 여러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의 풍자가 담겨있어서 어느 순간 마음을 탁 치는 부분도 있었다. 비유와 풍자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읽는 것 자체의 즐거움도 있어서 좋았다. 어쩌면 지옥철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다 좋아보이기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