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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평점 :
요즘 자꾸만 책 제목을 잊어버린다. 어제 책장을 덮었는데도 지금 책 제목이 뭐였지? 하고 있는 중인데, 흐릿해져가는 과거의 기억은 이렇게 사라져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런데 만약 과거의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고 당시의 생생한 느낌과 함께 똑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조금 더 현실적인 비유로, 지금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의 이 생생한 느낌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혹시 셰익스피어 시대의 연극 초연을 본 이의 경험을 바로 느낄 수 있다면, 모짜르트의 연주를 직접 들은 이의 감상을 그대로 내가 느낄 수 있다면 그 경험을 구입하는데 어느만큼의 댓가를 지불할 마음이 들까? 아니면 돌아갈 수 없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에 대한 댓가는 얼마나 지불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문제제가가 아님에도 나는 자꾸만 이런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
소설의 시작, 그러니까 이 책은 분명 소설이다. 그것도 바로 '당신'을 위한. - 이 말 자체가 소설의 복선임을 깨닫게 되는 건 그 '경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 삶에서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의 생생한 체험이, 누군가 경험한 그 느낌이 중요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물음과 답이 이 책을 읽는 모든 '당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에세이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혼란스러움을 느끼는데 그것 자체가 또한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의 하나였음을 느끼게 되면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느닷없이 시작된 미스터리한 책의 존재와 그 책을 받은 벤에게 닥친 위험은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무엇인지를 전혀 떠올릴 수 없게 한다. 하지만 벤과 바 없는 바에서 일하는 오스나트, 바의 사장인 벤처부인과의 만남은 벤에게 닥친 위험의 이유와 그들이 목숨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밝혀나가게 되는데......
독특한 구성에 이야기 흐름 자체도 새로운 느낌이라 뒷장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도무지 예측할수가 없어서 잠자는 시간을 미뤄가며 책장을 넘기며 읽었는데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재미뿐만 아니라 그 주제가 담고 있는 의미가 또 가볍지는 않아서 좋았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긴장감 넘치는 추격과 액션이 펼쳐지며 한편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박진감이 또한 이 책을 읽는 묘미가 될수도 있을 것 같다.
앞머리에서 과거의 좋은 경험들, 누군가의 좋은 경험들을 내것으로 할 수 있다면 얼마의 댓가를 치를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앞섰다고 했는데 '경험'에는 좋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이야기의 결론이 그렇듯 이 소설의 이야기 역시 선함이 악함을 이기는 것으로 끝나고 있지만 그 악함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이었다는 것(스포가 될 수 있어서 그게 무엇인지는 차마 언급을 못하겠다)이 마음을 깊이 파고든다. 그
리고 그와는 달리 수많은 경험을 흡수한 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떠올리며 나는 지금 모든 긍정의 힘을 끌어모아 보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하고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한마디만 하라면 그냥 "재미있고 놀랍고 예측할 수 없는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말하고 싶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