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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평점 :
"너에겐 계획이 다 있구나"
아, 미치겠다. 자꾸만 이 문장이 되내어진다.
'요 선생님'으로 통하는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가 벌써 12번째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지 않는 듯 이어지는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 시리즈가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하나의 흐름처럼 인물들의 개인사가 다 이어져있음을 느끼게 하는데 우리와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해리 홀레가 등장하면서부터 그의 개인사는 이미 그 서사가 완성되어 있고 요 네스뵈는 그 서사를 사건을 통해 하나씩 풀어놓고 있는것만 같다.
해리 홀레 시리즈가 늘 그렇듯 '칼' 역시 끔찍한 사건을 암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약혼자로 불리는 성폭행범 스베인 핀네가 출소하고 또다시 성폭행을 저지른다. 스베인 핀네의 끔찍한 범행이 시작되었음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를 잡아 감옥에 넣었던 해리 홀레는 혼자 지내는 라켈이 복수의 대상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집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둔다. 하지만 해리가 라켈과 헤어진 것에 괴로워하며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하고 그가 그렇게 인사불성으로 취해 쓰러져 있는 사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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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는 딱 저 두 문단의 글을 쓰고 더 이상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수가 없어서 미뤄뒀는데 벌써 한달도 더 시간이 지나버렸다. 아마 미루고 미뤄뒀던 것은 내가 느낀 것들을 글로 정리하는 것 이상으로 더 잘 표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앞서 이 느낌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기때문일텐데 시간이 지나며 글이 안에서 무르익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사라져가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맴도는 것은 해리 홀레에 대한 요 네스뵈 작가님의 계획은 이미 진행중이고 열두번째를 지나 열세번째가 완성되었을 것이라는 생각뿐이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의 의미가 무한깊이로 되돌아오다니.
정도를 지키지 않고 알콜중독과 편법수사로 징계먹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해리 홀레가 결국 사랑하는 라켈의 복수를 위해 마지막 선을 넘어버리는가 싶어 마음을 졸이며 글을 읽었다는 것만 밝히고 싶다. 범인 찾기에 잼병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의 그림자, 모든 칼날의 끝이 해리에게로 향하고 있어서 오히려 그 칼날을 조종하는 그 누군가에 대한 의심을 여기저기 흩뿌렸다. 아마 다들 확증하기 전에 어느 한순간 눈치를 챘을터이지만 - 눈치없는 나조차 눈치를 채는 순간에는 이미 어떤 방법으로 정리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끝까지 방심할수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다 그렇듯이 이야기의 줄거리도 앞부분의 사건발생 정도만 언급할 수 있고 모든 느낌을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해야한다는 것이 이 소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꺼리를 눌러담게 하고 있지만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긴 글이 범인찾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기는 하다. 그래서 전혀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밑줄긋기를 하나 던져 독서토론의 주제중 하나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해보고 있다.
"가끔은 그녀들에게 닥치고 그냥 평등한 기회와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구호나 외치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변화는 오래전에 일어났어야 맞다. 직접적인 성희롱 문제만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은근히 행해지는 남자들의 성적 통제 전략에도 변화가 일어났어야 했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에만 치중하느라 진정한 평등에 대한 논의를 소흘히 해서는 안 된다. 여자들이 연봉보다 상처받은 감정에만 매몰되면 다시 자신에게 해를 입힐 뿐이다. 높은 연봉과 탄탄한 경제력만이 여자들을 취약한 처지로 내몰리지 않게 해 줄 것이므로."(217)
사족. 400미터 밖에서 적을 쏘아맞히는 저격수의 살인과는 달라야 했다,는 요 네스뵈의 말 한마디가 새삼스럽게 제목인 칼과 살인사건의 내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이 치밀한 계획들은 칼날보다 더 날카롭게 인간의 감정을 후비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