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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산책 - 일본 유명 작가들의 산책잡담기 ㅣ 작가 시리즈 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2년 5월
평점 :
이 책은 일본 작가들의 산책에 관한 글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별 생각없이 단편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이 아닌 수필집이며 여러 작가들의 글을 하나의 책으로 출판된 글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역자가 직접 글을 선택하여 엮은 것이다. 짧게 이어지는 여러편의 글은 '산책'이라는 주제에 맞게 쓰여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산책'이라는 것이 내 생각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좋았다.
얼마 전 티비에서 김영하 작가님을 봤는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주변 관찰력이 매우 높다고 하며 흔히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의 산책'이라고 했을 때 작가들은 산책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까. 그 산책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낼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나는 이 와중에도 '산책'이라는 것을 한가롭게 내 일상의 주위를 천천히 걷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산책도 포함이지만 내 기억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도쿠토미 로카의 '어느 밤' 이야기이다. 볼 일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지만 밤 늦은 시간 문이 닫힌 집으로 들어가지 못해 숙소를 찾고 역사에서 밤을 지새워보려다 그곳도 문이 닫혀 새벽 4시가 넘어야 문을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밤 늦은 시간 문을 연 가락국수집에서 요기를 하고 그 시간에 잠시 대기하며 쉬고 있던 인력거꾼에게 가락국수를 사 주고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가다가 그곳도 문이 닫혀 있어 절 주변을 돌다 묘지안으로 들어간다. '묘지는 영원히 잠들어야 하는 장소다. 하룻밤 죽음을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다. 묘지에서 내쫓겨'(126) 다시 혼간지 절 툇마루에 드러누워 비로소 잠이 드는 '어느 밤'의 이야기.
익숙한 이름의 작가도 있고 내게는 대부분 낯선 일본 작가들이지만 '산책'이라는 주제로 엮인 글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은 두 편 실려있는데 대합실에서의 이야기 '장난이 아니다'는 그저 젊은이에 대한 치기어린 장난인가, 생각하다가 마지막 문장에 순간적으로 탁, 뒤통수를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자살은 한 달 미뤄졌다"라니.
묘지를 걷기도 하고 한적한 시골길의 풀베기도 나오지만 긴자의 도심 거리를 걷는 이야기도 있고 골목길을 거닐다 장미꽃을 산 이야기도 담겨있다. 사실 낯선 일본 작가들의 글이라 작가 이름과 수필의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로만 기억을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삶의 진수를 깨닫게 되기도 하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나는 좋았다. 문득, 우리 작가의 산책 이야기가 엮인다면 그 책 역시 필독서가 되려니...생각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