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운 풀냄새. 풀 더미 앞에 서자 순식간에 쑥, 새, 들국화, 개여뀌, 쇠뜨기, 닭의장풀, 수영......
베여 쓰러진 풀이름이 염주알 꿰듯 떠오른다. 풀이 저마다 지닌 사상을, 발에 밟혀도 마구 뽑혀도 반드시 자라고야 말겠다는 그 생명의 마음을 냄새로 알아챈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이들 잡초의 씹는 맛까지 음미한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소의 타고난 우둔함, 정직성, 인내심 등과 함께 후각도 갖고 있나 보다. 만약 소가 가진 커다란 위장마저 있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채식주의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리 믿고 있다.
풀을 향한 이 친밀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게 풀이란 아무리 작고 덧없을지라도 땅속에 숨어 있는생명의 눈이다. 촉각이다. 온각이다. ‘생명‘이란 아무리 변덕스럽고 헛된 표현을 하더라도 아름다움이 있고 힘이 있고 광채가 있다. 수많은 물질 가운데 풀에 드러난 생명만큼 겸손하고 소박하며 정직하고 참을성 강한 것은 없다. 풀이야말로 내게는 ‘언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신기한 존재다. 발굽이 없는 탓에 한곳에 멈춰 선 작은 짐승이다. 성대가 없기에 평생 침묵을 지키는 작은 새다. 그런데 내 친밀감은 단지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어린 시절 풀 속에서 자랐다. 좀 더 적절히 말하면풀과 함께 성장했다. 호젓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친구라고 해봤자 얼마 없었고, 그나마 몇 안 되는 친구와 놀 때면늘 풀숲을 골랐다. 친구가 없을 때는 혼자서 토끼처럼 풀 위를 이리저리 뒹굴며 지냈다.
풀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린다. 때문에 그것들과 같이재밌게 놀았다. 손가락에 딱 달라붙는 흰독말풀꽃이나 살며시 건드리면 여치처럼 치이치이 울어대며 꼬투리가 터지는 꽈리 열매. 어린아이에게는 실로 경이로워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꽃이나 열매로 놀았는지 모른다.

내게 풀이란 아무리 작고 덧없을지라도 땅속에 숨어 있는생명의 눈이다. 촉각이다. 온각이다. ‘생명‘이란 아무리 변덕스럽고 헛된 표현을 하더라도 아름다움이 있고 힘이 있고 광채가 있다. 수많은 물질 가운데 풀에 드러난 생명만큼 겸손하고 소박하며 정직하고 참을성 강한 것은 없다. 풀이야말로 내게는 ‘언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신기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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