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만들면 오래가는 것들

나는 왜 이렇게 숙성에 끌릴까?
맛과 풍미, 즉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숙성에서 더 큰 사회적 의의를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획일적인 사회분위기를 지독하게 싫어한다. 그래서 이 사회의 갑갑함을 깨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상품을 생산해왔다. 흔히 맥주는 신선도가 생명!‘ 이라고들 하지만 그 역시 가치관의 획일화라는 것을 직접 생산해보면서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시간 단축에 모든 힘을 쏟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기계의 속도에 맞춰야 하는 노동을 고통으로 여기게 되었고, 생산품의 수명도 짧아졌다. 가격이 싸진다 한들 금세 망가지기에 다시 사야하고, 결국 쓰레기만 잔뜩 쌓인다.
그에 반해 나는 전통적인 제빵 방식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차례 개량해야 했고, 완성하기까지 10년이넘는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고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이야말로 가치 있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 그런 생산 방식과 기술이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오래가는 물건을 만들려면 그 재료의 질도 좋아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생산 현장에서 긍정적인 연쇄 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오래가는 상품‘을 많은 소비자가 찾고 많이 살수록 지역 경제와 환경은 좋아질 것이다. 그리되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도 가치를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 P131

잘난 사람만 ‘올바르게‘ 대접받는다면 숨 막히는 세상이 되고 말것이다. 만약 그런 세상이 있다면 잘난 사람에 대한 평가도 정량화되어 얼마나 잘났는지가 점수로 매겨지지 않을까? 그리되면 나 같은 사람은 남 앞에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제빵을 배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과 재료를 만났고, 야생의 균이라는 엄청난 자연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노력했기에 비로소 ‘나다움‘을 깨달았다.
작아도 좋으니 틀을 깨고 ‘자기답게‘ 표현할 때 사람은 만족할 수 있다. 자기답게 표현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열린 형태를 띨 것이다. 그런 사회에는 분명 틀을 깰 기회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애초에 자신을 틀에 끼워 맞출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나는 틀을 깨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십 줄을 바라보는지금, 조금 더 일찍 틀을 깼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가 없지는 않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 평생을 틀에 갇힌 채 사는 사람도 적지 않고, 이 사회의 특성상 틀 안에서 사는 게 훨씬 편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 교육은 아이들을 주어진 틀에 끼워 맞추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대기업이 부리기 좋은 인간을 만드는 행위가 아닐까? 노동자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을 하면 기업 운영에 지장이 생기고,
그리되면 이익이 줄어 주주에게 손실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실제로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정답으로 보는 획일적인 사회에서는 노동자 개개인이 다른 노동자와 보조를 맞춰야 모든 것이 수월하게 돌아간다. 그러니 틀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살기 편하다고 느끼기 쉽다. 게다가 노동자는 시간에 쫓기는 처지라 틀을 깨기위해 천천히 자신을 마주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틀을 깨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도 내가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제빵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수련‘이라는 길에 들어선 덕분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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